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양지인 (문단 편집) == 여담 == 만일 재상 목이가 이 전투에서 송나라 군대를 지휘했더라면 춘추오패에 목이의 이름이 올랐을 지도 모를 일이다. 송나라에서 목이는 예전부터 무능하다는 평을 받던 양공보다 훨씬 재능이 있었기에 '[[쿠데타|저 바보같은 양공을 제거하고 당신이 공위를 이어야 한다]]'는 말을 많은 대신들에게 들어 왔고, 양공이 쓰잘데 없는 전쟁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비록 서자라서 계승권이 약하다는 점이 있었으나 양공이 후에 나라를 말아먹은 것을 보면 대신들이 얼마나 애간장 태우면서 재상 목이가 공위를 이어야 했다고 안타까워 했을지 알만하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사실이라고 보기 힘들다. 후대 역사가들은 설령 이 전투를 목이가 지휘했다 하더라도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심지어 송나라가 이겼다 하더라도 양공의 입지가 결정적으로 바뀌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양공이 춘추오패의 후보자에나마 이름을 올렸던 것은 송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양공의 외교능력 덕분이었다. 아무리 전쟁을 잘해봐야 군사력으로 초나라를 누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목이가 양공대신 군주가 되었다면 패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송나라가 패자가 될 기회라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양공이라는 인물의 특수성(...)에 있었지 송나라의 국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목이가 군주였다면 패자가 될 기회 자체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거니와, 설령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목이의 성향상 패자가 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 문단에서 목이가 '저 바보같은 양공을 제거하고 당신이 공위를 이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라는 주장은 출처가 필요할 듯 하다. 사실 이 전투가 있기 2년전 초나라가 주최한 회맹에 참석한 양공이 억류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억류된 양공을 대신하여 송나라를 지키던 인재가 바로 목이였다. 더군다나 목이가 초나라의 함정이니 가면 안된다고 필사적으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양공이 이 회맹에 참석하였다가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이 회맹은 송과 초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군주들이 비무장으로 참석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맹주의 권위를 유지하고 싶었던 양공으로써는 '설마 전통적으로 지켜온 회맹의 규약을 깨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참석한 듯하다. 하지만, 초나라는 그 전통을 깨끗이 무시하고 양공을 억류해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초나라가 전통을 무시하는 계기를 만든 장본인은 바로 다름아닌 양공이었다. 이전 회맹에서 '주나라로부터 받은 작위가 높은 군주가 맹주가 되는게 전통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송나라보다 국력이 강한 제나라와 초나라 군주대신 맹주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양공 본인이었던 것. 양공의 도움으로 즉위한 제나라 군주는 이 '전통'을 쿨하게 지지했지만, 초나라 군주는 양공과 '그놈의 전통'에 이를 갈게 되었고,[* 다만 송양공이 그 전통을 악용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어쨌든 주나라와 연관된 만큼 아주 무시할 거리는 안 되었다. 후일 초장왕 시기에 초나라가 은근히 주나라를 멸하고 주나라가 가졌던 자리를 차지할 야심을 보이자 주나라에서 "아무리 주나라가 쇠락했다고 한들 너네들이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냐"의 논조의 대답을 보였다. 실제로도 송양공 시절의 전인 제환공의 사례에서 보듯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긴 했어도 아직은 제후들이 좋든 싫든 주나라를 따르고 있었기에 초나라가 주나라를 대체 운운은 될 수도 없었고 또 그만큼 주나라를 존중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당연히 작위에 따른 전통도 무시할 수 없는건 덤] 결국 후대에 와서 아예 작위를 무시하고 '왕'위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애초 송양공은 회맹의 룰을 운운할 자격도 못되었다. 저 사건 몇달 전에 송양공이 주최한 회맹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평소 송양공을 영 미덥지 못하게 보던 증나라 군주가 늦게 도착하자 송양공은 그를 [[팽형|삶아죽였다.]] 억류도 아닌 팽형에 처한 이 처사와 비교해보면 초나라의 행위는 귀여운 수준 더군다나 송양공이 주최한 회맹은 타국 군주들도 참여했다.] 여하튼 초나라는 군주가 포로로 잡혔으니 송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양공 대신 송나라를 지키게 된 목이는 춘추전국시대 최강국이던 초나라군의 공격을 여러 번 물리칠 정도로 군사적 안목도 상당했다. 이에 당황한 초나라에선 양공을 죽일테니 항복하라는 요구를 했으나 송나라에선 "양공을 죽일테면 죽여라. 우린 이미 목이를 새로운 군주로 세웠음."이라고 거부한다. 초나라에선 이젠 양공을 죽여도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다 아무래도 공식 회맹에 참석한 군주를 명분없이 죽이는 것은 무리수라고 판단했는지, 결국 다른 군주들의 중재를 통해 양공을 풀어줬다. 이후 목이가 송나라의 군주로 등극한 것을 안 양공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려 했으나, 목이는 양공을 다시 모셔와 군주직을 돌려줬다 양공도 이에 감격하여 목이에게 일절 책임을 묻거나 견제를 하지도 않았으나, 결국 그렇게 양공에게 나라를 돌려준 결과가 '송양지인'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차라리 이 작자를 그때 추방하고 목이가 공위를 이어받는 것이 송나라엔 더 좋았을 것이다. 이 대패로 인해 전국시대 중위권 국력을 자랑하던 송나라는[* 다만 어디까지나 중위권은 중위권일 뿐이었고 주변국이 워낙 강력한 제나라, 초나라 등이었기에 국력에 비해 딱히 대단한 신세는 아니었다.] 전쟁 피해 복구 및 국가 재건 이외의 일에 정신을 돌릴 여력이 없어졌다. 따라서 이 때 송나라를 운영하던 목이는 그냥 재능있는 중소공국 재상으로만 기억되며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견해 또한 고대 중국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볼 수 있다. 군주가 천하의 암군이라도 신하가 그 군주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군주제 국가에서는 언제나 어려운 질문이며 정답을 내리기 힘들다. 최소한 목이는 자신의 주군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에 그에 영합하지도 않았고, 비록 받아들여지지는 않더라도 언제나 올바른 충언을 했다. 이미 결과가 나온 이후에 실패를 비웃는 것은 범용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버려가며 절의를 지키고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따라서 위 견해에서 서술하는 논리의 결을 그대로 따라가자면 [[제갈량]], [[문천상]]과 같은 만고의 충신들도 '주군을 잘못 선택해 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멍청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송양공 이전에 진짜배기 패자였던 제환공도 다른 의미로 송양공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패자의 자질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게 사치, 여색, 사냥을 즐겼으며 말년에 간신배들을 신임하여 송양공보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인물이기 때문, 하지만 적어도 제환공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포숙의 천거 한번에 등용하고 그가 만족할 때까지 지위를 내려주다 못해 '중보'라는 호칭까지 줄 정도로 인재 보는 눈과 대범함을 지녔으며 이는 관중 개인뿐만 아니라 연나라를 구원하고 돌아가는 길에 그만 제환공을 환송하던 연나라 군주가 제나라 국경을 넘자 "연나라 군주는 연나라까지만 국경을 넘겨야 한다." 라며 '''연나라가 넘어온 만큼 땅을 넘겨줬다.''' 그리고 노나라와 전쟁을 한 후 화평을 맺었을 때 노나라 장군이 '''제환공에게 검을 겨누고''' 빼앗은 땅을 돌려달라고 협박하자 일단은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위기를 모면하자마자 태도를 바꾸려던 것을 관중이 그러면 안된다고 간하자 자신을 위협한 일도 불문에 붙이고 땅도 군말없이 돌려주는 등 적어도 간언을 듣고 뒷끝도 없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제환공의 최후가 비참하기는 했지만 애초 제환공이 남의 말도 안 듣고 대범하지 못하고 뒷끝만 긴 인물이었다면 춘추시대 최초의 춘추오패, 그것도 어느 사서에서나 후세에도 춘추오패로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겠는가? 최소한 송양공과 비교하기엔 제환공에게 모욕이다.] 송양지인이나 [[수주대토]] 같은 고사는 사실 [[상나라]](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에 대한 당대의 [[지역감정|비하적 인식]]도 담겨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비슷하게 망한 왕조인 [[하나라]]의 후예인 [[기나라#s-1|기나라]]도 [[기우]] 같은 우스꽝스러운 고사성어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로 중원으로부터 오랑캐 취급받은 초나라도 [[각주구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송양지인의 해석을 하면서 이를 오해해서 [[정공법]]과 같이 병법/교범에 충실한 전략전술을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교범에 따라 승리를 위한 원칙을 지키는 것과, 쓸데없이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며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오히려 양공은 '도강하는 적을 먼저 공격한다'라는 병법에도 뻔히 나와 있는 방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