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솔론 (문단 편집) == 개혁 이전 솔론의 활동 == 솔론은 이 상황에서 정계 주요인사로 부각되었다. 그 계기는 살라미스를 둘러싼 메가라와의 항쟁으로, 이 전쟁에서 솔론은 주도적 역할을 한다. 멀쩡한 정신과 멀쩡한 방식으로 살라미스 분쟁의 재개를 주장하면 다짜고짜 사형당할 수도 있어서인지, 솔론은 정신병에 걸린 척 하고 그 길이가 100행에 달한다는 시를 낭송하여 대중들을 선동한 뒤, 대중의 지지를 힘입어 전쟁을 재개한다. 일설에 따르면 이 당시부터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솔론을 지지하며 대중들의 지지를 결집한 뒤 솔론을 보좌했다고 한다. 솔론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방식 자체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아마도 별동대를 이용한 후방급습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솔론이 거둔 승리로도 살라미스의 영유권은 확고하지 않아서, 영유권 분쟁은 스파르타의 중재를 받아 협상에 들어간다. 이 협상에서 아테네의 영유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문헌학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동원한다. 먼저 문헌학적 근거로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인용한다. 그 내용은 일리아스의 사열식 장면 묘사에서 살라미스의 왕 [[아이아스]][* 보통 대(大) 아이아스라고 불리는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이다.]가 아테네 함선 옆에 진영을 구축했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한 구절을 삽입했다는 설도 있지만, 당연히 아테네에서는 헛소리로 취급했다.] 어쨌든 그는 호메로스 전문가로 통했기 때문에, 메가라에서는 딱히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적 근거로 솔론이 들고 나온 근거는 살라미스 섬 선주민들의 매장관습과 아티카 일대의 매장관습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메가라 일대의 관습이 시체의 얼굴을 서쪽을 향하여 매장하는 것인 반면, 살라미스와 아티카의 매장관습은 시체의 얼굴을 동쪽을 향하게 하여 매장한다고 주장했다. 메가라도 여기에는 반론을 제기하여, 아테네는 개인별로 따로 매장하지만 메가라와 살라미스는 일족끼리 같이 매장하는 관습이 있다고 반론한다. 어쨌든 솔론은 "살라미스는 이오네스 족의 땅"이라는 신탁의 지지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이오네스 족의 땅이라는 게 왜 아테네의 영유권에 대한 지지냐면, 당시 이오네스족은 죄다 이오니아 지역으로 도망가고 그리스반도 내의 이오네스 족은 아테네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본인들이 이오네스 족이라는 정체성을 상당히 강하게 갖고 있었다. 여담으로 이오니아라는 이름은 이오네스족이 정착해서 생긴 명칭으로, 아테네와 이오니아 일대 폴리스들의 동족관계는 나중에 이오니아 반란이 일어났을 때 스파르타가 지원요청을 거절한 것(스파르타는 도리에이스족이다.)과는 대조적으로 아테네가 이오니아 반란을 지원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살라미스 영유권 분쟁은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마무리 지을 때까지 질질 끌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테네가 우위에 설 수 있었다. 어쨌든 살라미스 영유권 분쟁에서 아테네의 승기를 잡아낸 일로 솔론은 아테네 주요 명사가 되었다. 시기상의 순서는 확실하지 않으나, 아마도 그 다음으로 킬론 사건의 사후처리를 중재한 것으로 보인다.[* 왜 시기상 순서가 이렇게 되느냐면, 킬론 사건은 30년째 질질 끌어온 분쟁이었기 때문이다. 듣보잡 중산층 시민의 발언 때문에 30년째 갈등을 빚어온 사건에 대한 재판에 양 측이 동의했을 리가 없다.] 킬론 사건으로 인한 분쟁은 기원전 600년 솔론의 중재로 인해 종식된다. 솔론은 공식 재판을 열 것을 제안하였으며, 그 결과 메가클레스 일파는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일련의 개혁과 동시에 진행되었는지도 모르나, 일단 이 이후 종교개혁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아테네 종교문화는 다소 폭력적이거나 폭주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솔론은 이를 파이스토스[* 크레테의 한 폴리스이다.]의 에피니데스의 협조로 종교제도를 재정비했다. 이후 직접 군을 통솔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솔론은 BC595년 델포이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키르라의 행위를 비난하여, 이에 대항하여 폴리스들, 특히 암피크티오니아 동맹의 공동대응을 이끌어낸다. 폴리스들은 솔론의 요청에 따라 연합군을 구성하여 키르라를 정벌하고 델포이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어쩌면 살라미스 영유권에 대한 신탁의 지지는 이에 대한 아폴론 신~~[[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이라고 쓰고 아폴론 신관들이라고 읽는다]]~~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역으로 솔론이 델포이의 호의를 바라고 이 일을 주도했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