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현준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부산 토박이로 사하초등학교, 장평중학교, 부산상고, [[동아대학교]]까지 학업을 모두 부산에서 끝마쳤다. [[동아대학교]] 시절에는 [[윤정환]], 오경석 등과 함께 [[동아대학교|동아대]]의 전성기를 이끌며 프로 팀의 주목을 받았는데, 특히 1995년 드래프트를 신청하자 부산 연고 구단이었던 대우 로얄즈는 손현준을 1순위로 점찍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추첨 끝에 안양 LG 치타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K리그에서는 안양 LG 치타스 플랫 3의 한축을 맡아 활약하였으며, 수비 능력에 초점을 맞춘 파이터형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다만 손현준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당시 안양의 수비 조직력이 영 좋지 않아서 안양의 실점율은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기 일쑤였다. 결국 1998 시즌 리그 최하위라는 성적을 받아들인 안양은 선수 리빌딩을 선언하며 기존 안양 주전 선수들을 대거 내보내는 강수를 두었는데 이 때 손현준도 이적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당시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긴축 재정을 유지하던 부산 대우 로얄즈는 고액 연봉 선수를 내보내고 부산 출신의 젊은 선수를 모으기 위해 1순위로 지명하고자 했었던 손현준에게 적극적인 영입 제의를 했고, 1999년 손현준 (안양 LG 치타스) ↔ 김상문 (부산 대우 로얄즈) 1:1 트레이드로 고향 팀인 부산에 입단한다. 하지만 부산에서 손현준은 컨디션 난조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수원 삼성과의 경기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며 수원에게 우승컵을 내준 원흉으로 낙인찍혔다.[* 선제골로 앞서가던 부산이 후반 36분 손현준의 자책골로 동점이 되어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전에서 그 유명한 샤샤의 신의 손으로 들어가면서 우승컵을 수원이 가져가게 되었다.] 결국 1년 만에 손현준은 친정팀인 안양 LG 치타스로 복귀해 [[조광래]] 감독을 처음 만났다. 복귀 첫 시즌인 2000년, 1년 전 아픔을 딛고 사상 첫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이후 2003년 은퇴를 선언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