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인호(가수) (문단 편집) == 생애 == 어릴 적 수풍댐 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기자 중국 [[지린성]] [[창춘시]]로 이주하여 살았다. 해방 후 귀국하였고,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심사위원의 권유로 월남하였다. 이어 KPK 악단에서 가수생활을 했고, 6.25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군 예대에 입대하여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한많은 대동강> ,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남행열차>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1980년대 중반까지 영화녹음작업을 했으며, 당시 그는 원로가수거목회, 만나리, 뿌리회 등 가수친목회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였다. 2016년 7월 16일, 지병인 간경화로 오전 6시 39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9세.[[https://www.yna.co.kr/view/AKR2016071601585200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