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시헌 (문단 편집) === [[박경수]] 나비효과, 그리고 활약상 === [[박경수]] 나비효과를 받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박경수는 당시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성남고등학교]]를 고교 정상으로 이끈 최고의 유격수였고, 한국의 국가대표 유격수 계보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까지 받던 선수였고, 하필 당시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양 구단은 유격수 자리가 동시에 공석이 된 차였다.[* 각기 양 팀의 주전 유격수였던 [[류지현(야구)|유지현]]과 [[김민호(1969)|김민호]]가 노쇠화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 상황이었다. 길어야 1~2년이라고 생각할 때, 최고의 유격수 유망주인 박경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산은 어떻게든 최고의 유격수였던 [[박경수]]를 잡을 작정이었다. 그래서 성남고 시절 박경수와 키스톤을 이루었던 [[고영민]]을 2002년 2차 1순위 픽으로 지명하기까지 했다.[* 박경수가 "'''영민이 형과 함께 뛰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고영민]]이 고교 랭킹 1위의 2루수임에는 분명했지만, 투수 자원을 뽑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다음해 어떻게든 박경수를 거액으로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LG는 두산에게 있어 유망주 전쟁의 [[잠실시리즈|영원한 적이었다.]] LG에서 돈을 더 쳐주면서 박경수는 [[LG 트윈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두산이 3억 8000만원을 불렀는데, LG가 4억 3,000만 원을 부르면서 게임 끝. 열받은 두산은 2년 후 [[김명제]]에게 '''6억'''을 지르면서 [[박병호]]를 지명한 LG를 누른다. 하지만 김명제는 더딘 성장을 보여 실망감만 잔뜩 안겼고 설상가상으로 음주운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야구선수로써의 활동을 마감했다.] 한편 손시헌은 '박경수가 오게 된다면 내가 설 자리가 없겠지'라고 판단하고 [[육성선수]]로 소정의 계약금까지 제시했던 LG를 뒤로 한 채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다만 박경수를 의식해서 두산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맞지만 약간은 과장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는 고등학교 선배이자 비슷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프로에서 내야수로 성공했던 [[김광수(1959)|김광수]] 코치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크게 작용한 면도 있다. 앞에서 본 바 김광수 코치가 동의대 진학도 추천해 줬고, 동의대 연습을 보러 가서 감독과 손시헌에 관해 의논을 했을 정도였다. 그 뒤 2003년 7월부터 정식 선수로 승격해 곧바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고 1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 2004년 본격적인 풀 타임 유격수로 활약한다. 비록 파워는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안정적인 포구 능력과 빼어난 강견을 바탕으로 덜덜거리던 두산 내야진을 안정시켰고, 2005년에는 타격에서도 개안하며 [[대한민국]]의 수준급 유격수로 변모하게 된다. [[안경현]]과 키스톤을 이루다가 안경현이 1루수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고영민과 두산의 철벽 키스톤을 이루게 된다. 이 나비효과는 몇 년 후에도 이어져, 상무에서 제대하자마자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당한 고교 동기 [[이종욱]]을 [[두산 베어스]]로 끌어들이게 되었고, 손시헌과 이종욱의 야구인생은 서로에게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