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기정 (문단 편집) === [[1937년]]~[[1945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onkijeong_ku.jpg|width=100%]]}}} || || 보성전문학교 시절 || 1937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 상과(商科)에 입학했다. 당시 보전에는 재정학을 가르치는 [[홍성하]](洪性夏) 교수가 체육부장을 맡고 있었다. 홍 교수는 뜨거운 민족주의자여서 학교 스포츠를 장려해 학생들의 사기를 진작시키자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그 지론으로 [[김성수(1891)|김성수]](金性洙) 교장을 설득, 1937년에 전조선의 중등학교를 졸업하는 우수 운동선수 다수를 뽑아 상과에 수용했다.[* 3년제 [[보성전문학교]] 상과의 한 학년 정원은 100명 가량이었는데, [[농구]], [[럭비]], [[육상]], [[축구]] 등 종목에서 선수를 뽑았더니, 과장된 표현을 섞어 전후 좌우로 한 학생 건너 운동 선수가 배치되었다고 한다. 남자프로농구 삼성 조승연(趙勝延) 단장의 부친 조득준(趙得俊)은 손기정과 함께 그 해에 상과에 입학했는데 1938년부터 1940년까지 3개 대회 연속 전일본종합농구선수권대회를 평정하는 보전 농구부의 주력 센터였다.] 손기정은 [[보성전문학교]] 육상부를 대표해 1937년 봄에 조선학생육상연맹이 주최하는 2개 대회에 출전, 보성전문의 우승에 기여했다. 그 대회 중 하나는 4월 25일에 거행된 조선학생 [[수원역|수원]]~[[서울역|경성]]간 역전경주대회.[* [[서울역]]에서 [[수원역]] 간의 거리는 약 41.5km로 마라톤 풀코스 거리인 42.195km에 얼추 맞다.] 당시의 학제는 3월 졸업, 4월 입학이었으니까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아 5명이 이어 달리는 보전팀 최종 주자로 [[시흥동(서울)|시흥]]~[[동대문운동장|서울운동장]] 간을 역주, 7개 팀 중 최선두를 달려 보전을 우승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6월 5~6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조선학생육상대회가 거행되었는데 첫날엔 1,500m, 이튿날엔 5,000m에서 우승했다. 당시 보전엔 박찬규, 백승욱, 인강환 등 장사들이 즐비했다. 이들이 포환, 원반, 해머던지기 등에 활약한 데다 손기정의 장거리 우승을 더하여 보전은 종합 우승을 달성했다. 이렇듯 손기정이 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자, [[조선총독부]]는 이를 골치 아프게 생각했다. 당시 1930년대 중반에 조선인 학생이 진학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조선인이 교장인 학교는 보전뿐이었고, 교수들 가운데엔 창문을 닫게 하고 [[한국어]]로 강의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 학교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이 재학하면서 육상대회에서 활약하자 그는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되어 보전에는 그를 중심으로 서클이 형성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손기정이 보전에 다니는 것을 꺼렸고 조선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총독부의 관헌은 손기정을 주야로 감시했고 이를 견디다 못한 손기정은 1937년 2학기에 반강제로 보성전문을 중퇴하고 [[일본]] 내지로 건너가 도쿄의 [[메이지대학]] [[전문부]] 법과에 [[편입]]했다. 그런데 [[도쿄]]에서도 [[일본]] 관헌은 손기정이 마라톤을 달리고 육상경기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막았다. 해마다 양력 정초엔 도쿄~하코네 간 대학대항역전대회가 거행되었다.[* [[하코네]]는 [[도쿄]]에서 서쪽으로 20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명승지인데 그 사이를 각 대학팀이 왕복하며 겨루는 역전경주는 일본의 한해를 여는 풍물시(風物詩)였다.] 손기정을 맞은 [[메이지대학]]은 그 역전에서 성적을 올리게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그는 달릴 수가 없었다. 일본 관헌이 공중 앞에서 손기정이 달리는 것을 금지했던 것이다. 결국 손기정은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졸업한 후 1944년까지 조선저축은행[* 現 [[SC제일은행]]의 전신이다.]에서 은행원으로 일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