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권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삼국의 하나인 [[오(삼국시대)|손오]]의 [[창업군주]]. [[손견]]의 차남이자 [[손책]]의 [[동생]]으로, 자는 중모(仲謀)다. [[황건적의 난]]이 벌어지기 직전인 182년에 태어나 [[촉한멸망전|촉한 멸망]]이 임박한 252년에 사망했다. '''삼국시대에 벌어진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일어날 때 생존하였던 군주'''로, 손권이 죽은 지 불과 11년 후 [[촉한]]이 [[촉한멸망전|멸망하고]], 28년 후 그가 세운 오가 멸망하면서 삼국이 통일되었다. 더군다나 [[관도대전]] 와중인 200년 5월부터 오의 지배자가 되었으니 자그마치 '''반세기 가량'''을 지도자로 군림한 셈이다. 덕분에 생몰년 하나만 따지면 가장 [[삼국지]]의 [[주인공]]에 부합하는 인물이지만, 말년에 여러가지 실책을 저질렀기에[* [[이궁지쟁]], [[합비 공방전]], [[동연]].] 손권을 삼국시대의 [[진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흔히 묻히는 삼국지 후반부의 주인공으로서는 손권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는 하다. 실제로 손권이 망가지는 것도 이 시기이니 그동안 뿌려놨던 떡밥을 회수하기도 좋은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비중이 가장 낮은데 인기도 더욱 없다. 여러 창작물에서도, 독자들의 인식으로도 [[유비]], [[조조]]와 다르게 손권은 어디까지나 서브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며 전체적인 삼국지 팬덤의 여론도 손권에게 취급이 박한 편이다. 안그래도 아버지와 형이 요절한 바람에 손권의 비중 부족은 삼국지에서 오의 비중이 다른 둘보다 현저하게 적은 문제를 낳는다. 다만 저지른 실책과 별개로 조조, 유비와 더불어 [[천하삼분지계|천하의 한 축을 차지했던]] 삼국시대의 군주였던만큼 손권이 [[강남(중국)|강남]]에서 이룬 업적 자체는 상당하다. 그는 재위 시절에 [[안후이|안휘]]와 [[후난|호남]]을 비롯한 각 지방의 [[산월]] 소수 민족과 그 밖의 [[이민족]]들을 토벌하고 [[대만]]과 [[하이난 섬|해남도]] 방면에 원정군을 보냈으며, [[동연]]과 접촉을 시도하는 등 국내 • 외 경영에 노력한 군주였다. 또한 손권은 [[수성(동음이의어)#s-1.2|후반에 촉나라와 동맹을 맺되 위나라와 촉나라의 싸움에 웬만하면 참가하지 않으려 했고]], 덕분에 오나라는 그의 재위 시절 삼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말년의 큰 실책들과 비중 탓에 조조 그 이상으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