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광 (문단 편집) == 생애 == 위서에 따르면 192년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이 후작 자리를 손광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이유는 불명. 199년에 [[손책]]이 [[유훈(삼국지)|유훈]]과 [[황역(삼국지)|황역]]을 무찌르면서 세력을 떨치자 [[조조]]는 자신의 동생의 딸을 손광에게 시집보내 그의 자손은 손씨와 조씨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되었다. 200년에 손책이 죽으면서 손익, 손광 등에게 손권을 잘 부탁한다면서 죽지만 손광 또한 20세에 효렴과 무재에 추천되었다가 임명되기도 전에 손책, 손익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난다. 강표전에는 222년에 [[여범]]과 함께 [[조휴]]와 싸울 때 정무중랑장이었는데, 군량 장비을 태워 손해를 입힌 죄로 여범이 오나라로 돌려보냈다. 이 때 열받은 손권이 성을 정씨로 만들어 죽을 때까지 금고형을 내렸다고 하는데, 222년에 손광의 나이는 손견이 죽을 때 뱃속에 있었다해도 30세가 넘어가므로 본전에서의 20세에 죽었다는 표기와 모순되어 [[배송지]]는 이를 손권의 이복 아우 손랑의 오기라고 적었다. 234년에 아들 [[손태]]는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손씨의 요절 유전자를 타고나]] 손권과 함께 신성에서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30대에 요절했으며, 손태의 아들 [[손수(삼국지)|손수]]는 진나라에서 표기장군, 의동삼사, 회계공까지 오르고 영강 연간[* 300~301년]에 죽었다. --[[격세유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