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중화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현대의 [[동아시아]] / [[한자문화권]] 국가들의 국명 중에서 유일하게 지역이나 민족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한 글자인 점[* [[한국]]: 대한민국/大韓民國 (한/韓)[br][[북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조선/朝鮮)[br][[중국]]: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国 (중화/中华)[br][[대만]]: 중화민국/中華民國 (중화/中華)[br][[일본]]: 일본국/日本国 (일본/日本)[br][[몽골]]: 몽골국/ᠮᠤᠩᠭᠤᠯ ᠤᠯᠤᠰ, 蒙古国 (몽골/ᠮᠣᠩᠭᠣᠯᠴᠤᠳ,蒙古)[br][[베트남]]: 공화사회주의월남/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共和社會主義越南 (월남/Việt Nam,越南)]과 고유명사 앞에 '대(大)'자를 붙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국가승계|계승한 국가]]인 [[대한제국]]처럼 [[대한]](大韓)이라는 전형적인 중화 왕조의 국호 형식[* [[수나라|대수]](大隋), [[당나라|대당]](大唐), [[송나라|대송]](大宋), [[원나라|대원]](大元), [[명나라|대명]](大明), [[청나라|대청]](大淸) 등.]을 따르지만, 전근대 [[군주제]] 국가가 아닌 현대 [[민주공화국]]이므로 어디까지나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의도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또 국기인 [[태극기]]에 그려진 [[팔괘]]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문화대혁명]] 이후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소중화가 실현되었다. [[유교]] 관련 서적이 [[문화대혁명/악영향#전통의 피해|중국에 없어서]] [[한국의 유교책판|한국에 남아있는 서적]]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라가고 중국에서도 전통 제례의식을 배우러 한국에 온다. 문화대혁명 당시 유교와 [[공자]] 역시 봉건 사상으로 여겨서 취푸(곡부(曲阜), [[공자]]의 고향)의 대성전에 모셔져 있던 공자상이 [[도끼]]로 박살나고 유교 경전이 사라졌으며 무형 문화재 또한 상당수 실전되었다. 대표적으로 문묘에 제사를 올리는 것, 즉 제향(祭享)하는 법이기도 한 《제공대전(祭孔大典)》도 [[실전]](失傳)되어, 한중수교 이후 [[한국]]의 [[성균관#석전대제|석전대제]]를 참고해서 재현해야 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060100329217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6-01&officeId=00032&pageNo=17&printNo=13748&publishType=00020|1990년 석전대제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행사로 초빙 기사]]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0410261719071|2004년 취푸 공묘 석전대제 재현 기사 기사]] [[21세기]]에도 중국보다 한국에 유교 관련 사료가 세세하게 많이 남아 있어서 한국의 도움 없이는 유교 연구가 어렵다고 한다. 유교 종주국인 중국보다 한국이 오히려 유교를 중국보다 잘 보전한 국가가 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