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정덕 (문단 편집) === 제 버릇 개를 못 주다. === 무제의 [[조카]]였으나, 젊어서부터 아들이 없던 무제가 양육하며 자신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거칠고 험악했으며 무제가 양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자 황태자가 되기를 원했고, 무제도 소정덕을 황태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501년 무제의 친아들인 소명태자 [[소통]]이 태어나게 되자 무제는 소정덕을 다시 소굉에게로 돌려보냈고 대신 502년, 서풍후(西豐侯)로 봉했다. 하지만 황태자 대신 [[후작]]으로 강등되었다는 생각에 소정덕은 이를 원망하며 만족해하지 못했고 항상 다른 모의를 쌓아 나갔다. 522년 음력 12월, 황문시랑(黃門侍郞)과 경거장군(輕車將軍)이 되었지만 얼마 후 [[북위]]로 도망가서 스스로 폐위된 황태자라고 하면서 화를 피하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위의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소보인(蕭寶寅)[* 양나라의 전 왕조였던 [[제(남조)|제나라]] 명제 [[소란]]의 6남 파양왕이었으나, 형 동혼후 [[소보권]]이 피살당하고 동생인 화제 [[소보융]]은 [[선양]]해 제나라가 망하자 북위로 망명했다. 북위에서는 그를 후대해 효문제의 사위로 삼았다.]이 표문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어찌 [[무제(양)|백부]]가 천자이고 [[소굉|아버지]]가 양주자사(揚州刺史)인데 저 가까운 친척을 버리고 멀리 다른 나라로 던져 버리겠습니까? 그를 죽이는 것만 못합니다. 그래도 북위에서는 적국 양나라의 황족인 그가 선전용으로 쓸모가 있었기에 그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영 미덥지는 않았는지 점점 소정덕을 대우함이 심히 야박해졌다. 이에 소정덕은 마침내 한 아이를 죽이고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며 먼 곳에 장사지낼 곳을 만들었는데 북위가 의심하지 않자 523년 북위에서 도망쳐 다시 양나라로 돌아오니 무제가 울면서 교육시키고 봉작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소정덕은 북위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뜻과 행동에 반성이 없었고 망명한 사람들을 많이 모아 밤중에 길가에서 약탈을 하였으며 525년, 경거장군으로서 예장왕 소종을 좇아 [[북벌]]하였지만 군사를 버리고 번번이 돌아오기도 하였다. 무제는 소정덕의 죄악이 앞뒤로 쌓이자 분노하여 소정덕을 관직에서 파면하고 작위를 삭제한 뒤 임해(臨海)로 유배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풀렸는지 소정덕이 아직 임해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사신을 보내 뒤따라가서 소정덕을 사면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