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자성헌황후 (문단 편집) == [[황후]] 책봉 == [[1073년]]에 북송 명주(洺州) 지방[* 오늘날의 [[허베이성]]]의 명문가 출신 증태위(贈太尉) 맹원(孟元)의 손녀로 태어났다. 17세가 되던 해, [[송철종]]의 할머니 [[선인성렬황후]]에 의해 궁에 들어갔으며, 궁에서 궁중예법과 교육을 받았다. 성품이 온화하고 부드럽고 학식도 풍부했으며 예법상 황후가 가져야 할 품행을 갖추었기에 황실의 어른인 선인성렬황후와 신종의 정실 [[흠성헌숙황후]]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고, 이후 선인성렬황후(선인태후)가 100명의 여인들 중 직접 간택하여 원우7년([[1092년]])에 황후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인 철종은 원래부터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글솜씨, 시짓기를 가진 [[소회황후|첩여 유씨]]를 총애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연상인데다 외모도 평범한 맹황후를 여자로서는 가까이 하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본래부터 인품을 중요시 여겼던 철종의 할머니 선인태후는 철종을 불러 "이렇게 좋은 아내를 얻기가 쉽지 않다."면서 여러 차례 타일렀지만, 철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맹황후에게 황후로서의 대우는 했지만 여인으로서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철종은 할머니가 살아있는 동안 조정회의에서 할머니뿐만 아니라 대신들에게도 자신의 의견이 종종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대신들이 할머니 의견은 따르고 황제의 생각에 대해서는 '폐하께서 아직 어리시고 태황태후마마께서 수렴청정을 하고 계시다' 식으로 잘 따르지 않았던 것에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선인태후는 손자의 이런 태도에 탄식하면서, 맹황후를 두고 "현숙하지만 복이 없구나. 그렇지만 나중에 나라에 화가 생기면 감당할 이가 맹씨일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