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론 (문단 편집) === 후기 소론 === * 정홍순: (1720년 ~ 1784년) * 서명응: (1716년 ∼ 1787년) 서명선의 형이며 서호수, 서형수의 아버지이며 서유구의 조부. 보만재(保晩齋)라는 호를 정조로부터 내려 받았다. 소론이였으며 정치 일선에 활약한 동생과 달리 명망 높은 학자로 역학에 뛰어났으며 실학의 대가, 북학파의 비조로 여겨진다. * [[서명선]]: 소론 대신 중에서 유일하게 [[벽파]]의 입장에 있었던 특이한 인물. 영조 때부터 이미 강직한 신하로 이름이 높았다. 홍인한, 정후겸 일당이 정조를 핍박하자 정조는 측근인 홍국영을 시켜서 서명선에게 지원 사격을 부탁했고 서명선이 총대를 메고 홍인한, 정후겸을 탄핵하면서 정조의 대리 청정이 그제서야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정조 즉위 후에 정조의 최측근 모임격인 동덕회 사인방의 일원이 되었다.[* 나머지 셋은 [[홍국영]](척신파), [[김종수(조선)|김종수]](벽파), [[정민시]](시파)다.] [[김종수(조선)|김종수]], [[심환지]]를 비롯한 벽파쪽 이방을 취했으나 문제는 심환지 등은 서명선조차도 소론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탄핵하여 격분한 정조가 이조판서 김종수를 불러 호되게 질책하기도 했다. 훗날 [[남인]] [[채제공]]이 급격히 부상하자 벽파와 힘을 합쳐서 채제공을 격렬하게 탄핵했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라면 제가 기꺼이 반좌의 율에 따라 역적죄로 처형당하겠습니다."라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이에 정조는 노론 명문가의 큰 어른인 김치인을 영의정으로 삼고 노론 탕평파인 김재로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강하게 화해를 밀어붙혀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일을 성사시켰다. 그 이후 영의정을 두 차례나 지냈으며 조정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상소 한장 덕분에 정조의 최측근이 되었고 심지어 사후에 벽파의 공격도 대왕 대비가 "오늘이 무슨 날이냐[* 대왕 대비가 하교한 날이 서명선이 상소를 올린 12월 3일이다.] 공 세운 건 서명선이다. 더 큰 죄가 있어도 덮어서 공이 빛나게 해야 한다."고 해 넘어가진다. 덕분에 동덕회 4인방 중에서 끝이 가장 좋았다.[* [[김종수(조선)|김종수]]는 [[시파]]에 의해서 역적으로 찍히기도 했고 [[정민시]]는 [[벽파]]에 의해 역적 찍히고 [[홍국영]]은 정조 4년에 몰락했다.] ~~역시 인생은 한방이다.~~ * 구윤옥 * [[이시수]]: (1745년 ~ 1821년) 본관은 [[연안 이씨]]로, 좌의정 이복원의 아들이자 이조, 호조, 병조 판서 등 중요 직책을 역임했고 우의정, 영의정도 해본 영조, 정조, 순조 조의 대신. 정조 말엽에 이미 소론의 영수 격이었으며 심환지와 함께 정조를 간호하기도 했다. 순조가 즉위한 후에 정순 왕후의 서슬퍼런 치세에 납작 업드려서 정순 왕후를 지지했지만 정순 왕후가 벽파가 수세에 몰리자 2차 수렴 청정을 시도하자 논리적으로 이를 물리쳐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훗날 [[홍경래의 난]]이 터졌을 때 그의 동료 [[김재찬]]과는 달리 난을 동네 민란 수준으로 대수롭잖게 여긴 흑역사가 있긴 하지만 홍경래의 난 등의 반란은 조선 역사상 유래가 없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그렇게까지 폄하할 일은 아닐 것이다. 대중에게는 어째 노론의 좌장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으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나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이시수를 노론 벽파라고 서술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 이병모: (1742년 ~ 1806년) 이시수와 더불어 최후의 소론 영수 격이었던 사람. 예조, 호조, 병조, 형조 판서를 두루 다 지냈고 삼정승에 모두 임명되보았다. 영의정에 임명된 것만해도 1799년과 1803년에 걸쳐 두차례나 된다. 순조가 즉위했을 때 영의정의 몸이었으며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이름있는 소론 대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소론도 사실상 종언을 고했다. 그외에도 한태동, 오도일, 이유원 등의 인물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