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론 (문단 편집) === 초기 소론 === * [[윤증]] * [[박세당]]: [[사문난적]]하면 윤휴와 함께 떠오르는 그 서계 박세당이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도 주류 소론과는 차이가 좀 있었고, 1660년에 처음 관직에 나갔다가 1668년에 낙향한 이후로는 관직에 나간 적도 없고 정치적 활동을 한 적도 없다. 덕분에 엄밀히 평가하면 인물의 중요도와 별개로 소론의 목록에 포함시키기 좀 껄끄러운 게 있다. [[송시열]]이 속한 [[노론]]의 반대파인 소론과 그나마 친하게 지냈다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사실 정치적 파벌이 어디냐는 별로 안 중요하고, [[사문난적]]이라는 점과, 주자학을 비판한 '사변록'과 당시 농업 기술에 대해서 다룬 '색경'이 포함된 서계집의 저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색경 때문에 초기 실학자(중농주의)로 분류되는 일이 많은 인물. 그 유명한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다. 농사를 부끄럽다 하면서 밥을 먹는 것은 부끄럽지 않으냐?"[* 그의 집에 텃밭을 만들어 놓고 직접 농사 일을 하자 그의 아들이 만류하며 하는 말에 답한 말]의 주인공. 그는 [[인현왕후]] 퇴위에 목숨 걸고 반대하다가 국문으로 죽은 [[박태보]]의 아버지이며, 조태억의 스승, 박세채와는 항렬이 같은 일가 친척이다. * [[박세채]]: 증과 더불어 소론의 재야 영수. 탕평책의 선구자로 황극 탕평설을 내놓아 숙종 시절부터 탕평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이다. 김익훈, 장희재 처벌 등에 강경하였고 송시열 등을 존중하여 소론의 영수임에도 노론과도 사이가 좋았던 친화력있던 인물이다. 애초의 그의 사위 송순석은 송시열의 손자였다. 정작 그는 소론인데, 그의 제자들은 송시열이 남인 손에 죽는 걸 보고 빡쳐서 죄다 노론으로 전향했다.(…) 물론 그 덕에 소론측 인물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종사될 수 있었다. 벼슬을 아예 거부하였던 [[윤증]]과는 달리 여러 차례 벼슬길에 올랐으며 권신 김석주의 미움을 사기도 했으나[* 그런데 둘은 가족관계이기도 하다.] 김석주가 51세로 급사한 덕에 피해는 보지 않았다. * [[윤지선]] * [[유상운]] * [[나양좌]] * [[서문중]] * [[조상우]] * 김우항 * [[남구만]]: 숙종조의 명재상이자 [[송준길]]의 제자이며 소론의 조정 영수. 노론 - 소론 분당 이전에는 [[한성판윤]]을 하며 [[탁남]]의 영수이자 영의정인 [[허적]]의 서자 허견의 만행을 탄핵하다가 유배를 가는 등 강직한 인물이었다. 북방의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폐사군의 복설을 주장하고 서북인들의 등용을 적극 간하는 등 [[홍경래의 난]]을 100년 전에 미리 예견한 인물이다. 유능하고 명망이 높아 환국 이후 즉각 영의정에 임명되었는데 자기네 당파에는 엄격하여 서인 출신의 한중혁 등의 [[인현왕후]] 복위 운동은 가혹하게 처벌한 반면에[* 사실 말이 운동이지 반란 모의질 한 거라 이게 맞다. 남구만 본인은 "왕후 복위는 전하가 결단한 거고 얘들은 (반란의) 실체가 있다"고 표현.] 남인 민암, 장희재 등에게 은전을 베풀 것을 고집하다가[* 이쪽도 한중혁의 모의를 포착하고 고발하다가 마음 바뀐 숙종한테 꼬투리 잡힌 거라(…)] 많은 소론들이 분노하여 노론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 [[최석정]]: (1646년~1715년) [[인조]] 대의 명신 지천 [[최명길(조선)|최명길]]의 손자. 가학 계승 외에도 남구만과 박세채의 문인이다. 조부처럼 현실정치가로 국가 개혁에 노력했고, 상대 붕당도 끌어안으려 했다. 젊었을 때에는 남인에 대한 저격수로 활약해 윤휴를 공박하기도 했다. 영의정으로 장희빈의 처형을 반대했으며 환국의 나날에도 온건한 태도로 처신을 잘해 8번이나 영의정을 역임했다. 여담으로 조선사에서 최다 영의정 역임자. 최장은 [[황희(조선)|황희]]. * 정제두: (鄭齊斗, 1649년~1736년)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영일,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성리학자였으나 [[양명학]]에 관심을 갖고 양명학자가 되었으며, 강화학파의 시초가 되었다. 윤증의 문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