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록도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의 소록도 === 한편 소록도 자혜의원 2대 원장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1921~29)는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병원에서 강요하던 일본식 생활([[기모노|일본식 의복]], [[다다미]]를 비롯한 일본식 주거문화, [[일본 음식]] 등)을 전면 폐지하는 한편 자유로운 면회와 교육의 기회 제공,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될지 몰라 조선총독부에서 탄압하던 종교활동(특히 [[개신교]]와 [[천주교]] 등의 선교활동), 심지어 취미생활과 오락 활동까지 권장하는 등 극도로 소외받고 차별받던 한센인들에게 혜택을 많이 주려고 노력했다. 얼마나 환자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는지 소록도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한센인들이 없는 돈을 추렴하여 송덕비까지 세웠을 정도였다. [[http://sorokdo.go.kr/museum/html/content.do?depth=cm&menu_cd=03_02_01_02|#]] 그러나 이후 부임한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周防正季)는 소록도를 자신의 탐욕을 실천할 도구로 삼아서 수많은 소록도 한센인들을 토목공사에 동원하고 심지어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 매달 정기적인 참배를 강요하는 짓까지 벌였다. 결국 스오 원장은 원생 이춘상의 의거로 사살되었고[* 이춘상 의사는 국사범으로 취급되어 1943년 2월 19일 처형되었다. 해당 사건은 2003년 10월 27일 SBS <[[백만불 미스터리]]>에 소개되었다.] 한센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의거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병 때문에 친척들이 다 부정해서 아무도 [[독립유공자]]로 신청하지 않았다. 2003년 '이춘상선생기념사업회(현 이춘상기념사업회)'가 세워져 국가보훈처에 총 세 차례 독립유공자 인정을 촉구했으나 보훈처 측은 "행적이 불분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를 기각해 왔다. 그나마 2022년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에 '이춘상 6.20의거 기념비'가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792957|세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