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록도 (문단 편집) =====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아네 슈퇴거|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age(1934-04-24)])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88)[* 두 사람의 신분에 대해 약간의 혼선이 있는데 [[재속회]]원으로 수녀([[수도자]])는 아니고 가톨릭 신자로서 성자처럼 봉사했기 때문에 ‘수녀님’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785196.html|‘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삶’ 영화와 책으로]] ]은 각각 1962년과 1966년에 [[가톨릭교회]]의 [[재속회]]인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시녀회 회원으로 처음 소록도 땅을 밟았다. 간호사로서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의 거주지인 소록도에서 구호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공식적인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자원봉사자로 남아 반세기에 가까운 43년(39년) 동안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보살폈다. 2005년 11월 23일 소록도의 집집마다 편지 1통이 도착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길 원했던 두 사람은 건강 악화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소록도에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2005년 11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홀연히 섬을 떠났다.[* 수도회 소속 재속회원으로 수녀가 아니었던 만큼 이들이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서의 생활은 40여 년 가까이 얼굴도 보지 못한 친척들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소록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오스트리아로 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 최저 수준의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마리안느는 암에, 마가렛은 치매에 걸리기까지 했다. 다행히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두 간호사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도록 조치했다고. 두 사람은 큰돈이라며 고사했지만 구본무 회장측에서 계속 설득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두 사람이 소록도를 떠나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지 11년이 지난 2016년은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이 되는 해로 휴먼 다큐 <마리안느와 마가렛>(감독 윤세영·작가 양희·내래이션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조명하는 의미에서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가 기획하였으며 소록도가 위치한 [[전라남도]] [[고흥군]]과 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제작·지원하였다. 마가렛 피사렉은 [[2023년]] [[9월 29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인해 향년 88세로 사망했다.[[https://m.yna.co.kr/view/AKR20230930026100054?section=society/all&site=hot_news_view|#]] [[https://www.youtube.com/watch?v=XeaYtMrsMgI|다큐멘터리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랑 예고편]] 다큐멘터리는 소록도에서 자원봉사자로 40여년 동안간 오직 한센병 환자들을 사랑으로 보살펴 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소록도 생활과 주변인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생활 모습과 오스트리아 현지 가족들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또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담담하게 두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뒀다. 특히 이 작품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해져 다큐멘터리로써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