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 (문단 편집) === 노동 === 소련에서 전반적인 노동조건은 스탈린 시절 이후 좋아진 편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주60시간 노동이 일상적이었다가 혁명 이후로 1일 8시간 주 48시간제로 바꾸었고 1927~33년에 이르는기간동안 1일 8시간 근무제에서 1일 7시간 근무제로 바뀌면서 주 42시간제 노동제도를 채택하였으며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대략 40.3시간 안팍이었다고 한다. 물론 대숙청 시기에 생산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근무태만으로 [[굴라크]]에 보내진다거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다시 근무시간이 증가하여 주 48시간제로 복귀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로 주48시간제는 상당기간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전후복구가 어느저도 마무리된 [[흐루쇼프]] 시대인 1956년에 1일 7시간 근무제로 복귀함과 동시에 주41시간 노동제를 시행하엿고(토요일은 6시간 근무), 이어 1961년에 토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그 대신 평일 근무시간을 1시간씩 늘리는 방식으로 주5일제 주40시간 제도가 전면 시행되었다. 이후 브레즈네프 시대부터는 직장 분위기가 크게 여유있게 변하면서 소위 복지 천국이라고 불리는 [[북유럽]]보다 근무조건이 개선되었다. 당시 소련 노동자는 휴가도 길게 배정받았고, 병으로 근무하지 못하는 때도 허가를 받아 국립 요양원에서 치료 목적으로 요양할 수 있었다. 특히 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배정하였기에, "공식적으로는" 실업률이 0%대였고, 대부분의 기업이 공기업이었기 때문에 직업안정성은 하나는 높아서 한번 입사하면 어지간히 큰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평생직장이 보장되었다.[* 물론 그 대신에 급여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편이었다. 다만 공공요금이 쌌고, 집을 싸게 임대했으며, 시장에서 부업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걸로 버텼다.] 그렇지만 단기간 계약으로 일하는 노동자도 상당수 있었고, 약 1,100만명 가량의 노동자가 매년 직업을 바꿨으며, 기술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거나, 실제 필요 인원에 비해 과다하게 배치되는 등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https://content.time.com/time/subscriber/article/0,33009,842009,00.html|(출처) Soviet Union: Are the Jobless Unemployed? (영어)]] (소비에트 연방: 무직자는 실업자인가?), 1965년 8월 20일, TIME.] 따라서 소련은 공식적인 실업률은 매우 낮았어도 실제로 모든 인민이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생활한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에서는 무직자나 부랑자 등 일정한 직장이 없는 사람에게 일명 사회적 기생 혐의를 적용하여 처벌하였고, 스탈린 말기와 [[유리 안드로포프]] 시대에는 노동규율 강화를 명목으로 일정 수입이 없는 부랑민들도 단속을 했기 때문에 실제 실업률이 얼마인지 정확한 통계를 집계하기 어려웠다. 보통 4개월 이상 별다른 이유없이 일을 안하면 처벌하는 식이었고, 그래서 소련에서는 [[고프닉]]이나 부랑민도 최소한 부업을 가지거나 단기 혹은 단시간 계약직에 지원하여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정하고 몇년간 직장 안다니고 놀려면 최소한 자격증 시험이라도 본다는 핑계는 대던가, 병원 다녀와서 허위진단서라도 떼는 식의 수고는 들여야했던것이었다. 물론 가정주부들과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농민과 사냥꾼들은 이 규정에서 당연히 예외이기는 했다. 사회적 기생죄는 특히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쓰였는데, 주로 반체제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사회적으로 기여도가 낮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처벌했다. 대표적으로 198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Иосиф Бродский)는 소련 당국을 비난하는 문학작품을 내놓다가 사회적 기생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한동안 아르항겔스크에 있는 국영농장에서 노역해야 했다. 이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가수나 반체제 문인처럼 소련 당국에서 탄압했던 사람들도 별도로 부업에 종사했다. 가령 빅토르 초이는 화부로 일했으며, 마이크 나우멘코는 극장 스태프였으며,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는 경비원으로 일했다. 유리 셰브추크는 미화원이나 화부, 야간경비원 등으로 여러 단기직업을 전전했다. 또한 [[브레즈네프]] 집권 후반기에는 노동생산성을 깎아먹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점이 되었다. 그래서 [[유리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에 등극하고 나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잠시 이를 단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드로포프 사망 후 보수파 인사였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집권하면서 다시 느슨해졌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에는 국민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음주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소련/경제, version=10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