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금 (문단 편집) == 소금과 인간 사회 == >一两白银一两盐 (일량백은 일량염) >1량의 백은은 1량의 소금과 같다.[* 고대 중국의 격언으로, 귀금속인 백은과 같은 무게로 거래될 정도로 소금이 귀했다는 것이다.] 지위고하, 빈자, 부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반드시 먹어야 살 수 있는 식품이기에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필수 식품 중 하나로서 인류에게 항상 제일 중요한 물자 중 하나였다. 고대에 좀 나라가 기틀이 잡혔다하는 곳들은 대부분 소금을 국가에서 전매했을 정도이다. 고대 중국의 경우 [[염철론]] 같은 책도 나올 정도였으며, 로마 제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던 [[로마 가도]] 중 일찍이 건설된 중요한 도로 중 하나도 로마 도성과 소금 산지를 연결해주는 살라리아 가도(소금의 길)였다.[* 로마의 소금 전매 정책이 중국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중국이 소금에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매겨 예산의 반 정도가 소금에서 나올 정도였다면, 로마는 평민들의 생활안정과 민심 때문에 국가 위기 상황이 아닌 한 소금가격을 낮게 유지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손해보고 팔기도 했다.] 여러 모로 현대의 [[석유]]와 비슷한 위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은 [[염철론|세금 제도와 관련된 역사가 깊고]], 중국 경제 얘기하는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물품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래서 소금 전매제는 2700년 동안 큰 틀에서 유지하면서 세부적인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청대 소금 전매제는 [[쯔궁시]] 문서 역사 문단 참조. 중국은 오랜세월 소금 전매를 운영하면서 중국역사상 최대의 암시장조직인 염상, 염적(鹽賊)이란 세력을 낳는 결과를 만들었는데 이들 염상은 중국에서 신흥종교와 더불어 중국의 민란세력의 중추로 활약한다.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나 [[주원장]]과 함께 천하를 다투던 [[장사성]]은 소금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만들었다. 또한 중국의 그 유명한 무림고수들 상당수가 이 염상 관련자들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유협 출신인 삼국지의 [[관우]]는 소금 전매 과정에서 토호가 된 악질 염전주를 죽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실제로도 관우의 출신지인 하동군[* 현재의 윈청 시이다.] 해현에는 셰치(해지)라는 염호가 있어서 [[하나라]] 때부터 소금을 생산해 한 왕조 때는 장안, 낙양에 소금을 공급했고 현재는 공업용 정제염을 생산하고 염호의 경관 덕에 관광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국경제의 발전에 따라 소금전매로 얻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로는 소금으로 얻는 수익이 국가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2017년에 소금 전매제도를 폐지했다. 소금 전매제의 선두주자 중국이 소금 전매제를 철폐하여 해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 소금은 [[노예]]를 매매하는 데 화폐로 쓰이기도 했다. 노예의 몸무게만큼의 소금을 값으로 쳤는데, 아무래도 여자나 어린이, 노인보다는 성인 남성이 제일 노동력이 좋고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가다 보니 그런 것이라고 한다. [[내륙국|바다를 접하지 않았거나]], 소금광산이 없는 이상 소금은 생산지 거리의 배 이상으로 비싸졌기에, 소금 무역을 장악한 상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부를 축적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을 강성하게 만들어 준 것 역시 소금이었다. 베네치아 일대는 [[지중해성 기후]]의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 햇빛과 포 강 하구의 넓은 갯벌, 그리고 염도 높은 지중해의 삼박자가 어우러져 천일염 생산에 아주 최적화된 지역이었기에, 베네치아인들은 주변 지역에 양질의 소금을 대량으로 공급하며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이렇게 얻은 부는 베네치아가 군수, 조선, 출판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쥐게 해 준 자금이 되었다. 아래에서도 보듯 [[염장]]에도 상당히 많은 소금이 필요했으며, [[소]], [[말(동물)|말]] 등의 가축도 소금을 많이 먹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북군이 남군의 제염소를 보이는 족족 파괴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게다가 거의 모든 국가들이 현대처럼 물류체계가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존식품]]의 중요성이 필수였던 시기인지라 염장에 필요한 소금은 내륙에서 상당한 고가에 팔렸다. 한반도에서도 소금은 값비쌌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천일염]] 방식의 소금 생산은 그 첫번째가 구한말~[[일제강점기]]이다. 그 전에는 직접 끓여서 생산한 [[자염]]이었고, '''소금 1가마니 = 쌀 3가마니''' 였다. 이러하니 괜히 중국에서 오랜기간 동안 소금을 전매하고 한반도에서도 소금을 고려 말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소금전매제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역사는 지명으로도 남아 있는데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마포구 [[염리동]]이 그런 경우다. 염창동은 과거 이곳에 지방에서 생산해서 올라온 소금을 모아놓는 소금 창고가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염창동에서 소분한 소금은 마포로 향했는데 자연히 그곳에는 소금장수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게 됐고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 염리동이다. 일본에서도 1997년까지 소금을 전매품으로 취급했다.[* 지금도 [[일본담배산업]]은 '담배와 소금 박물관'(塩博物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미 1960년대에 소금을 자유롭게 사고 팔수 있게 한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에서 꽤 특이했다. 옛날엔 생존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소금을 구황염(救荒鹽)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나라에서 구호물자를 백성에게 풀곤 했는데, 이때 굶주리던 백성들에게 가장 요긴한 물자는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아니라 소금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상도(드라마)]] 40화에서 만상의 임상옥이 소금을 비싼 값에 사들여 [[https://youtu.be/GUJXdjOSpLE|구황염으로 풀었다]]. [[독립군(한국)|독립군]]이 [[봉오동 전투]] 및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의 소금 보급로 차단이었다.[* 만약 그대로 고립되었다가는 고사(枯死)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금정책이 조금만 바뀌어도 민심이 요동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중국은 소금을 밀매하는 세력들이 민란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기폭제 중 하나도 소금세[* 프랑스 대혁명 전의 염세는 저염세와 고염세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이는 인두세 비슷하게 사람 하나마다 강제로 사야하는 수 킬로그램의 소금과 더불어 막대한 반발을 일으켰다. 염세율이 다른 지역은 보통 강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 강을 이용한 소금 밀매와 밀수출을 막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와 행정 비용이 상당히 부담되었을 정도이다. 더구나 이렇게 강매당한 소금을 되팔거나 염장 식품을 제조해서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었다.]와 소금 강매였고, [[인도 제국]]의 독립운동의 기폭제도 영국의 소금 전매 정책에 대한 [[마하트마 간디]]의 반발로 이루어진 소금 행진이다. [[러시아]]에서도 1648년에 소금에 과도한 세금이 붙자 소금값이 폭등하면서 이는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렇듯 인간 사회에서 중요하고 또 귀한 소금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금은 [[후추]]처럼 부의 상징에서 흔하디 흔한 식료품 중 하나로 전락했다. 소금의 값이 폭락하게 된 시점은 국가나 지역마다 다른데, 보통은 [[냉장고]]의 개발 및 도입 시기와 겹친다. 이때부터 [[염장]]식품을 잘 안 먹게 되었기 때문. 특히 염장식품의 염도도 극히 낮아져 예전처럼 물에다 헹궈 먹어야 할 필요가 없어질 정도로 소금 소비량이 폭락했다. 그래서 20세기 유럽인들의 나트륨 섭취량은 19세기 유럽인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미국이나 유럽은 20세기 초부터 그렇게 되었으나, 한국은 1970년대 까지도 소금이 값비쌌고 현대에도 일부 내륙의 극빈국들은 과거처럼 소금이 귀하다. 과거 한국에서는 소금을 식품이 아닌 광물로 취급해 왔으나[* 소금은 산업용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수산화나트륨]], [[락스]] 등의 원료로 쓰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암염]]이 더 많으므로 틀린 말은 아닌데, 국내는 [[천일염]]이 대부분이니 역시 이상한 분류다.] [[2008년]] 초에 와서야 식용 소금을 식품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352&ancYd=19930306&ancNo=04541&efYd=19930306&nwJoYnInfo=N&efGubun=Y&chrClsCd=010202#0000|1993년도 염관리법 조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