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군 (문단 편집) == 고려 왕조의 왕실 용어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57552&cid=46621&categoryId=46621|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소군' 설명]] [[고려]]왕조에서는 왕족의 [[사생아]]를 승려로 출가(出家)시켰는데, 머무는 사찰의 이름을 따와서 '소군(小君)'으로 호칭했다. 정식 [[후궁]]이 아닌 [[궁녀]]나 [[천민]] 출신인 [[첩|폐첩(嬖妾)]], [[정부(관계)|정부]]가 [[왕]]의 자녀를 [[출산|낳으면]], [[조선]]에서는 비록 [[차별]]은 있을지언정 후궁으로 승격시켰고 그 소생 자녀들도 공식적으로 [[왕족]]의 예우를 했지만, 고려에서는 후궁으로 승격시키지 않았고 자녀들 또한 [[사생아]]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보통 공식적으로 왕족 신분은 아니었고, 왕의 친아들이라 할지라도 다른 왕자들이 출가하면 받는 '[[국사]](國師)', '[[왕사]](王師)' 칭호도 주어지지 않았다. 본래 소군은 명목상으로는 왕의 서자이지만, 신분제도상으로 종모법(從母法)에 따르면 [[천인]]이었다. 따라서 출가시켜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삼중대사라는 승직을 수여해 천인 신분을 면하면서 승려귀족의 일원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승려가 되었어도 그들의 출생과정 자체가 세속성을 내포한 것이었고, [[무신정권]]기에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음으로, 특히 이 시기에 그들의 직·간접적인 정치활동과 비행 등 폐단은 많았다. 소군의 사례 중 유명한 인물로 [[현종(고려)|신혈소군]][* 신혈사에 있는 소군이란 뜻.]이 있지만, 이 경우는 그가 [[안종(고려)|안종]]과 [[헌정왕후]] 간에 [[근친상간]]과 [[간통]]으로 [[임신]]해 태어나 정식 [[혼인]] 관계에 따른 출생을 하지 않았기에 사생아로 취급되었을 뿐, 부모가 모두 왕족이므로 신분의 기반은 사실 매우 탄탄했고, 게다가 광종 계열의 왕가가 단절되어가는 상황까지 겹쳐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현종이 [[불륜]]으로 인한 [[사생아]]였다는 점이나, 출가해 소군이라고 불렸던 점에서 [[고려사]]에 가장 먼저 나오는 소군의 예라고 하겠다. 이때에 현종에게 붙여진 소군도 넓은 의미에서는 지금까지 설명한 소군과 통하지만 어머니가 궁인이나 폐첩이 아니라 오히려 태조의 손녀이며, 경종의 계후였던 [[헌정왕후]]였다는 점에서 다른 소군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현종의 혈통 자체에는 토를 달기 어려웠고, 이후 정치적 변동에 의해 왕위에 즉위할 수 있었다. 고려 전기에는 적실 왕자를 칭할 때 소군과 어휘상으로 대조 되는 용어로 [[대군]]을 사용했다. 모든 적실 왕자를 대군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지만, 적실 왕자를 대군이라고 칭했던 것에 반해 왕서자를 소군이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분류:역사]][[분류:고려의 왕자]][[분류:서출]][[분류:고려의 승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