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종문화회관 (문단 편집) == 건축물 == 세종문화회관의 건축가는 엄덕문이다. 1973년 [[서울시]]가 주관한 현상설계에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설계안에 관해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의 사랑방입니다. 구조는 [[한옥]]의 안채와 별채를 세우고 두 건물을 이어주는 [[회랑]]과 한가운데 안마당에서 뒤뜰로 연결되는 개념을 현대건축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광화문]]이라는 위치에 짓는 기념 건물로 현대감각과 우리 정서가 어울리는 배치와 건축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라고 설명한 바 있다.[* <프레시안 인터넷판>, 2009.3.6,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한 건축가, 엄덕문" 기사 참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기와 지붕형태로 설계안을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기와를 씌우지 않고도 전통을 살릴수 있다고 주장해 결국 자신의 안을 관철시킨 일화가 전해진다. 개관 당시 대극장을 비롯해 소극장, 전시장까지 잘 지었으며, 당시 유럽과 미국의 세계적인 홀과 비교해 봐도 크게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북통일]] 시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써먹으려고 괜히 크게 지었다는 설이 널리 펴져 있는데, 거짓이다. 세종문화회관보다 몇 년 앞서 완공된 여의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이 이미 통일을 대비한 규모[* 통일이 이루어질 시에 현재 본회의장인 제1회의장을 [[하원]], [[예결위]] 회의장인 제2회의장을 [[상원]] 회의장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로 지어졌기 때문에 이 루머는 설득력이 없다. 또 1972년 성립된 [[대한민국 제4공화국|유신 독재 체제]]의 장기 존속을 대비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 청사로 쓰기 위해 4,000석 규모로 크게 지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유신 시대 박정희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하기 위해 조직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유신헌법]] 규정상 2,000인 이상 5,000인 이하의 대의원으로 구성하도록 규정되었는데, 실제 2,500~2,60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되었고, 이런 대인원이 들어갈 회의장이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세종문화회관이 완공된 후에도 여전히 [[장충체육관]]에서 회의를 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그냥 루머에 불과하게 되었다. 어쨌든 세종문화회관은 건립 전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정권을 위해 지어졌다는 루머 때문에 독재자의 과시욕을 드러낸 거석 구조에 무의미한 문화적 상징물의 차용이라는 숱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반면 그래도 도시 중심에 이정도 규모의 문화 시설을 한국 고유의 문화적 상징물들을 잘 섞어서 지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이 건립되었을 때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이제 다른 나라에 내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걸출한 공연장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반기는 여론이 대부분이었다. 경복궁 내의 [[국립민속박물관|구 국립박물관]]처럼 전통 건축물을 그냥 가져다가 붙인 직설적인 모습에 비하면 세종문화회관은 한국 전통 건축과 현대적인 건축물의 융합에 나름대로 고민을 한 건물인 것은 사실이다. 전통 건축의 요소가 서양식 건축물에 튀지 않게 잘 섞여 있어 무난한 편이고, 건물 구성 자체도 엣날 설계 치고는 충분히 기능적이다. 세종문화회관 건립 이전 시민회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이었다는 점에서 세종문화회관은 당시로서는 충분히 문화시설로서 가치가 있고 실제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평소 음향반사판이 내려와 있을 때 객석에서 보면 알수 없지만 무대 뒤와 옆에도 엄청나게 넓은 보조 공간이 있다. 또 무대 전체가 회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즉 기본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무대의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클래식 콘서트나 행사 때 음향 반사판을 쓰지만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 때는 음향판을 올려 깊은 무대 뒤쪽과 측면까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회전 기능을 쓰지 않는다면 넓은 무대 공간 전체를 다 쓸 수 있다. 덕분에 앞뒤로 깊이 있는 무대 공간 구성과 연출이 가능하다. 슬라이드되는 가림막도 십여 개를 쓸수 있어서 막/장 전환이 쉽다. 출연자가 바닥에서 튀어나오는 연출을 위한 무대 위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2층 관객석 층 앞부분과 무대 옆쪽에 영사기가 있으며, 일반 영사막도 있다. 과거에는 영화를 상영한 적도 있고, 프로젝터를 이용해 여러 가지 무대 배경을 투사하거나 투명 영사막으로 무대 전면을 덮고, 풍경이나 비 오는 장면 같은 미리 만들어 놓은 것 투사해 장면에 가상 환경을 표현하거나 입체적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당시 서울 시민을 위한 공연 예술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1973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내한했을 때 하필이면 서울시민회관이 전소된 후라 서울에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어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했는데 당시 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공연장 시설에 대해 크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고, 20여년이 지나서도 아바도는 <객석>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며 한국에 내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실제로 아바도는 베를린 필 상임지휘자 시절 내한을 하지 않았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지어지고 나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세계적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현대식 큰 홀이라며 칭찬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세종문화회관 중앙의 광장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듯. 명색이 광장인데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광장은 언덕으로 올라간다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계단을 최대한 완만하게 짓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올라가 보면 그 면적이 상당히 좁다. 입점한 편의점과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야외 탁자 십여 개로 다 찰 정도다. 당시의 기준에서는 넓은 공간이었지만 지금 보면 광장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대극장이 지나치게 크다든지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든지, 간격이 좁다던지, 경사가 가파르다던지 하는 비난하는 것은 지은 때가 70년대라는 것을 간과한 평가이다. 개관 당시에는 한국인 평균 체격이 꽤 작았기 때문에 작은 의자, 좁은 좌석간 간격과 통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럽의 세계적인 홀을 가봐도 새로운 홀이 아니라면 리모델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석이 너무 좁다거나 통로가 너무 좁다거나 객석 각도가 무대와 영 안맞다던가, 앞좌석에 가려 무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수많은 난점들이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홀인 빈 [[무지크페라인]] 그로서 잘[*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홀이다.]은 의자를 계속 바꾸면서 현재 어느 정도 쾌적해졌지만 여전히 현대 기준으로 편한 좌석이 아니며 간격 역시 넓지 않다. 그리고 무지크페라인 잘이나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상주홀이다.] 등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며 높이 평가받는 홀들은 1층 객석의 경우 계단 경사가 없는 대신 무대가 너무 높아 객석에서 오케스트라를 보려면 목을 쳐들어야 해서 목디스크가 걸릴 지경이고 그렇게 봐도 오케스트라가 충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콘서트헤보의 전면 객석 경사는 세종문화회관보다 더 심하다. 혹은 또다른 세계적인 홀인 뮌헨 헤라클레스 잘[*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주홀이며,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과거에 함께 상주했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강당 등은 고개를 많이 들 필요는 없지만 대신 앞사람에 가려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런던을 대표하는 홀인 로열 앨버트 홀의 그 유명한 프롬스 콘서트에서 청중들이 내내 서서 음악을 듣는 것은 앉아서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무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예 콘서트 내내 서서 듣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홀들에서 사각지대나 무대와 맞지 않는 측면 객석 방향 등의 문제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무지크페라인이나 콘서트헤보,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홀, 로열 앨버트 홀이 20세기초 혹은 19세기말에 지어진 구시대 홀이라고 비판한다면 1963년에 완공된 현대적인 홀의 대명사인 [[베를린 필하모니]][*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주홀이다.]도 음향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무대 방향과 맞지 않는 틀어진 측면 객석, 올라갈 수록 경사가 심하고 사각 지대가 존재하는 등의 여러 문제가 있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개관 이후 몇차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카라얀도 현대적인 홀이라고 충분히 호평했던 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