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종(조선)/창작물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external/www.greatopen.net/200703_12002.jpg]] 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세종대왕. 그래서 [[만원권 지폐|만 원짜리 화폐]]를 달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로 설문조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이순신]] 장군 아니면 세종대왕이 1위를 하며 한국사의 군주들 중에서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또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국에서 제일 많이 동상이 세워진 사람이다. [[서울]]에만 해도 [[덕수궁]], [[여의도]], 그리고 윗 사진의 [[광화문광장]]까지 3개의 큰 [[동상(조형물)|동상]]이 있으며 하다못해 전국 각지의 [[초등학교]]에 세워진 동상 삼대장 중 하나가 세종대왕의 동상이다. 나머지 둘은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단군]] 동상. 한국 역사에 대표적인 [[성군]]이여서도 그런게 있지만, 언어(및 글)라고 하는 민족의 정체성에 매우 핵심적인 인물이다보니 더더욱 추앙받는다.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 한국사의 국왕들을 나름대로 존중하더라도 굳이 높임 표현을 쓰지 않는 일이 많지만, 유독 세종대왕을 칭할 때는 높임법을 쓰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세종께서"라고 검색하면 현대인이 현대인에게 쓴 글도 많이 보이지만 저 자리에 다른 왕을 집어넣으면 왕조 실록 풍으로 쓰는 글이 대다수인 편이다. 광화문광장의 동상의 밑에는 세종대왕 관련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는 세종대왕의 개인 프로필도 적혀 있는데 여기에 세종의 취미가 '''공부'''라고 적혀 있다. 사실이다. 경연에서 신하들이 빌빌거리는 장면이 나올 정도 이같은 모습은 세종대왕 외에 태종, 정조 등 아주 적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지금까지도 [[먼치킨(클리셰)|먼치킨]]급으로 존경받고 있고, '[[세종대로]]' 등 세종대왕이 들어간 명칭도 많다. 10,000원권 지폐에 실린 인물도 세종대왕이니 거의 매일 이분의 얼굴을 보고 살고 있는 셈. [[인천국제공항]]의 원래 이름도 '세종국제공항'으로 계획되었으나 [[인천광역시]]의 극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이지스함]]에도 명명되었다. 함명은 [[세종대왕급 구축함|세종대왕함]]. 이지스함이나 항공모함 정도의 함정에 이분 아니면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충무공 이순신]] 밖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 또 없기도 하고. 심지어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으로 세종대왕의 시호가 들어가기도 했다.[* 세종의 묘호를 따서 명명한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의 캐릭터로 젊은세종 충녕이 제작되었고 [[세종 버스 B0]]의 [[현대 일렉시티]]에 충녕 도색이 적용되었다.] 심지어 [[영릉(세종)|영릉]]의 소재지인 여주시 능서면의 경우 2021년 연말 이후 '''세종대왕면'''으로 개칭했을 정도다.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각국의 [[문맹]] 퇴치에 공로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 바로 '세종대왕상'. [[폴란드]]에는 '세종대왕 고등학교'가 있었다. 세종대왕상은 [[한국 정부]]가 출연한 기금[* 대부분의 유네스코상은 국가나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된다.]으로 운영되는 상이고, 2014년 현재, 세종대왕 고등학교는 재정 문제로 폐교되었다고 한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바로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다. '한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로 이날로 정한 것. [[대만]]도 비슷하게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한국 인터넷상에서 "신하들을 엄청 부려먹는 악덕 상사" 이미지가 유머 컨셉으로 퍼지고 있다. 신하들 입장에서야 죽을 노릇이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황희(조선)|황희]]와 [[조말생]]. 특히 조말생은 정말 비참한 예시인데, 그나마 세종이 죽기 직전에 겨우 은퇴하고 [[자연사]]한 황희와 달리 조말생은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은퇴를 거부당하고 과로로 죽었다(...)] 세종 시절은 [[태평성대]]의 대명사니[* 세종의 치세는 알려진 것처럼 완전한 태평성대는 아니며 전염병, 기근, 대화재 등의 굵직한 사건이 꽤 있었다. 세종대왕이 성군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이러한 사건들도 잘 수습하여 피해를 축소시켰고 늘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백성들을 돌보는데 힘썼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규모 큰 자연재해는 답이 없고, [[코로나 19]]로 전세계가 고생하는 판이니 재난 자체는 불가항력이고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가 정치인의 중요한 덕목인데 세종은 거기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높으신 분들|윗사람]]이 고생해야 [[백성|아랫사람들]]이 편하다."라는 말의 실례인 셈이다. 또한 세종이 육식을 즐겼고 비만한 체형이었을 것이라는 유력한 설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이전의 창작물에 비해 [[고증]]을 위해 세종의 외모를 더 통통하고 후덕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 위인전 '생각쟁이 뚱보 세종'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뚱뚱한 체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zooc8005&logNo=220634999706&proxyReferer=https:%2F%2Fm.search.naver.com%2Fsearch.naver%3Fquery%3D%25EC%2583%259D%25EA%25B0%2581%25EC%259F%2581%25EC%259D%25B4%2B%25EB%259A%25B1%25EB%25B3%25B4%252C%2B%25EC%2584%25B8%25EC%25A2%2585%26where%3Dm%26sm%3Dmob_hty.idx%26qdt%3D1|#]] 아예 고기를 씹다가 한글창제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워낙 '[[성군]]'이란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정치 암투나 전쟁이 좋은 소재가 되곤 하는 [[사극]]에서 중심 인물로 등장한 적은 많지 않다. 그나마 전대의 [[태종(조선)|아버지 태종]]이나 할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사극 만들기 딱 좋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보니 조연으로나마 자주 나왔던 편이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세종대왕을 다루는 사극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연으로도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은 15세기 조선 군주가 아니라 백성을 우주로 여기는 고금에 없는 초월적인 군주상으로 그려지는 게 특징이다. 보통 나오면 [[완벽초인]]에 백성과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록의 완역이 이루어지며 실록의 기록도 반영된 최근 사극에서는 왕위에 대한 욕심없이 학문을 좋아한 평범한 왕자였으나 당시 큰 형이자 세자였던 양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를 당하던 것으로 묘사되던 예전과는 달리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면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세자 양녕과의 대립을 통해 세자 자리 및 왕위에 대한 야심까지 가진 유능한 젊은 야심가로 묘사되기도 한다. 태종을 대하는 면에서도 꽤나 입장이 달라지는데 90년대와 2000년대는 태종에게 꼼짝못하는 착한 아들로 그려지는 모습이 강했지만, 2010년-2020년대에는 아버지를 공경하면서도 일부 정책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와 대립하는 모습이 꽤 많다. 특히나 심온의 사사와 관련해서 아무래도 자신의 아내인 소헌왕후가 연관된 문제이다보니 아버지와 꽤나 대립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이는 창작물에서 두 사람의 대립 구도를 허구로 만들어서 극적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왕자 시절은 물론이고 세종이 왕위에 즉위한 뒤에도 세종과 태종은 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책적으로도 대립한 적이 전혀 없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진심으로 따랐으며, 태종 역시 세종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며 크게 아꼈다. 심온 숙청에 대해서도 후대의 연구에 따르면 세종 본인 역시 숙청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했다는게 정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