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종(조선) (문단 편집) === 말년 ===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만 전념한데다 20대 초반부터 왕위에 올라 열정적으로 국정을 돌보았고 [[육식]]을 즐겨하는데다 특별히 몸을 쓰는 [[사냥]] 등을 즐겨하지 않았으므로 익히 알려진 대로 [[비만]]에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고 재위 후반기들어 각종 질병에 자주 시달려서 병석에 누워 정무를 볼 수 없게 되었고 이러한 질병으로 재위 24년(1442)부터 [[문종(조선)|세자 향]]에게 국정을 [[대리청정]]케 했다. 국정에서 물러난 세종은 이 시기부터 좋은 [[온천]]에 들러 요양을 하고 유명 사찰을 찾아 먼저 떠난 자식들의 명복을 비는 불사를 일으켰는데 [[훈민정음]] 창제가 이 시기에 이뤄졌다. 재위 25년(1443)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재위 26년(1444)과 27년(1445) 5남 광평대군과 7남 평원대군이 연달아 죽더니[* 세종대왕은 재위 초반(1424)에 이미 큰딸 정소공주를 잃었던 아픔을 겪었었다.], 재위 28년(1446) 왕비 소헌왕후마저 먼저 죽고 말았다.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 이후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자기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감지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세손([[단종(조선)|단종]])의 앞날을 부탁했다. 재위 32년(1450) 음력 2월 17일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향년 52세에 [[승하]]했다. [[능호]]는 [[영릉(세종)|영릉]]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