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계사 (문단 편집) === 근세 서양 세계의 변화와 확장 === || [[파일:external/farm6.static.flickr.com/5607002448_3e2675f2b2.jpg|width=100%]] || ||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1453) [br] {{{-2 [[오스만 제국]]군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는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그린 그림이다.}}} ||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이 1000년 가량 존속하던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은 동유럽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하여 [[빈(오스트리아)|빈]] 앞까지 진출해 서유럽 국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동로마 제국]]에는 고대 그리스 문헌을 연구하던 학자 등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이 오스만 제국의 손이 닿지 않는 이탈리아 등지로 진출해 [[르네상스]]의 발단에 일조하게 된다. 동로마 제국 학자들이 이탈리아 등지로 이주하고, 특히 [[메디치 가문]]같은 재력가들이 문화의 발전에 투자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는 [[르네상스]]가 태동하게 된다. 중세의 유럽인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 수학, 예술 등이 아랍과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들어와, 유럽은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에서 점차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중요시하게 된다. [[유클리드]],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의 저서들도 대거 들어와서 철학과 수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이 미술을 발전시켰으며,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치학의 기틀을 쌓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보다 북쪽으로도 확산되었다. 따라서 [[르네 데카르트]], [[데이비드 흄]]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서유럽에서도 학문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을 주장하며 당시 유럽 학계의 정설과 대립하였고, [[요하네스 케플러]]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의 활약으로 [[천동설]] 세계관이 뒤집히게 되었다. 당시 유럽은 곳곳에서 [[대학교]]들이 세워졌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또한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근대 경험주의 철학은 과학 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된다. [[르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도 계속해서 발전했고, 이와 같은 사상의 발전은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에 의해 근대적 [[정치철학]]에 대한 논의로 이어져 [[자유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의 금과 은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는데, 당시 유럽 경제는 [[은본위제]]를 근간으로 했기에 기축 통화량의 증가로 앞으로 등장할 자본주의 사회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자본주의 자체는 늘 있어왔지만 17세기에 봉건제를 밀어내고 주된 경제 체제로 자리잡는다]. 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계급이 등장했으며 대규모의 무역을 수행하는 회사들이 생겨났고 이들의 경제 활동을 뒷받침할 [[주식]]도 발달했으며 국가가 회사의 활동을 지원하며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변화들과 함께 유럽인들의 활동 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상인들에 의해 중국 같은 강대국들과 교류가 활발해졌는데, 이로 인해 세계최초로 중국 [[송나라]]가 발명한 [[화약]]과 [[나침반]]이 시간이 흐른 후 유럽에 들어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게 된다. 한편 카톨릭은 [[중세 흑사병]]과 [[아비뇽 유수]]를 거치며 점점 부패하고, 이에 따라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루터]]와 [[칼뱅]] 등이 시작한 종교개혁은 점차 유럽으로 퍼졌으며, 교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국가들이 이때다 싶어 받아들인다. 결국 유럽에서는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30년 전쟁]]이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과 함께 종교개혁이 인정받게 된다. 또한 칼뱅주의를 받아들인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독립에 성공하게 되며, 여기서 또 구교를 믿는 지역이 떨어져나와 [[벨기에]]가 탄생한다. 한편 영국의 [[헨리 8세]]는 아내와의 이혼을 위해 [[성공회]]를 정식으로 만들게 된다. [[스튜어트 왕조]] 시기 영국 정치는 상당한 격변기를 맞이한다. 먼저 청교도 혁명이 발생해 의회파의 [[크롬웰]]이 왕 [[찰스 1세]]를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다. 이를 기점으로 의회의 힘이 막강해졌는데, [[제임스 2세]]가 왕권을 강화하려 하자 의회는 권리장전을 강요해 퇴임시키는 [[명예혁명]]을 일으킨다. 얼마 안 가 스튜어트 왕조의 후계가 단절되자 의회는 혈통이 가장 가까웠던 독일인 [[조지 1세]]를 데려오는데, 문제는 독일인이었던 조지 1세가 영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정치를 의회에 맡겼고, 이에 따라 영국에는 [[의원내각제]]가 급속도로 정착하게 된다. 발트해 지역에서는 1600년대에 [[스웨덴 제국]]이 여러 북방전쟁들을 거치며 흥했다. 그러나 [[루스 차르국]]의 차르 [[표트르 대제]]가 [[대북방전쟁]]을 통해 스웨덴을 격파하여 발트해의 패권을 장악한다. 이 전쟁으로 스웨덴 제국이 몰락을 시작했으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제국]]을 선포한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여자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본인이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문제는 프랑크 왕국에는 여자의 왕위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법]]이 있었는데,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프랑크 왕국에서 파생된 국가가 많다보니 조선판 예송논쟁이 발생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가 승리해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에 올랐으나, [[프로이센]]에 [[슐레지안]] 지역을 빼앗긴다. 이에 복수하고자 [[7년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7년 전쟁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국가들이 싹 다 참전해 준-세계대전급 전쟁으로 확전된다. 여기서 프로이센이 골로 가 패배가 거의 확실시되었는데, 하필 러시아의 신임 차르에 독빠였던 [[표트르 3세]]가 즉위하자마자 프로이센 편을 서 프로이센을 구원해 프로이센이 승전한다. 이로 인해 표트르 3세는 임기 6개월 만에 바로 폐위당하고 아내 [[예카테리나 2세]]가 왕위에 오른다. 한편 프랑스의 [[라부아지에]]가 화학 원론을 발간하며 [[화학 혁명]]을 일으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