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계사 (문단 편집) ===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ge-of-caliphs.png|width=100%]] || ||[[아랍 제국]]의 영토 확장 * 진한 갈색: [[무함마드]] 지배 시기의 영토(622~632) * 황토색: [[정통 칼리파 시대]](632~661) * 노란색: [[우마이야 왕조|우마이야 시대]](661~750) || ||<-2> 무함마드 시대 || ||<-2> ↓ || ||<-2> 정통 칼리파 시대 || ||<-2> ↓ || ||<-2> 우마이야 왕조 || || ↓ || ↓ || || 아바스 왕조 || 후우마이야 왕조 || 중동과 그 근역은 7세기까지 [[동로마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7세기에 접어들자 [[아랍]] 지역에서 [[무함마드]]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이 발흥하였다.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반도의 분열되어 있던 아랍 부족들을 이슬람의 기치(旗幟) 하에 통합하였다. 동로마로부터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여 중동 대부분 지역이 아랍-이슬람 문화권이 되었다[* 이슬람 발흥 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 문화권, 이란은 조로아스터 문화권이었다.]. 정통 칼리파 시대의 [[이슬람 제국]]은 급격한 팽창과 성장을 이루었다.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날 무렵 이슬람 제국의 영토는 이미 아라비아 반도에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 레반트, 리비아를 아우를 정도로 성장했으며, 이들 영토는 후의 [[우마이야 왕조]]가 추가로 확장을 한 이후에도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로서 기능하였다. 여기에 맞먹을 정도의 팽창을 이룬 중동의 제국들은 [[아케메네스 왕조]]와 [[오스만 제국]] 정도를 빼면 전무하며, 후대의 우마이야 왕조가 정복한 영토까지 합치면 중동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마이야 왕조]]는 두 번째 이슬람 칼리파 시대로써, 현재 [[시리아]]에 있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이슬람 제국을 통치하였다. 우마이야 왕조는 정통 칼리파 시대의 정복을 이어받아 [[마그레브]]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 [[트란스옥시아나]], [[페르가나]], [[신드]] 지역 등을 정복하였다. 전성기인 아브드 알 말리크 대에는 예루살렘에 현재도 남아있는 [[바위의 돔]]을 건설하였으며,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모스크 등 기존 로마 건축을 받아들인 건물을 각지에 남겼다. 이 시기 이슬람은 그 세를 크게 확장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이란 고원에서 [[북아프리카]]까지 넓은 영역을 관할하였다. 4대 칼리파인 알리가 암살당하고 난 후, 정통 칼리파 시대는 끝나고 [[무아위야 1세]]에 의해 첫 세습 왕조인 [[우마이야 왕조]]가 통치하게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까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718년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에 실패한 후 쇠퇴하였으며, 740년경부터 호라산에서 아바스 가문이 대두할 때에 마침 시리아 일대는 [[내전]]에 시달렸다. 또한, 아랍인들이 새로운 이슬람 개종자인 마왈리(대부분 페르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일삼아 결국 [[시아파]]와 마왈리의 지지를 받은 아바스 혁명군에게 패해 마지막 칼리파 [[마르완 2세]]가 살해되며 750년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우마이야 일족은 잔치에 초대된 후 방심한 틈을 타 모조리 숙청되는데, [[히샴]]의 손자가 살아남아 서쪽으로 도주하여 [[알 안달루스]](이슬람 지배기의 [[이베리아 반도]])에 세운 국가가 바로 [[후우마이야 왕조]]이다. 한편 우마이야 왕조 이후 성립된 [[아바스 왕조]]는 당시 세계최강의 제국 당나라에게 침공을 당했지만 가까스로 [[탈라스 전투]](751)에서 이슬람 연합국을 결성하여 막아냈고, 게다가 [[당나라]]의 이슬람 원정군 총 사령관인 고선지 장군은 동맹군인 카를룩의 배신으로 인해 카를룩이 이슬람편으로 돌아서면서 압바스 왕조는 겨우 당나라 고선지 장군의 침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중국]]과 [[이슬람 제국]]의 대전쟁이며,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제국이던 당제국의 서역 팽창 저지와 [[중국]]이 독점하고 있던 [[종이]]를 제조하는 기술인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어 [[유럽]]까지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당나라]]의 침공을 막아냄으로써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교역을 [[이슬람]] 세력권이 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일:Maqamat_hariri.jpg|width=100%]] || || 〈압바스 제국 도서관의 학자들〉 [br] 1237년 야햐 알와시티 作. || 아랍인들은 정복지의 제도와 문화적 유산들을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8~11세기 동안 중동 지역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통틀어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는데, 이를 이슬람 황금기라고 부른다. 그 예시 중 하나가 9세기경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이 현재의 [[바그다드]]에 건립한 [[지혜의 집]]으로, 지혜의 집은 중세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어 중세 중동의 문학, 사학, 철학, 종교학과 같은 인문학의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알 가잘리]]와 같은 철학자도 등장하여 중세 이슬람 철학의 기반을 닦았다. [[건축학]], [[의학]], [[약학]], [[공학]] 등의 과학기술도 발전했는데, 특히 [[의학]] 기술이 당대의 다른 지방에 비해 비약적인 발달을 겪었다.[* 내외과적인 치료법은 물론 [[정신과]]적인 질병을 의학적인 측면으로 접근한 것은 아랍 문화권에서 최초로 이루어졌는데, 현 [[시리아]] [[알레포]]의 아르군 병원에서 정신병 환자들에게 햇볓 쬐기,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요양하기, 그리고 음악 듣기를 처방한 것이 기록으로 남았다.] 실제로 당나라 시기에 이슬람 제국을 방문한 중국인의 기록에서, 구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 출신의 의사들이 이슬람 제국에서 크게 활약했음을 알 수 있고, 사산조 역시 동로마에서 박해받고 찾아온 네스토리우스 교인들의 고전 그리스-로마 문화를 잘 흡수했으며, 뿐만 아니라 동쪽에서 인도 세계의 의학적 지식까지 흡수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던 [[압바스 왕조]]의 통제력이 약해져 지방 세력들이 난립하고, [[용병]]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돌궐족 유목민 [[튀르크]]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중동 지역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상황에 빠졌다. [[셀주크 튀르크]]의 지배자 투그릴 베그는 부와이 왕조를 물리치고 바구다드에 입성하고 아바스 왕조로부터 시정치적 실권을 위임받았다. 이후 셀주크 튀르크는 지중해, 서이시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영토르루확장하다가 예루살렘과 소아시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며 [[비잔티움 제국]]을 압박하였다. 이에 11세기 말에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그렇게 셀주크 튀르크는 끝없는 전쟁 속에 멸망한다. 한편 10세기 초, 무함마드의 딸인 파티마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세력이 10세기 초 아바스 왕조의 권위를 부정하고 북아프리카에 [[파티마 왕조]]를 설립하지만, 셀주크 튀르크와 십자군과의 대립으로 쇠퇴하며 12세기 후반에 멸망한다. 13세기 초에는 [[몽골 제국]]의 세계정복이 개시되면서 [[호라즘 왕조]], 셀주크 튀르크에 정치적 실권을 부여한 [[아바스 왕조]] 등 이슬람 제국들이 아예 몽골제국에게 정복당하면서 사실상 승승장구하던 이슬람 제국은 완전한 종말을 맞이한다. 유럽 십자군 세력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이슬람 세계가 정치적 통일성을 되찾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격퇴되었으나, 이란을 중심으로 한 동부 이슬람 세계는 돌궐족의 도래 이후의 오랜 정치적 혼란에 뒤이은 유럽 십자군 세력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몽골 제국의 무자비한 침략과 학살과 파괴로 인해 황폐화되었다. 게다가 중동 지역 대부분은 [[사막]] 혹은 건조 기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많지 않았는데,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관개 시스템 역시 수천 년에 이르는 집약적 농업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와 관개 시설의 파괴, 사막화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13세기 이후 중동 지역은 인구-생산력 측면에서 유럽 지역에 비해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고, 곧 문화-기술적 측면도 유럽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따라잡히게 되었다. 그나마 비단길, 바닷길을 이용한 아시아-유럽 간 중계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지만, 이 역시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막히게 되었다. 또 중동권 역시 [[흑사병]]에 의해 유럽 못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13세기 말부터는 튀르크계 오스만족이 소아시아 지역에 [[오스만 제국]]을 건국한다. 메흐메트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고, 셀림 1세는 맘루크 왕조를 정복하고 메카와 메디나의 보호권을 장악했으며, 술레이만 1세 때 전성기를 맞는다. 이 외에도 여러 국가들이 난립했다. 14세기 후반 티무르 왕조는 몽골 제국의 부활을 내세우며 [[티무르 왕조]]를 건국했지만, 이무르 사후 세력이 약화되며 우즈베크인들에게 멸망당한다. 16세기 로 이스마일 1세는 이란에서 [[사파비 왕조]]를 건국하지만, 내부 갈등과 아프간적의 침입 등으로 18세기에 멸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