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계사 (문단 편집) ==== 서아시아·중앙아시아·지중해 ==== 그리고 기원후 30년경 [[예수]]가 헤브라이인의 유대교의 내용을 개혁해 십자가형을 당한 후[* 기존 유대교는 헤브라이인만 믿을 수 있었고, 지켜야 할 율법이 너무 세세하고 빡셌다. 그러나 이를 헤브라이인이 아닌 사람도 믿을 수 있게 하였고, 율법은 [[십계명]] 정도만 지키면 된다고 바꿨다. 또한 제사를 지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기존 종교지도자들의 반발을 샀고,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해서 로마로부터 반란세력으로 찍힐까 우려되었다.]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퍼뜨린다.[* 열두 제자 중 예수를 팔아넘기고 자살한 [[가룟 유다]]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원래는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던 로마 시민권자 사도 바울이 기독교로 전향해 누구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기독교을 퍼뜨리며 기독교가 온 나라로 퍼진다. 또한 제자들 중 천국의 열쇠를 받았다는 등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하는 등 제자들도 순교의 길을 걸으며 기독교를 퍼뜨린다.] 그러나 이들의 종교는 로마에 반대되어 로마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독교]]가 로마에서 너무 인기를 끌자 4세기경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해 기독교를 승인한다.[* 당시 기독교는 만인 평등 사상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신분의 차별도 남녀의 차별도 없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보고 노예 계급을 두는 등 차별적이었던 로마에서는 인정될 수 없었다. 또한 초기 기독교는 결혼을 거부하고 독신을 선호했으며,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따라 전쟁 징집에도 거부해 병력 손실이 심했다. 따라서 기독교를 좋게 보던 황제들도 결국 기독교를 박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만인 평등 사상으로 인해 차별받던 노예와 여자 등을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점점 주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를 주장한 [[아타나시우스파]]를 정통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을 국교화하며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시대가 열린다. 이후 5세기경 로마는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할 통치를 시작하지만 이후 서방영토를 게르만족들에게 빼앗기고, 비록 로마는 동쪽만 남았지만 이후 '''1453년에''' 오스만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해 2천 년의 역사를 쓴다. 게르만족은 이때를 전후로 로마의 서로마 지역에 국가를 무수히 세우지만, 로마가 빼앗긴 영토를 다시 찾아오려고 거의 전부 멸망시키는 바람에 사실상 [[프랑크 왕국]]과 [[서고트 왕국]]정도만 남지만 이후 서고트도 이슬람에게 멸망함으로써 프랑크 왕국 하나만 살아남았다고 보면 된다. 이후 프랑크 왕국은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 이탈리아로 전수된다. 한편 서아시아에서는 기원후 3세기경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파르티아를 멸망시킨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이하 사산 왕조 혹은 페르시아,이란)은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은 그대로 이어갔다. 페르시아의 [[샤푸르 1세]]는 레데사 전투 등 로마랑 싸워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는 등 승리하고, 인도의 [[쿠샨 왕조]]를 멸망시키는 등 전성기를 맞이한다. 심지어 6세기에는 [[로마]]를 거의 멸망시킬 뻔도 하기도 했다 당시 이란은 [[조로아스터교]]의 나라였는데, 651년 [[이슬람]]의 [[정통 칼리파]] 세력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된다. 이처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중해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은 로마와 페르시아라는 형태로 양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