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계기록유산 (문단 편집) === [[중국]]의 세계기록유산 === [[중국]]에는 모두 __13개__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긴 시간과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이 기록유산에 있어서 한국보다 수가 적은 것은 [[문화대혁명]]으로 상당수의 기록유산이 소실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혁때 불태워진 기록물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에 남은 기록물도 충분히 많은데 등재건수가 적은것은 한국보다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관심이 늦게 일었기때문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록물들이 속속 등재되기 시작하고나서야 세계기록유산에 신경쓰기시작한거와 비슷한 이유다. 2000년대에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관심이 많은것이 아니었고 중국문화부에서도 1번에 1건을 선정해서 등재를 선정하는 수준이었다가, 동의보감 등재작업이 진행되고 진짜로 등재되자 중국내에서 중국이 중의학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여태껏 기록물 등재에 소흘해서 선수를 빼았겼다며 중국 문화부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고, [* 한국도 한복에 대해 고루하다는 인식이 일다가 중국 네티즌들이 한복을 자기네 문화로 주장하는 일이 있고나서야 한복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느니 하는일과 판박이다.]이를 계기로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것이다. [* 다행히도 그 전에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망명하기 전 자금성에 있던 각종 문화유산들을 같이 가지고 갔다. 중일전쟁 때 전란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반출했던 명실록 홍격본도 후에 대만으로 가져왔다. 이때 대만으로 가져온 유물 중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송, 원대의 고서 수백 종'''과 청대 공문서 '''38만 건'''이 고궁박물원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문자 그대로 핵심은 대만으로 반출되거나 파괴당하고 남은 것이 현 중국 기록 및 문화유산의 실태이다.] 그래도 문화대혁명에도 중국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되는 중국국가도서관이나 여러 연구기관에[* 한국의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규장각]]만은 못하지만 상당한 고문헌 자료가 보존되어 있기는 하다.] 그 만행을 겪고도 중국 대륙이 상당히 넓고 유물량도 방대하다보니 중국 각지에서 수집한 고문헌 자료가 아직 보존되어 있으며, 기록유산으로 등재할 만한 가치 있는 기록물도 남아 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기록유산들이 파괴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간혹 중국보다 한국의 기록유산이 많은 것을 두고 세계기록유산의 귄위나 의미를 절하하는 주장도 있다. 중국이 한국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물을 많이 만들었는데도 그렇다는 것이 요지. 그러나 이는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생각이다. 물론 대체로 중국이 보유한 역사적 사료와 문헌들은 한국보다 훨씬 방대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가치있는 사료들을 전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어렵다. 세계기록유산은 그 기록 내용의 정보적 가치 외에도 기록물의 실물 자료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중시한다. 즉 허준이 발간한 __당시__ 판본으로서 '동의보감', 이순신 장군이 __직접 붓으로 써내린 친필 문집으로서__ '난중일기'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재될 수 있었다. 중국의 유교경전이나 사기 같은 사료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해도 저자가 직접 집필한 그 시대의 판본이 남아있지 않기에 등재하기 어려운 것이다.[* 반대로 현존하기 때문에 같은 사서삼경이라도 한국의 유교경전은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었다. 이 유교경전은 경전 그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당대 조선의 양반가에서 경전을 자체적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서 기록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용상 매우 가치 있는 문헌이 무조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세계기록유산은 기록의 '''내용이 아닌 기록물 자체의 가치와 보존에 치중한다.''' 애초에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네스코 측의 확실한 검증 후에 일련의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기록유산은 미래로 전할 가치가 있는 기록을 등재하는 것이다. 등재 여부에 권위나 의의를 논하는 것은 본 제도가 가진 의의를 착각한 지적이다. 중국 쪽이 중의학 기록물에 무관심하다가 동의보감 등재 이후 여론의 비난을 받자 이에 자극되어서 발빠르게 중의학 서적 등재에 나섰으며 2011년 본초강목과 황제내경을 등재했다. 그러나 중국이 동의보감에 대항하여 등록한 황제내경과 본초강목도 상당히 무리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동의보감과 달리 원전(초판) 자료가 남지 않은 문헌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황제내경'을 보더라도, 신화적 인물인 황제의 집필 참여(?) 여부는 따지지 않더라도 당나라 왕빙의 주석본 원본이 남은 것이 아니라, '실물 자료'로서 지닌 가치는 거의 없다.] 2014년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였으나, 2015년 심사에서 등재되지 못하였다. 같이 올라간 [[난징대학살]] 기록물과 대비되는데, 등재되지 못한 이유가 흥미롭다. 유네스코가 '위안부 문제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해당국들과 같이 공동신청을 하는 것을 유네스코 규정으로 장려한다'는 것이 반려 사유였기 때문이다. 한편 대한민국 또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을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