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계기록유산 (문단 편집) === [[일본]]의 세계기록유산 === [[일본]]에는 현재 모두 __7개__의 세계기록유산이 있다. 불과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는 세계기록유산이 하나도 없었다. 건축물 상당수를 세계 유산으로 등록한 것에 비해 기록 유산은 거의 없는 수준으로 기록유산 면에서는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일본은 '국가 기록물' 즉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낸 기록물이 빈약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화 이전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일본은 국가 공인 정사가 [[고사기]]와 [[일본서기]]밖에 없다. 본래 정사는 후대 왕조에서 전대 왕조의 역사를 편찬하는데 일본의 경우 왕조의 힘에 대부분 미약했기 때문에 많은 돈과 시간, 인재를 필요로 하는 정사 편찬을 하기 힘들었던 것. 반대로 한국과 중국의 왕조들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정사의 편찬이 활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2000년대]]까지 기록유산 등재 시도를 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2011년]]에 이르러서 등재가 시작되었다. 등재된 기록물은 야마모토 사쿠베에(山本作兵衛)의 기록물.[* 야마모토 사쿠베에는 [[20세기]] 초의 [[광부]]로, 세세한 그림과 함께 광부들의 일상을 치밀하게 기록했다. 사쿠베의 경우나 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등재된 것처럼, 꼭 옛 것이야만 등재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래에 나오듯이 영화나 창작물도, 개인의 기록도 등재될 수 있다.] 2013년에는 [[헤이안 시대]]의 세도 권력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일기인 『미도간파쿠키(御堂関白記)』[* 정작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평생 간파쿠(관백)에 오른 적이 없다. 이 제목은 후세에 붙여진 제목.]와 『케이쵸견구사절관계자료(慶長遣欧使節関係資料)』[* [[다테 마사무네]]가 [[유럽]]의 선교사를 통해 스페인 국왕과 로마 교황에게 파견한 사절과 관련된 문서들]가 등재되었다. 2015년에도 2건이 새로 등재되어 총 5건이 되었다. [[2013년]]에 [[일본]]에서는 [[카미카제]]와 관련한 자료 333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http://www.47news.jp/korean/politics_national/2013/03/062450.html|기사]] 이 중에는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유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스스로 반성하자는 의미라면 참 좋겠지만 2013년 현재 일본의 우경화 추세를 감안한다면 카미카제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피하기는 힘들다. 일단 [[2015년]]에 등재되는 것을 목표로 자료 수집 및 등재 신청 보고서 작성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회의로 넘어가기도 전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3/2014061302769.html?Dep0=twitter&d=2014061302769|유네스코 일본 위원회에서 부결시켰다.]] 일본 관점에서 기술된 자료밖에 없기 때문에 형평성이 없다는 것이 사유. 등재를 추진한 가고시마 측에선 2년뒤에 다시 도전하겠다고.[[http://www.hankookilbo.com/v/176d0eca8e614bfd8fefc920a7a0884f|기사]][* 우선, 일제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겪은 [[대한민국|한국]]이나 [[중국]], 카미카제 공격으로 직접 피해를 겪은 [[미국]] 등이 카미카제 관련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허락할 리 만무하다.] 2016년부터 [[일본 외무성]]이 '''세계기록유산'''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세계의 기억'''을 공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공식 명칭인 ''''Memory of the World'''' 를 직역한 표현이기는 하다. 또한 중국과 한국에서의 정치 이용이 문제시되고 있다느니 권위있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과의 혼동 방지를 위한다느니 하는 주장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껏 내부적, 공식적으로 잘 써왔던 것을 난징대학살 기록 유산 등재 직후 갑자기 바꾸는 것은 오히려 기록유산의 위상 깎아내리기와 정치성 띄우기라는 의구심만 높아진 상황이다. [[http://www.yomiuri.co.jp/politics/20160611-OYT1T50039.html|기사]] 한편 일본이 심사의 투명성을 내세워 회원국 대표들이 참가하는 '정부간위원회' 설치와 전문가의 현지조사 등 제도개혁을 유네스코에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등록된 자료에 대해서도 적절히 보관되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확인해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록유산지정 취소는 물론, 심지어 국제자문위원회(IAC) 위원 선출방법이 투명하지 않다면서 회원국에서 공모하는 방법으로 선출방법을 바꿀 것도 제안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1/02/0200000000AKR20161102056200009.HTML?input=1195m|#]] [[평화헌법]] 중 헌법 9조와 관련된 자료 등을 '정치적 안건'을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http://m.news.naver.com/read.nhn?oid=003&aid=0008034433&sid1=104&mode=LSD|#]] 2017년 부산문화재단과 협력하여 [[통신사등록|조선통신사 기록물]]을 공동 등재하는데 성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