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가 (문단 편집) === 혼란 === 세가는 뛰어난 개발력으로 유명했지만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서의 경영수완이 형편없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1997년에 게이머들을 상대로 게임회사의 신뢰도 조사를 했을 때 세가는 '''믿을 수 있는 게임 소프트를 만들어내는 게임회사 2위'''와 '''믿을 수 없는 게임기를 만든 게임 회사 2위'''를 동시에 석권했다.--콩라인-- 정말이지 [[아타리]]급의 황당한 실책을 다수 저질렀는데, 이를 살펴보면 '얼마나 아케이드로 벌어놓은 것이 많았으면 드림캐스트 시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세가 마스터 시스템|세가 마크 III]] 시절에는 '아케이드 시장의 강자인 자신들의 게임만 이식해놔도 잘 팔릴 것이다.' 라는 실로 오만한 생각으로 서드 파티 도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는 [[닌텐도]]의 [[패미컴]]에 크게 밀린 판매실적이었다. 그리고 휴대용 시장에서는 [[게임 기어]]가 불편한 휴대성과 전지로 [[닌텐도]]의 [[게임 보이]]에 크게 밀리는 판매실적을 기록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 지사의 분전으로 세가 제네시스(일본명 [[메가 드라이브]])가 미국에선 [[닌텐도]]의 슈퍼 NES(일본명 [[슈퍼 패미컴]])를 누르고 1위에 올라서기도 했지만, 이후 벌어진 차세대 게임기 경쟁에서 [[세가 새턴]]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PlayStation(콘솔)|플레이스테이션]]에 완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에 대해 세가의 일본 지사와 미국 지사의 대립을 원인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미국 세가의 승승장구로 입지를 위협받게 된 일본 세가가 강한 견제에 들어가면서, 양측의 대립으로 차세대 경쟁에서 뒤쳐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당시 미국 지사의 사장인 톰 칼린스키가 [[소니]]와의 제휴나 [[실리콘 그래픽스]][* 1990년대까지 3D 그래픽스 기술을 선도하던 회사였다.]와의 사업을 물어왔으나, 회장인 나카야마가 모두 거부해버리고 독단적으로 세가 새턴 런칭을 결정한 일이 그 예시라고 한다.[* 이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자체 콘솔]]을 런칭하고 실리콘 그래픽스는 [[닌텐도 64|닌텐도가 꿀꺽하는]] 나비효과로 이어지며 콘솔계 역사의 커다란 분기점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소니와의 제휴 거부는 결과적으로 대기업인 소니에 세가가 종속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당연한 결정으로 보는 의견이 있는 반면, 당시의 소니는 닌텐도나 세가에 비해 게임업계 파워가 한참 밀린 회사였으며, 소니가 제안한 라이센스 제안은 파격적이었기에 게임 자본과 기술력에서 앞선 세가가 소니에게 종속될 리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미 소니는 세가에게 제휴 협악을 제안하기 전에 닌텐도와 제휴 협약을 맺고 차세대 콘솔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닌텐도가 소니에게 종속되기는 커녕 오히려 갑질을 부려서 제휴 협약을 파기해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당시 미국 세가의 마케팅 담당이었던 스티브 레이스는 일본 지사와의 대립에 질려 소니로 이직해버린 바 있다. 그리고 1995년 E3에서 299달러 연설을 하며 세가를 크게 물먹인다. --복수귀-- 당시 세가 새턴의 가격은 399달러였는데, 그는 연설에서 "299달러" 딱 한마디를 하고 내려가며 큰 임팩트를 줬다. 그렇게 게임기 판매 가격부터 크게 밀린 세가는 북미에서의 승기를 완전 잃게 된다. 톰 칼린스키 사장도 1996년에 사임했다. 애초에 세가의 시작이 미국 회사였던 탓에 미국 지사의 사이즈가 결코 작지 않았고, 모든 것을 일본 본사를 통해 결정했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와는 달리 미국 세가의 단독 결정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게임 스튜디오가 있는 등 미국 세가의 독립적인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였다. 이러한 독립성은 미국에서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으로 제네시스가 닌텐도를 누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하였으나, 미국 지사에선 [[슈퍼 32X]]를 개발하고 일본에선 완전 차세대인 새턴을 개발하는 등 제품 개발 로드맵에 대한 불협화음, 이로 인한 잦은 출장과 전화통화(+통역/번역)로 벌어진 갈등 등이 겹쳐 결국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당시 신참에 불과했던 플레이스테이션에 미국 왕좌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시장 패배를, 일본 본사의 견제 때문만으로 몰고가는 것에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일단 미국 지사에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32비트]] 시장에 진입시키고자 만든 32X는 철저히 실패했다. 그리고 세가의 근본적 실패 원인은 양질의 서드파티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크고, 이는 일본 지사 미국 지사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만 32X 역시 새턴 개발 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MD와 새턴 간의 소프트 개발 진입장벽이 서드 파티 이탈을 불러올 것을 우려한 미국 지사가 그 간극을 메꾸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쳤던 것이라 생각하면 [[의도는 좋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어려운 [[세가 새턴]] 시기를 지나며 겨우 버텨냈지만, 후속작인 [[드림캐스트]]가 그간의 삽질로 인한 후폭풍 때문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플레이스테이션 2]]와 제대로 경쟁을 하지도 못하고 3년만에 망해버렸다. "드림캐스트가 몰락했을 당시 세가는 만약 다른 게임 회사였다면 아마 3번은 망했을 수준."이라고 세가의 소닉팀 [[나카 유지]]가 말했을 정도로 세가의 삽질은 심각 그 자체였다. 그래도 이런 삽질 조차도 세가의 엉뚱함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존재하고, 그야말로 세가니까 나올 수 있는 '''그때까지의 세가의 넋을 담은 복합 SRPG 게임인 [[세가가가]]'''같은 게임도 나오게 되었다. 거의 모든 세가의 대표 캐릭터가 등장하며, 타 하드웨어 메이커 및 캐릭터를 패러디한 장면은 기본에다, [[오타쿠]] 네타(모에모에라든가...)도 다소 함유된 편이라서 팬들은 반 장난격으로 세가에서 직접 만든 세가 [[동인게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 세가가가를 제작한 개발진은 [[크레이지 택시]] 시리즈로 유명한 [[히트메이커]]이고, 게임의 디렉터는 [[오카노 테츠]]다. 처음에는 한정 물량만 나왔으나, 세가 팬들의 성원 끝에 통상판으로 나온 게임. 세가는 자사 게임기 자체로도 별 이상한 짓을 다 했다. 메가 드라이브만 해도 세가 라이브러리, [[메가 CD]], [[IBM]]과 합작해서 만들어낸 [[16비트]] '''개인용 컴퓨터''' 테라 드라이브,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인 메가 LD, [[32X]] 등으로 뻗어나갔고, 휴대용 게임기로 발매한 [[게임 기어]]에 백라이트와 TV 재생 기능을 넣어서 6개의 건전지를 사용하여 휴대용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큰 크기와 3시간의 플레이 시간이라는 삽질을 하였다. 이러한 세가의 삽질의 가장 으뜸은 [[세가 새턴]] 시절 포토 CD, [[비디오 CD]] 플레이어, [[모뎀]]을 통하는 인터넷 접속 모듈, 화상전화, 자동차 탑재(이건 가격이 '''15만엔'''이나 되었다.), [[워드프로세서]], [[프린터]], [[키보드]], 디스크 드라이버, 모뎀을 포함한 주식투자용 콘솔,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집어넣은 새턴을 각각 발매한 것. 자사의 게임기를 일종의 고사양 게이밍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 것인데, 당시에 상당히 무모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나중에 소니에서 [[플레이스테이션 3]]으로 그대로 따라했다가 [[Wii]]와 [[엑스박스 360]]에서 밀려나간 것을 고려하면... 또한 [[메가 드라이브]]의 주변기기인 메가 모뎀의 경우, 전화선으로 게임의 콘텐츠를 새롭게 추가한다는 시스템이었는데 이것이 10년 이상이 지나서 생긴 [[DLC]]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보면 세가는 [[시대착오적|정말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나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접목시킬 노하우도 없었을 뿐더러, 제대로 된 계획도 없던 게 문제.]] 그냥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면 사람들이 많이 구매하겠지?" 라는 위험한 발상을 한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주요 역할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쓴 하드웨어들은 게임뿐만 아니라 전자 제품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이러한 백화점식 구성으로 대중을 끌어오겠다는 기획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발상이다. 특히나 게임기같이 생활 필수품이 아닌 고가의 제품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발상은 기술력의 발달로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로 실현되긴 했다. 비단 하드웨어 사업에서만 말고 소프트 관리 부분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삽질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자사의 소프트 자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개발 데이터들을 남겨놓지 않고 마구 폐기한 것인데, 이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버추어 파이터 2]]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작품이 후에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되었을 때 세가 본사의 이식작임에도 어딘가 뒤떨어지고 거슬리는 이식도에 많은 비판이 있었고, 후에 회사측에서 게임의 개발 데이터를 남겨놓지 않고 모두 폐기해서 이식이 불가능하고 에뮬레이터 방식으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래된 게임의 데이터 유실이야 사고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저만한 중요 작품의 데이터를 그것도 실수도 아니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폐기해 버린 것은 소프트 회사로서는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 자사의 마스코트인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또한 개발 데이터들의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나카 유지]]가 코딩하던 물리 엔진이 소실되어버렸고, [[소닉 1]]과 [[소닉 2]]를 메가 드라이브 에뮬레이팅으로 이식해버리는 등, 리마스터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쪽은 다행스럽게도 팬메이드 엔진인 "레트로 엔진"과 개발자 "크리스천 화이트헤드"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소닉 CD]]의 리마스터 출시를 시작으로 간신히 해결되었다.[*시키지도 않았는데 놀라운 퀄리티로 만들어 공개한 것을 보고 역으로 세가에서 모셔갔다.] 크리스천은 나중에 [[소닉 매니아]] 개발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후에 [[엑스박스 360]]으로 [[전뇌전기 버추얼 온 포스]]를 이식했을 때도 눈물겨운 후기가 있는데, 게임 데이터는 당연히(!) 모두 폐기되었었고, 아케이드에서 흥행이 실패한 게임이다 보니 남아 있는 게임장도 손에 꼽을 정도라 겨우 지방의 한 곳에서 가동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 기기를 빌려 본사로 가져와 모니터에 자를 대고 HP 바 소모량 등을 측정해 공격 대미지 데이터 같은 것을 추정해 이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