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해방 (문단 편집) == 상세 == 대체로 검열 권력을 부정하는 등 [[파쇼]]나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경향이 강하며, 문화적 해방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우파 해방주의가 아니라 [[좌파]] 해방주의로 취급된다.[* 반면에 성해방을 지향하는 우파 사상은 Sexual Libertarianism이라고 한다. 번역을 하자면, '성적 [[자유지상주의]]'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성적 자유지상주의'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이 역시 '성해방주의'로 번역되고 있다. 대부분의 문서에서 이러한 개념 정의를 명확하게 밝히고 들어가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보인다. 대만에서 출간된 『매음적 윤리학 탐구(賣淫的倫理學探究)』(2009, 甯應斌 저)에서만이 '성적 자유주의자(性的自由主義派)' 개념에 자유주의자(自由主義派) 뿐만 아니라 자유지상주의자(自由至上派, libertarian)를 포함하고 있다고 정확히 개념을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성[* 여기서 성(性)이란 생물학적 성별(Sex)이나 젠더(Gend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를 말한다.]에 대한 억압을 위계 질서로 보고,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기존의 성적 고정관념과 관습을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보통 "성은 정치적이다"라는 구호를 케이트 밀릿을 위시한 급진 페미니스트의 전유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성 정치의 개념은 [[빌헬름 라이히]]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라이히, [[알프레드 킨제이]], [[오쇼 라즈니쉬]][* 60년대 미국 히피에게 프리 섹스, 프리 러브의 개념을 전파한 인물. 성적 자유주의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자유로운 사랑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로 파악했다.], [[다니엘 게랭]][* Daniel Guerin(1904~1988). 프랑스의 [[아나키스트]]로서 아나키즘에 근간하여 성해방론을 주장했으며, 이후 퀴어 이론과 게이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랭의 역저 『라이히와 킨제이 이후의 성혁명에 관한 에세이(Essai sur la révolution sexuelle après Reich et Kinsey)』(1963)는 국내에 '성자유'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휴 헤프너]], [[테라야마 슈지]][* 성(性) 해방에 관한 에세이를 상당수 저술했다. 그는 전통 가정 내에서의 권위주의적 억압이 성에 대한 금기를 만들어냈다면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에서는 "질투만 없어진다면 성에 관한 온갖 터부는 일시에 무너져버릴 것이다."라는 격언을 남겼다. 『사자에상의 성생활(サザエさんの性生活)』(1970)에서는 만화 [[사자에상]]에서의 거세된 에로티시즘을 비판적으로 논평하였다. 사자에상에서 부부 간의 성생활이 등장하지 않거나 감춰지고 있는 배경에는 가부장제 성윤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마광수]][* 1995년 연세대 국문과 학부.대학원생 50여명이 출간한 『마광수는 옳다』에서는 마광수 교수를 권위주의의 위선을 비판하고 진보주의와 성해방주의를 접목한 인물로 평가했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50214000001908|#관련 기사]]], [[허균]] 등이 대표적인 성해방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니나 하틀리]][* 미국의 포르노 배우 겸 감독이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전직 간호사였다는것. 페미니즘에 기반하여 여성을 위한 포르노를 제작하고 있으며 남녀평등과 남녀간의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둔 성교육을 하고 있다.], 등 성 긍정 페미니즘(Sex-positive feminism)이 존재한다. 흔히 성 긍정 페미니즘을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성 긍정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학자가 퀴어 이론에 공헌한 게일 루빈. 물론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중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성해방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성적 [[자기대상화]]가 오히려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립스틱 페미니즘도 존재한다. 빌헬름 라이히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마르크스의 급진적인 사상을 접목해 성 해방과 성 정치를 주장했으며,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성을 혐오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모두 비판했다. 라이히의 이론은 68세대 [[신좌파]][* 특히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라이히의 이론을 상당수 그대로 수용했다. 마르쿠제는 『Eros and Civilization』(1955)에서 성적 억압을 제거하는 문제를 재검토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급진주의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오늘날 마르쿠제는 '신좌파의 아버지(Father of the New Left)'라고도 불린다.]에 계승되어 서구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고 진보적인 사회가 되는데 크게 일조했다. 나아가 이러한 성해방 움직임은 퀴어이론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반면, 공산권이나 제3세계에는 성해방주의의 물결이 거의 미치지 않았다. 공산권이었던 세르비아의 영화감독 두샨 마카베예프(Dušan Makavejev)는 라이히의 성해방론에 입각해서 『WR: 유기체의 신비』(1971), 『스위트 무비』(1974)와 같은 걸작 영화들을 쏟아냈다. 마카베예프는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성적 억압을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가 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영화적으로 드러냈다.다만 최근에 들어서는 구 [[동독]]의 1960년대 이후 사회적 흐름에 대한 재평가등을 통해 서구에 비해 덜 주목을 끌어서 그렇지, 일상생활 영역에선 서구에 비해서도 더 관용적, 개방적인 면도 적잖았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냉전 후기 동독에선 60년대 이후 서구의 상황에 자극받아, 국영 방송의 심야 편성에 성 관련 상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등, (성평등과) 성적 영역에서의 개방성 등에 대해서도 서독과 일종의 '체제경쟁'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Do_Communists_Have_Better_Sex%3F|Do Communists Have Better Sex?]][* 다만 21세기 이후 서구의 '진보적 미디어'의 분위기가 그렇듯, 이 문제를 다소 단순하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즉 당시 시점에서 구 사회주의권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서방'보다 좀더 나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테면 경제적 일상생활 영역에서의 경쟁의 압력을 덜 받는다거나 그와 연관된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 등의 다른 사회적 요인들도, 개개인들이 성적인 문제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 대해서는 약간은 간과하거나 축소하는 면이 보인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 |흐루쇼프]] 체제의 [[니키타 흐루쇼프/생애#s-2.2.2|유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구권에서도 성해방적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동성애가 범죄였고 강제 치료의 대상이었지만 이미 50년대 무렵부터 자유주의적인 의사 집단을 중심으로 과학적인 연구를 근거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그 중에 커트 프로인트(Kurt Freund)라는 의사는 자신의 연구 자료를 인용하며 전환 치료가 비과학적이며 비인도주의적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공산당에 차별 금지를 요구했다. 이후 성소수자를 범죄적이고 교정의 대상으로 보는 법률은 없어졌고 이것은 당시 서구에 비해서도 빠른 편이었다. 이후 동구권의 자유주의적인 흐름에 불안감을 느낀 소련 공산당에서 [[프라하의 봄|체코를 침공]]하자 프로인트를 비롯하여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체코계 캐나다인|캐나다]] 등으로 탈출한다. 프로인트는 얼마 뒤에 벌어진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입장 변화에서 자신의 연구를 인용하여 정신병 분류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https://brewminate.com/kurt-freund-the-beginning-of-the-end-of-gay-conversion-therapy-in-the-1950s/|#]][[https://books.google.co.jp/books?id=AGvYDwAAQBAJ&pg=PT20&lpg=PT20&dq=Kurt+Freund&source=bl&ots=DYzpezvtl7&sig=ACfU3U1VBVie_BH9ayYKpEuutjj36mBnlQ&hl=ko&sa=X&ved=2ahUKEwionv_4q8yBAxXb1TQHHYLuD2g4FBDoAXoECAIQAw#v=onepage&q=Kurt%20Freund&f=false|#]] 일본에서는 성해방주의의 영향을 받아 70~80년대 포르노 해방 움직임에 동참했으나, 성에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하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개방적인 컨텐츠가 공존하는 기형적인 문화를 만들어냈다. 한편, 한국의 [[박정희 정권]]은 성해방주의의 흐름을 '서구의 퇴폐 사상'으로 취급하면서 통제하려고 했다. 80년대 [[3S 정책]]으로 일부 개방되긴 했지만 이것이 성해방으로 나가지는 못하였고 제한적으로 그쳤을 뿐이다. 성해방의 흐름은 68세대의 분열과 68혁명의 퇴조, [[히피]]의 몰락, 안티 포르노 운동의 대두, 80년대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등장 등으로 단절됐다. 안티 포르노 운동가들은 성해방주의를 '남성만의 성해방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해방주의가 결과적으로 남성들의 시선에만 움직이는 여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성해방주의 측에서는 성인 컨텐츠의 시선이 남성 편향적인 것은 "남성중심사회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아니라 남성중심사회로 인해 영향받은 결과물"이라는 근거로 반박한다. 즉, 성인물이 남성 편향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결방법에 있어서 성문화 자체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성문화를 확산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 잠시 성 해방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크게 주목받은 인물이 [[마광수]]였으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으로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마광수는 주류 문학계와 교수 사회의 타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줄곧 내놓아 이미 원로 교수들 사이에서 찍혀 있는 인물이었으며, 교수 출신이었던 [[현승종]] 당시 국무총리가 직접 지시하고 수사를 지휘하여 마광수가 강연 도중 현장에서 체포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한다.[[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288&Newsnumb=2017091288|#]] 이후로 마광수는 교수 사회에서 대놓고 따돌림을 받는 처지에 놓였으며, 현재까지 그저 변태나 마초이스트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근래 몇몇 발언에서 남성 우월주의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마광수 교수는 상당히 성별에 대해 차별 없이 사람을 대했다고 한다. 일례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맞담배를 허락했던 마 교수의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 시선은 고인의 운명을 달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광수]] 문서를 참조 바란다. 2020년대 현재 한국에서 성해방주의의 움직임은 상당히 미약한 상태다. [[표창원]]이 포르노 합법화 얘기를 꺼냈다가 보수 기독교 단체들과 여성단체들로부터 곤욕을 치른 걸 보면, 성해방주의가 공론화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현재 한국에서는 [[안티포르노 페미니즘]]이 대세가 된 상황이다. 그러한 표창원조차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시절 [[래디컬 페미니즘]] 성향이 들어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여폭법]]에 앞장서는 등 페미니즘 옹호 성향을 많이 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OECD에서 유일하게 여전히 포르노,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이다. 다만 그렇다고 성해방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것은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성적 억압에 대한 불만이 크며 이것이 문제임을 주장하면서 성해방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터라 계속해서 문제임을 주장하며 노력하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 성해방도 이루어질것으로 본다.[* 성해방이 이루어지고 성적으로 개방된 유럽권조차 과거에는 성에 대해 금기로 여기고 억압적이었다. 프랑스만 해도 현재는 성에 개방적이지만 과거에는 포르노가 불법이며 [[마광수]]처럼 성해방을 추구하는 [[사드 후작]]이 야한 소설을 지은 이유 하나만으로 정부와 사회에 의해 정신병자로 몰렸고 나중에는 아예 정부가 음란물유포혐의를 적용해 사드 후작을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저술 활동까지 금지시키는 [[국가폭력]]을 저질렀다. 유럽이 성에 대해 관대해지고 개방적이 된 것은 끊임없이 성적 억압을 문제로 여기며 이를 해결하려고 수많은 노력을 하고 [[세대교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많은 유럽권보다 민주화가 늦게 진행되었고 민주화운동에서 "민주"라는 개념을 강조하고 "자유", "평등"의 개념이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영향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