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탄절/대한민국 (문단 편집) === 역사 === * 한반도에 최초로 성탄절이 들어온 해는 [[1884년]]이었고[* 1884년 12월 25일은 음력으로 11월 9일이었다.], [[1885년|그 이듬해]]부터 확산되기 시작해 한민족 역사에서 최초로 성탄절을 기념한 곳은 조선 말기의 [[독립신문]]이었다. 당시 독립신문은 성탄절을 휴무로 했다.[* 한반도에 기독교 계열 종교가 전파된 것은 훨씬 전이었지만 (연대가 가장 명확한 것은 [[1631년]] (조선 [[인조]] 9년) [[정두원]]이 [[명나라]]에서 [[가톨릭]] 서적을 가져왔다는 기록이고, 신앙의 선구자는 [[1784년]] (조선 [[정조(조선)|정조]] 8년)에 [[세례성사]]를 받은 [[이승훈]]이었다.)당시에는 음력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양력 기념일인 성탄절을 기념하기에는 난처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기독교 계열 종교의 신자들이 조상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 계열에 대한 박해가 심해 성탄절을 기념하기 어려웠다. 특히 조선 순조~고종 대는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했으니(...).] 개신교계 미션스쿨 [[이화학당]] 역시 성탄절에는 수업을 하지 않고 방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탄절 기념도 일제에 의해 탄압된 적이 있었다. 1930년대 일제는 먹고 마시는 성탄절 행사를 금지시켰다. 지금도 90대 이상의 노년층 중 일부는 ‘성탄절에 쉬지도 못하고 학교를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80대 이하인 노년층 중 고향이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속초시]] 등 최전방 지역인 경우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동안에는 성탄절에도 못 쉬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이들 지역은 북한 치하였기 때문. 젊은 한국인들 중 '성탄절에 못 쉬고 학교를 갔다'는 말을 하면 '''100% 성탄절이 평일인 나라에서 살고 있거나, 살다가 온 사람들'''이다. 대체로 아랍어나 일본어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들, [[일본]]이나 [[중국]] 등 성탄절에 안 쉬는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해외 한국인 학교]] 등을 다닌 사람들 (20대 이하 중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성탄절에 못 쉬고 학교를 갔다'는 말을 하면 100% 이 쪽 부류이며 드물게 이민자, 유학파가 발견되기는 한다. 대체로 [[중국]]에서 살면서 해외 한국인 학교를 다니다가 재외국민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들어온 경우.),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 등 성탄절에 안 쉬는 나라로 학부나 대학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런 케이스에 걸린다고 한다. 대학 교수들 중 성탄절에 못 쉬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본]]에서 석사나 박사를 딴 사람들이며 드물게 [[일본]]에서 학, 석, 박사를 모두 취득하거나 중국, 대만, 아랍권 유학파 출신도 있다. 의대생들도 극단적인 케이스에 걸리면 성탄절에도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가야 하며, 일부 방통고 학생들도 성탄절에 등교를 한다. 미대생들 역시 성탄절에 포트폴리오 제작을 위해 학교에 가는 경우가 있다. ~~미대생에게 성탄절은 없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 중동으로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들도[*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성탄절에 출근했다. 이들 중 서류상 종교가 기독교인 사람이 없었기 때문.] * 1901년 성탄절은 20세기에 최초로 성탄절에 보름달을 볼 수 있었는데 오후 8시 54분에 가장 둥글었다. 20세기에는 1901년, 1920년, 1939년, 1958년, 1977년, 1996년에 성탄절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21세기에는 2007년, 2015년, 2034년, 2053년, 2072년, 2080년, 2091년에 성탄절 보름달을 볼 수 있다. 2007년, 2053년, 2072년, 2091년은 성탄절 이브가 보름이다.] * 1907년은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첫 성탄절이다. 서울의 기온은 1.1도/6.8도로 포근했다. 서울에서 이 정도니 제주도나 부산은 10도를 넘었을 것이다. * 1908년 성탄절은 기상 관측 이후 최초로 영하로 내려갔는데 최저 기온이 영하 6.6도, 최고 기온은 6.3도였다. * 1909년 성탄절은 기상 관측 이후 최초로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갔는데 최저 기온이 영하 12.5도, 최고 기온은 영하 6도였다. * 1910년 성탄절은 일제강점기 시작 이후 첫 성탄절로 서울의 기온이 영하 4.1도/0.6도였다. 1911년은 영하 5.4도/0.7도, 1912년은 영하 9.5도/영하 2.1도, 1913년은 영하 2.6도/7.1도, 1914년은 영하 3.3도/1.4도를 보이는 등 1910년대 성탄절은 단 한 번도 최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지 못했다. * 1916년에는 성탄절에 기습 한파가 찾아왔다. 정확히는 1916년 12월 25일 낮에 영하 4~5도이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오후 6시 영하 9.7도, 오후 10시 영하 14.3도까지 내려가는 등[* 2010년 성탄절에 나타난 최저기온이 1916년 성탄절 오후 10시에 나타난 셈.] 그 날 밤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간 것. 이 때문에 최저 기온이 영하 14.8도, 최고 기온은 0.5도, 일교차는 15.3도였다. ~~성탄절 선물로 기습 한파라니~~ 그 여파로 1917년은 [[이상 저온]] 현상이 심각했다. 바로 전 해인 1915년은 영하 0.2도/9.8도로 매우 포근했던 것에 대비된다. * 1917년 역시 1916년 못지않게 매우 추운 성탄절이였는데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14.8도에 최고 기온마저 영하 8도, 일평균 기온이 영하 10도 미만이었다. 그리고 그 한파가 이듬해 1월 9일까지 이어졌다. 서울에서도 이 정도이니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는 영하 10도 가량, [[춘천시]], [[철원군]] 등은 영하 20도 미만, [[개마고원]] 근처의 [[자강도]], [[량강도]] 내륙은 영하 30~40도의 초강력 한파를 보였을 것이다. 1918년과 1919년은 별다른 추위가 없었는데 1918년은 영하 6.1도/0.8도, 1919년은 영하 4.7도/4.3도였다. * 1920년 성탄절에는 가장 둥근 형태의 보름달을 볼 수 있었는데 오후 9시 48분에 가장 둥글었다.[* 음력 15일은 이브날이었다.] 이 해는 가장 추운 성탄절인데 서울에서 기온이 영하 16.8도까지 떨어졌지만 최고 기온은 영하 2.7도로 올라 일교차가 14.1도나 되었다. * 1921년 성탄절 역시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미만이었는데 서울의 기온이 영하 13.6도/0.8도였다. * 1922년 성탄절에도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0도 미만이었는데, 이는 1922년 12월 중순부터 매우 강력한 한기가 남하해 그게 성탄절까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온은 영하 13.6도/영하 0.8도로 일교차가 무려 11.8도였다. 그 여파로 1923년은 이상 저온 현상이 지속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23년부터 1925년까지는 영하 10도 미만의 큰 추위 없이 성탄절을 보냈는데 1923년은 영하 1.8도/8도, 1924년은 영하 5.7도/2.1도, 1925년은 영하 8.6도/2.1도였다. * 1927년에는 성탄절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가더니 급기야 한강이 결빙했고 그 상태가 [[4월 4일]]까지 이어졌다. 당시 기온은 영하 10.8도/영하 1.3도에 일교차가 9.5도였다. 바로 전 년도인 1926년은 영하 16.3도/영하 6.5도로 2010년보다 더 추웠다. * 1929년 성탄절은 1920년과 공동 최저 1위였는데 서울의 기온이 영하 16.8도/영하 2.4도였다. 서울에서 이 정도이니 [[제주도]]마저 영하로 내려가고 [[개마고원]]은 영하 40도에 가까운 초강력 추위가 덮쳤을 것이다. 바로 전 년도인 1928년은 영하 9.2도/1.3도, 다음 해인 1930년은 영하 9.4도/0.1도라 1929년이 특출나게 추운 것이다. 그 이후 서울에서 성탄절에 영하 15도 미만으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2010년이 거의 근접했다. 당시 성탄절의 최저 기온은 영하 14.3도인데 거기서 0.7도만 더 낮았어도 21세기 최초로 영하 15도 미만이 될 뻔 했다.] * 1932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1.4도/4.8도의 기온을 보여 하루 종일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이런 날씨는 1907년 이후 무려 25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이후 성탄절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은 1948년에 다시 나타났다. 1933년은 영하 8.9도/4.2도, 1934년은 영하 2.6도/2.8도였다. * 1935년에는 성탄절 최저기온이 영하 11.1도였고, 그 여파로 1936년은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다. 1935년 성탄절의 심각한 한파는 1936년 4월까지 지속되고 이상 저온은 1936년 11월까지 이어져 결국 연평균기온이 하위 2위[* 꼴찌는 1947년.]를 기록하게 되었다. 1936년은 영하 2.9도/6.3도, 1937년은 영하 10.4도/영하 4도, 1938년은 영하 10.2도/2.7도였다. * 1939년은 일제강점기 당시 마지막으로 성탄절에 보름달을 볼 수 있었는데 정작 가장 둥근 형태는 12월 26일 오후 8시 52분에 나타났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6.4도/4.8도였다. * 1940년은 [[창씨개명]] 시행 이후 첫 성탄절로 서울의 기온은 영하 7.7도/영하 1.7도였다. 1941년은 매우 포근해져서 영하 2.9도/8.7도, 1942년은 영하 9.9도/0.4도로 추워지고 1943년은 영하 8.7도/1.2도로 전년도와 비슷했다. * 1944년 성탄절은 일제강점기 마지막 성탄절인데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2.5도였다. 그 여파로 1945년은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다. * 1946년 성탄절에는 울릉도에서 무려 1m 54cm[* 저 정도면 당시 성인 여성의 평균 키 수준이었다.]에 달하는 눈이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12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 동안 내린 눈이 모두 최심적설 극값 1~4위를 찍을 정도였다. 서울은 1945년 영하 9.5도/2.2도, 1946년 영하 9.6도/3.6도, 1947년 영하 8도/3도로 3년 연속으로 춥고 일교차 높은 날씨를 보였다. * 1948년에는 첫눈이 늦어서 성탄절까지도 눈이 오지 않았고 기온은 4.4도/5.8도였다. 반면 2017년에는 성탄절도 오기 전인 [[12월 15일]]에 [[한강]]이 결빙되었으며, 일제 시대였던 [[1927년]]에는 성탄절에 한강이 얼어서 [[4월 4일]]까지 이어졌다. * 해방 이후 미군 군정하에 있을 당시 각종 관공서의 휴일로 지정되었다가 1949년 개신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기독탄생일'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법정 공휴일|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후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이 되면서 '탄신일'로 정식 명칭을 바꿨고, 이에 따라 현재의 정식 명칭은 '''기독탄신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종교가 공휴일 지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 이후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될 때도 이날만큼은 예외여서 당시 많은 이들이 성탄절에는 밤새 나다니곤 했다고. * 1949년 성탄절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갔는데 최저 기온이 영하 13.3도, 최고 기온은 영하 1.5도였다. 1950~1952년은 한국 전쟁으로 기상 관측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서울에서는 성탄절 당시 최저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54년 성탄절은 6.25 전쟁 이후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간 성탄절이였는데 최저기온이 영하 12.1도, 최고 기온은 영하 4.4도였다. 바로 전 년도인 1953년에는 영하 0.6도/4.2도, 1955년은 영하 2도/7.6도의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 1956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14.2도까지 내려가고 최고 기온이 영하 3.9도를 보이는 등 매우 추운 날씨였다. 이는 성탄절 전인 8일부터 한파가 지속되어 26일까지 이어진 결과물이다. 반대로 1957년 성탄절은 0.2도/3.4도로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성탄절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 1958년 성탄절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음력 11월 15일에 겹쳐 보름달을 볼 수 있었으나 정작 가장 둥근 형태는 12월 26일 12시 57분에 나타났다. 또한 서울에서 최초로 '''늦가을 성탄절'''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당시 서울은 12월이 초이상고온이라 최저기온이 영하 3.2도 미만으로 내려간 날이 없어 최저기온이 영상이거나 영하 1~2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기온은 영상 3.5도/9.3도였다. 여기서 최고 기온이 0.7도만 더 놓았어도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10도를 넘길 뻔 했다. 그 때문에 평균기온이 높아 겨울이 [[12월 27일]]에야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서울에서 성탄절은 겨울이 아니라 늦가을이었다. * 1959년 성탄절에는 영하 11.2도까지 내려갔으나 최고 기온이 1도까지 오르면서 일교차가 무려 12.2도나 났다. * 1960년 성탄절은 역대 성탄절 중 '''유일하게 대체휴일제가 적용된''' 성탄절인데 당시에 시행되었던 공휴일중복제에서는 '일요일과 일요일 이외의 공휴일이 중복되는 때에는 그 익일도 공휴일로 한다'는 조항에 따라 성탄절 다음 날인 [[12월 26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했다.[* 이 때 공휴일중복제가 적용된 공휴일은 1959년 [[식목일]], 1960년 [[제헌절]], [[한글날]], 성탄절 4개였다.] 그러나 그 직후 공휴일중복제가 폐지되면서 성탄절은 현재까지 대체휴일이 없는 휴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6.6도, 최고 영상 2도, 평균 영하 1.7도로 평년보다 약간 추운 수준이었다.[* 2020년에 저 정도 기온이면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편, 1961년 8월 한국의 표준시를 UTC+9로 다시 돌려 놓음에 따라 이 해 성탄절은 오후 5시 이전에 일몰을 볼 수 있던 마지막 성탄절이였다. 당시 성탄절의 일출은 서울 기준 오전 7시 15분, 일몰은 서울 기준 오후 4시 49분이었다. * 1961년 성탄절은 한국 최초의 대체휴일제인 공휴일중복제가 폐지된 이후 첫 성탄절로 월요일이라 일요일에 연계된 2일[* 토요일은 반공일이라 0.5일만 휴무했으므로 사실상 2.5일.] 연휴였으며 영하 10도 미만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추웠다. 당시 서울의 날씨는 최저 영하 9.3도, 최고 영하 0.9도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 1962년 성탄절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성탄절 최고 기온이 10도를 넘었는데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0.5도, 최고기온이 10.3도로 매우 포근한 날씨였다. 바로 다음 해인 1963년에는 영하 7.9도/영하 1.6도로 평년보다 다소 추운 것에 대비된다. * 1965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최저기온 '''영하 14도''', 최고기온 영하 4.8도라는 강추위가 찾아왔다. 바로 전 해인 1964년에는 최저 영하 2.8도, 최고 5.4도로 포근한 것에 대비되는 수준. 그나마 21세기에 가장 추운 성탄절인 2010년 성탄절 (-14.3°C/-6.7°C)보다는 따뜻하기는 했다. 공교롭게도 1965년과 2010년 모두 성탄절이 토요일이다. * 1966년 성탄절도 최저기온 영하 13.7도, 최고기온 영하 6 6도의 강추위가 찾아왔는데 이는 2010년 성탄절과 비슷했고 1967년 12월도 저온이었다. * 1967년 성탄절은 일요일과 연계된 연휴였고 영하 10도 미만은 아니었지만 추웠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8.8도/영하 3.8도로 평년보다 추운 수준이다. 게다가 1967년 12월은 한파가 심했다. * 1970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10.3도, 최고기온마저 영하 3.6도라 상당히 추운 성탄절이였다. 바로 전 해인 1969년에는 최저 영하 0.4도, 최고 3.0도, 1968년에는 최저 0도, 최고 5.8도로 포근한 편이었던 것에 대비된다. * 1971년에는 [[서울특별시]] [[중구(서울특별시)|중구]]에 위치한 [[대연각호텔 화재|대연각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하필이면 성탄절 시즌이라서 호텔에 손님이 몰렸기 때문에 사상자도 많았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당시 서울의 날씨는 최저 영하 2.3도, 최고 2.6도로 포근한 편이었다.[* 2020년대였다면 저 정도 기온이면 '''평년 수준'''이다.] * 1972년 성탄절은 일요일과 연계된 이틀짜리 연휴였고, 서울에서 매우 포근한 성탄절 중 하나였는데 서울의 기온은 최저 1.7도, 최고 8.9도, 평균 4.4도로 성탄절에 하루 종일 영하권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여기서 최저, 최고기온이 1도만 더 높았다면 성탄절에 늦가을 날씨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 하지만 바로 다음 해에는 여기에 대비되는 무지막지한 한파가 성탄절을 덮치게 된다. * 1973년 12월 25일에는 [[경기도]] [[이천시]][* 당시 이천군]의 평균 기온이 영하 17.8도까지 내려갔고, 전날에는 [[강원도]] [[원주시]]에서 영하 20.4도, [[충청북도]] [[제천시]][* 당시 제천군]에서 영하 18.9도, [[경기도]] [[양평군]]에서 영하 17.3도라는 낮은 평균 기온을 보여 해당 지역 주민들과 그곳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은 강추위 속에서 성탄절을 보내야 했다. 그해 성탄절은 매우 추운 성탄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때 서울에서는 최저기온 영하 14.5도, 최고기온 영하 4.7도로 상당히 추웠고[* 서울 시내에서 영하 14.5도이면 [[김포국제공항]], [[상계동]], [[관악산]], [[강남구]], [[잠실]], [[풍납동]], [[강일동]]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는 최저 영하 15도 미만, 최고 영하 6도 미만도 나왔을 것이다.] 서울보다 남쪽인 [[청주시]]에서도 영하 19.6도로 역대 최저극값 2위를 기록했다. 이 때 최저극값이 나온 곳은 [[경기도]] [[양평군]] (영하 24.8도), [[경기도]] [[이천시]] (영하 25.7도), [[경상북도]] [[안동시]] (영하 16도)이고 [[경기도]] [[수원시]] (영하 23.6도), [[강원도]] [[원주시]] (영하 26.1도), [[강원도]] [[홍천군]] (영하 20.1도), [[대관령]] (영하 24.2도), [[강원도]] [[춘천시]] (영하 17도), [[강원도]] [[인제군]] (영하 18.3도), [[충청북도]] [[청주시]] (영하 19.6도), [[충청북도]] [[충주시]] (영하 21.4도), [[충청북도]] [[제천시]] (영하 23.2도), [[충청북도]] [[보은군]] (영하 20.2도), [[대전광역시]] (영하 15.6도), [[충청남도]] [[서산시]] (영하 15.6도), [[충청남도]] [[금산군]] (영하 15.9도), [[경상북도]] [[영주시]] (영하 18.9도), [[경상북도]] [[문경시]] (영하 16.6도)는 서울보다 기온이 낮았다고 한다. 심지어 [[구미시]] (영하 14.1도), [[인천광역시]] (영하 14.1도)마저 서울과 기온이 비슷하고 [[충청남도]] [[부여군]] (영하 13.2도), [[경상남도]] [[거창군]] (영하 13.4도), [[대구광역시]] (영하 12.6도), [[추풍령]] (영하 12.4도), [[경상남도]] [[진주시]] (영하 12.1도), [[전라남도]] [[순천시]] (영하 10.9도), [[충청남도]] [[보령시]] (영하 10.6도)까지 영하 10도 미만인 데다 [[경상남도]] [[남해군]] (영하 10도), [[울산광역시]] (영하 9.9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하 9.8도), [[경상북도]] [[포항시]] (영하 9.7도), [[강원도]] [[강릉시]] (영하 8.9도) [[광주광역시]] (영하 8.2도), [[전라북도]] [[전주시]] (영하 8.2도), [[경상남도]] [[거제시]] (영하 8.2도), [[부산광역시]] (영하 8.2도)[* 평소 겨울에 영하로 거의 내려가지 않는 부산이 저 정도 추위를 보였다는 것은 추위가 제주도를 넘어 규슈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마저 평년 서울보다 낮은 기온, 심지어 [[강원도]] [[속초시]]가 영하 7.1도, [[전라남도]] [[목포시]]가 영하 7.2도, [[해남군]]이 영하 5.3도에 제주도, 울릉도까지 영하의 추위를 보일 정도면[* [[제주시]] 영하 2.1도, [[서귀포시]] 영하 1.4도. 이 때도 [[가파도]], [[마라도]]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경상북도]] [[울릉군]]은 영하 2도.] 이 해 성탄절이 얼마나 추웠는지 감이 잡힐 것이다.[* [[철원군]]의 자료가 없는 것은 당시 철원에 기상관측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1973년 성탄절에 철원에서 기상관측을 했다면 철원읍은 영하 26도 미만, 신철원 (갈말읍)은 영하 27도 미만, 김화읍은 영하 30도 가량, 와수리는 영하 30~31도 가량의 초강력 추위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 [[연천군]], [[가평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등 최전방 내륙 지역도 1973년 성탄절에는 영하 25~30도, 일부 지역은 영하 30도 미만의 엄청난 추위를 찍었을 것이다. 그 때 전방에서 복무한 군인들은 그야말로 '온갖 방한장비로 무장을 해도 춥다'는 말이 절로 나왔던 셈.] 이 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태국에서 킹스컵에 참가해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2:1로 이겼다.[* 요즘 같았다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2:1로 이기면 졸전이라며 욕을 먹겠지만, 당시에는 말레이시아가 아시아 축구의 강호였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도 [[말레이시아]]를 만나면 고전하던 시절이었다.] 1973년 성탄절 한파의 여파로 1974년은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다. 참고로 1974년 성탄절의 서울 기온은 최저 영하 5.3도, 최고 영상 1.6도로 평년 수준에 그쳤다. *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자 극우 성향의 개신교 교단들이 결사반대했는데 불교계에서 "특정 종교일을 휴일로 반대한다면 성탄절은 뭐냐? 성탄절을 법정 공휴일에서 빼면 우리도 가만히 있겠다!"고 하자 반발이 뚝 줄어든 바 있다. 당시 서울은 최저 영하 6.6도, 최고 영하 0.1도로 평년보다 조금 추웠다. * 1976년에도 성탄절에 기습 한파가 발생했는데, 정확히는 성탄절 낮까지만 하더라도 최고 기온이 서울은 4~5도, 부산은 10도 이상인 평년 수준인 날씨인데 밤이 되자 기온이 13도 이상 하강했을 정도. 완전히 1916년과 판박이인데[* 1916년에도 성탄절 낮까지는 평범했으나 저녁이 되자 기온이 급격히 하락했다.] 그 여파로 12월 27일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8.5도까지 뚝 떨어졌다. 일교차는 무려 15.9도였다. * 1977년 성탄절은 음력 11월 15일이고, 이 때도 [[럭키문|성탄절에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성탄절 보름달은 오후 9시 51분에 가장 둥글었다. 그 이후 성탄절 보름달은 1996년, 2015년, 2034년에 다시 볼 수 있다. 당시 기온은 이상 고온이었으나 성탄절은 영하 8.8도/영하 4.1도로 평년보다 추웠다. * 1978년 성탄절은 일요일과 연계된 이틀짜리 연휴였고 서울에서 최저 영하 1.3도, 최고 3.6도로 다소 포근한 날씨가 나타났다. * 1979년 12월은 이상 고온이었으나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최저기온이 영하 10.7도, 최고기온이 영하 3.4도로 평년보다 10도 가까이 낮은 기온을 보이며 상당히 추웠다. 성탄절에 급락한 기온은 1980년 한파와 이상 저온을 알렸다. * 1980년 12월은 이상 저온이 심했으나 정작 성탄절은 평범해서 서울의 기온은 영하 4도/2.2도로 평년 수준이었다. 대신 1.8cm의 눈이 내려 쌓이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 1981년 성탄절은 최저기온 영하 1.8도에 최고기온 5.9도를 기록하며 평년 11월 하순~12월 초 수준의 포근한 날씨를 보였다. 이 해부터 1992년까지 후기대 학력고사 출제위원들은 성탄절에 합숙 출제를 했다. * 1982년 성탄절은 토요일이라 일요일에 연계된 이틀짜리 연휴였고 서울의 기온이 영하 5.4도/0.4도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 1983년에는 성탄절에 영하 13.5도를 기록하며 최저점을 찍었다. 그 여파로 1984년은 이상 저온이 계속되었으며, 21세기에 이를 능가하는 성탄절 추위는 2010년과 2012년에 찾아왔다. 이 때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최저기온 극값을 찍었는데 무려 영하 19.8도였고 [[천안시]]마저 영하 18.1도로 내려가 매우 추웠다.[* 천안이 서울보다 남쪽에 있는데도 추운 것은 서울보다 천안의 열섬 현상이 낮기 때문이다. 요즘 같았다면 천안도 서울과 날씨가 비슷할 가능성이 있다.] * 1984년에도 성탄절에 영하 12.6도를 찍으며 상당히 추운 날씨를 보였다. 이후 1995년까지 성탄절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 1985년 성탄절은 '''데칼코마니 일교차'''를 보여 주었는데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4.4도, 최고 기온마저 4.4도였다. 바로 다음 해인 1986년에는 이상 고온이었으나 성탄절은 최저 기온이 영하 7.5도, 최고 기온이 3.3도로 평년 수준이었다. * 1987년 성탄절에는 급격히 따뜻해져 [[합천군]]과 [[산청군]]에서 12월 최고기온 극값이 나왔는데 합천군에서는 무려 20.5도, 산청군에서는 무려 21도였다.[* 게다가 일교차도 23도나 되었는데, 이 정도면 아예 대놓고 '''10월'''이다. 당시 제주시는 19.8도, 대구는 19.7도, 서귀포시는 19.5도, 부산은 19도였으므로 제주도보다 따뜻한 성탄절을 보였다. 울산은 20.1도로 합천보다 0.4도 낮았다.] 당시 서울은 최저기온은 4.9도, 최고기온 10.4도, 평균기온 8.2도로 늦가을 날씨였다. * 1988년 성탄절은 일요일이었고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7.1도, 최고 기온이 0도라 하루 종일 영하권의 추위를 보여 주었다. * 1989년 성탄절은 일요일과 연계된 이틀짜리 연휴였고 익일휴무제 적용 대상에 오른 마지막 성탄절이였다.[* 다만, 실제 시행된 사례는 1989년 [[국군의 날]] 단 1개였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1.4도, 최고 4.7도라 하루 종일 영상권이었으며 포근한 편이었다. * 1990년 성탄절은 익일휴무제 폐지 이후 첫 성탄절로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5.8도, 최고 2.6도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대신 성탄절 당일 서울에서 2.1cm의 눈이 쌓여 [[화이트 크리스마스]]이였다. * 1991년 성탄절은 평년에 비해 포근한 성탄절이였는데 서울에서 최저기온 2.1도, 최고기온 4.5도로 하루 종일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 1992년 성탄절은 학력고사 출제위원들이 마지막으로 합숙한 성탄절이였으며[* 그 이후로 대학입시 관계자들이 성탄절에 합숙 출제에 들어가는 경우가 없어졌다. 혹시 수능이 1월로 연기되거나 하면 성탄절이 다시 출제 기간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동시에 성탄절이 음력 12월 2일이었던 가장 최근의 해였다. 당시 12월은 이상 고온이었으나 성탄절에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9도, 최고 0.8도로 평년보다 상대적으로 추웠다. * 1993년 성탄절은 매우 포근한 성탄절인데 서울의 기온이 -0.6도/10도로 늦가을 날씨를 보였다. 1993년은 여름이 시원했으나 성탄절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 1994년 성탄절은 화성군 반월면이 분리되고 대부도가 안산으로 편입되기 전 마지막 성탄절이다. 서울에서 최저기온 0.3도에 최고기온 10.4도로 거의 늦가을 날씨었다. 또한 1994년 자체가 이상 고온이 심했다. * 1995년 성탄절은 오랜만에 서울에서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갈 정도로 추웠으며, [[장기려]] 박사가 향년 84세로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10.1도, 최고기온은 영하 3.8도로 2010년보다는 그나마 따뜻한 편이었다. 음력 8월에 윤달이 생겨 성탄절이 음력 11월 4일이 되었다. 그 이후 2010년까지 서울에서 이렇다 할 성탄절 강추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 1996년 성탄절에는 보름달이 떴는데 20세기 마지막 성탄절 보름달이라고 한다. 당시 보름달은 1996년 12월 25일 오전 5시 46분에 가장 둥글었는데 이 시간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고 있어서 그 달을 본 사람은 얼마 없었다.[* 이 달을 본 사람은 대체로 교대근무자였다.] 그 이후 2015년에 21세기 첫 성탄절 보름달을 볼 수 있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0.2도, 최고 7.8도로 여기서 최저기온이 0.2도만 더 높았다면 1994년 이후 2년 만에 성탄절에 영하로 안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 1997년 성탄절은 매우 포근한 성탄절로 서울의 기온이 영하 0.2도/영상 10.6도로 여기서 최저기온이 0.2도만 더 높았어도 하루종일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뻔 했다. 이 해 성탄절은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을 받은 사형수들이 생전에 맞는 마지막 성탄절이였다. * 1998년 성탄절은 금요일이었으나 당시에는 토요일이 반공일이었기 때문에 연휴가 되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1.7도/영상 6.9도로 포근했다. * 1999년 성탄절은 토요일이었으며 주5일제 적용 이전 마지막 토요일 성탄절이였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4.9도/영하 0.1도로 평년보다 조금 추웠다. * 2000년 성탄절은 20세기 마지막 성탄절, 2001년 성탄절은 21세기 첫 성탄절인데 두 해 모두 한파가 심하지는 않고 날씨가 평년 수준이었다. 2000년 성탄절의 서울 기온은 최저 영하 9.7도, 최고 영하 1.3도였고 2001년은 최저 영하 2.6도, 최고 6.8도였다. 정작 2000년 12월은 고온이고 2001년 12월은 저온인게 성탄절과 대조된다. * 2002년 성탄절은 21세기에 처음으로 수요일에 온 성탄절이였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5.8도, 최고 1.2도로 평년보다 추웠다. 이 날은 21세기 최초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 2003년 성탄절은 21세기에 처음으로 목요일에 온 성탄절이였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3.2도/영상 3.7도로 데칼코마니 일교차보다 조금 높은 평년~약고온의 날씨였다. * 2004년 성탄절은 21세기에 처음으로 토요일에 온 성탄절이자 주5일제 시행 이후 처음으로 맞는 성탄절이다. 당시 12월은 이상고온이 심했으나 성탄절은 서울의 기온은 영하 4.3도/영상 1.2도로 평년보다 조금 추웠다. * 2005년 성탄절은 21세기에 처음으로 일요일에 겹치는 성탄절이다. 한파가 심했다는 2005년 12월이지만 성탄절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6.9도/영상 2도로 평년보다 조금 낮은 데 그쳤다. 한편 이 날에는 한국의 야구선수 [[서재응]]이 광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심지어 결혼식 당시 서재응은 이미 딸이 있었다.] 사회는 [[김상훈]]이, 주례는 [[한화갑]]이 맡았다. 서재응 선수에게 12월 25일은 성탄절 겸 결혼기념일인 셈. 충북 [[제천경찰서]]는 이 날 군대에 가기 싫다고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51226.010120719140001|#]] * 2006년 성탄절은 21세기에 처음으로 월요일에 온 성탄절이였고 전국에서 가을 날씨가 나타나기도 했는데 서울에서 평균기온이 6.4도에 최저기온 0.3도, 최고기온이 '''12.5도'''를 기록할 정도로 '''3월 중하순 수준으로 매우 따뜻했다'''고 한다. 물론, 기후변화의 영향력 때문인지 21세기 말쯤 되면 성탄절이 계절상 겨울이 아니라 가을이 되므로 (여기서는 최저기온 0도 이하 또는 일평균기온 5도 이하인 상태가 9일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겨울로 정의한다.) 서울 기준으로 '''2006년보다 더 따뜻한 성탄절'''가 나올 수도 있다.[* 단 12월은 추워지는 추세라 속단은 금물이다.] * 2007년 성탄절도 대놓고 늦가을 날씨가 나타났다. 서울의 기온이 전년도처럼 최저 0.3도, 최고 10.1도로 일평균기온이 5도라 겨울이 아닌 늦가을 날씨가 나타난 것이다. 서울에서는 가장 최근에 성탄절에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 2008년 성탄절은 2006~2007년 성탄절의 고온 현상을 뒤로 하고 오랜만에 평년 수준의 겨울 날씨가 나타났는데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5.4도, 최고기온이 3.6도였다. * 2009년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0.4cm의 눈이 내려 쌓였다. 당시 서울의 최저기온은 평년 수준으로 영하 4.6도, 최고기온은 4도이나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일평균은 영상이었다. * 2010년에는 성탄절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장기간의 한파가 찾아왔다. 당시 성탄절 최저 기온은 '''영하 14.3도''', 최고 기온은 영하 6.7도로 '''21세기에 가장 추운 성탄절'''이었으나 2021년 이 기록을 깨는 추위가 나타났다. 거기에 체감온도는 영하 21.7도, 전날에는 영하 15.1도를 보이며 성탄절 이브와 당일의 최저기온이 모두 영하 14도 미만이었으며, 무려 1965년보다도 추운 성탄절이다. 서울에서는 이보다 성탄절 최저기온이 낮은 해가 1917년, 1920년, 1926년, 1929년, 1973년 정도이다. 심지어 대관령은 성탄절에 최저기온이 무려 '''영하 19도'''였다. 이 해 성탄절은 마지막으로 [[토요휴업제|놀토]]가 적용된 성탄절이였다. 심지어 [[경주시]]조차 영하 10도까지 내려갔을 정도. * 2011년 성탄절은 일요일이었고, -10도 이하는 없었으나 상당히 추웠다. 당시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9.5도, 최고기온은 영하 3.5도였다. 거기서 최저기온이 0.5도만 더 낮았어도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서울에서 성탄절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갈 뻔했다. 가장 최근에 성탄절이 음력 12월이었던 해였다. (음력 12월 1일) * 2012년 성탄절은 2010년 못지않게 매우 추웠는데[* 21세기 성탄절 중에서는 2번째로 추웠다. 정작 이와 비슷한 한파가 나타난 2017년에는 성탄절에는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 서울에서 성탄절 당일 한강이 결빙한 데다 최저 기온이 영하 13.7도, 최고 기온마저 영하 4.5도를 기록했다. 최저 기온만 놓고 보면 2012년 성탄절이 1983년보다 더 추운 셈. 그 여파로 2013년은 이상 저온이 심했고, 이후 서울에서는 성탄절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나 2021년 오랜만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갔다. 한편, [[전투경찰순경]]과 [[교정시설경비교도대]] 대원들은 이 날이 해당 신분으로 보내는 마지막 성탄절이였는데, 이 둘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되면서 음력 공휴일 전체, 한글날과 함께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에 걸리는 공휴일 목록에 포함되게 되었다. 때문에 성탄절에 서울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걸리게 되면 [[올림픽대로]] 정체는 더 심해진다고 한다.[* 일단 [[송파구]]와 [[강동구]] 주민들이 [[하남시]]로 대형마트 원정 쇼핑을 가고, [[강서구]]에서는 [[김포시]]로 원정 쇼핑을 가기 때문.] * 2013년 성탄절은 대체공휴일 3차 도입[* 1959년 1차 도입, 1989년 2차 도입이 있었으므로 2013년에 도입된 것은 3차 도입이 된다.] 이후 맞는 첫 성탄절이지만 성탄절은 아쉽게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최저 영하 4.4도, 최고 3.7도로 평년 수준에 그쳤다. 여기서 최고 기온이 0.7도만 더 높았어도 데칼코마니 일교차가 나타날 뻔 했다. [[이대목동병원]]은 이 날 홍근 교수가 간문맥 혈전증을 앓고 있던 65세 여성[* 2021년 현재 73세.]의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http://medifonews.com/news/article_print.html?no=98388|#]] * 2014년 성탄절은 [[제306보충대대|306보충대]]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 성탄절이다. 2014년 12월 23일 306보충대에서 마지막 입영행사가 열려 306보충대 마지막 입영자들이 이 곳에서 해체 전 마지막 성탄절을 보냈다. 한파가 심했다는 2014년 12월이지만 성탄절 당일에는 서울에서 최저 영하 5.9도, 최고 영상 1.8도로 기온이 조금 낮은 데 그쳤다. * 2015년은 성탄절에 '''눈 대신 [[보름달]]이 떴다.''' 이 시기부터 성탄절에 뜨는 보름달을 [[럭키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15년 성탄절 보름달은 2015년 12월 25일 오후 7시 54분에 가장 둥글었고, 이를 놓치게 되면 2034년이나 되어서야 성탄절에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이는 21세기 최초의 성탄절 보름달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최저 영하 4.9도, 최고 영상 3.7도로 평년 수준이였다. 한편, 그 해 성탄절은 [[제102보충대대|102보충대]]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 성탄절인데 2016년 9월 102보충대가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그 해 성탄절에는 서울에서 0.2cm의 눈이 쌓였다. * 2016년에는 [[2011년]] 이후 5년 만에 성탄절 자체가 [[일요일]]과 겹치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서울에서는 성탄절에 대형마트 이용이 불가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관들은 휴일도 반납하고 출근했으며 특검에서는 [[정호성]]을 소환 조사했다. 전날인 24일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조속한 탄핵을 기원하는 '하야 성탄절' 촛불 집회도 했고,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교회와 단체는 아예 광화문 현장에서 촛불시민과 함께하는 성탄예배와 시국기도회를 드리기도 했다. 여기서 'All I want for Christmas is 탄핵' 등의 탄핵 캐럴도 탄생했다고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이후 첫 일요일 성탄절이라 서울에서는 성탄절에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없었다.[* 2022년에는 한 술 더 떠서 부처님오신날에도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없으나, 2016년은 부처님오신날이 토요일이었기에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한편,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해에 [[2016년 폭염|살인적인 폭염]]을 보였던 탓인지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이 12월 중순까지 늦춰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평균 이상으로 따뜻한[* 그해에는 서울에서도 성탄절 당일 평균 기온이 1도 (최저 -4.5도, 최고 6.4도)로 '''평년 11월 말~12월 초 수준의 영상권'''이었다. 인천도 서울과 같은 1.0도, 춘천은 1.1도(!!!), 대전은 1.3도, 대구와 목포는 4도, 광주와 강릉은 4.9도, 부산은 9도, 제주도는 10~11도였다. 비록 [[일요일]]이라서 사실상의 공휴일이 아니기는 했으나 2016년 성탄절은 '''평년에 비해서 따뜻한 성탄절'''였던 셈.] 성탄절 날씨를 보여 준 데다 겨울의 시작이 후퇴해서 2016년 기준으로 [[대구광역시|대구]]와 [[목포시|목포]][* [[12월 23일]]에 겨울이 시작되었다.]는 성탄절이 겨울의 초입으로 바뀌었고 [[부산광역시|부산]][* [[12월 27일]]에야 겨울이 시작해서 [[2월 13일]]에 끝났다.]은 성탄절이 '''겨울에서 가을로 편입되었다.''' 이미 성탄절이 가을이 된[* 1920년대에도 제주도에서는 겨울이 [[1월 17일]]에 시작해서 [[2월 22일]]에 끝났으므로, 성탄절은 물론 1월 1일도 가을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60년쯤 후에는 온실가스를 현재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배출할 경우 [[서울특별시|서울]]과 [[인천광역시|인천]], [[대전광역시|대전]], [[광주광역시|광주]], [[울산광역시|울산]]도 성탄절이 가을로 바뀌어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강원도]]나 [[북한]][* 북한 여행이 자유로워지거나 남북통일이 됐을 경우 한정.], [[러시아]]에 가야 볼 수 있고, 군대의 제설작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대륙 고기압 덕에 겨울이 따뜻했던 2016년 성탄절은 서울에서 평균기온이 영상 1도를 기록해 당일 평균기온이 영상 3도였던 [[2007년]] 이후 9년 만에 '''성탄절 당일 평균 기온이 영상 1도 이상'''이었다고 한다. 2006년 성탄절은 서울에서 역대급으로 따뜻했던 성탄절이였는데 서울에서 성탄절 당일 최저 기온이 0.4도, 최고 기온이 무려 '''12.5도'''였다고 한다.[* 2006년~2007년 겨울은 15년만에 한강이 얼지 않았다.] 당시 제주도는 성탄절 당일 최고기온이 20도에 가까운, 사실상 [[가을]] 날씨를 보여 주었다. 이것은 2001년, 2003년에 이어 21세기에서 3번째로 서울의 성탄절 평균 기온이 영상권이었던 해였다. * 2017년에는 성탄절 직전에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이 해에는 [[제천시]] 한정으로 ‘슬픈 성탄절’이 된 셈이다. 이때 장례식장들은 성탄절에도 희생자들의 발인을 엄수했고, 제천시 관내의 천주교와 개신교 교회들은 오후 행사를 전부 취소하고 성탄미사와 예배만 드리거나 미사 중에 혹은 예배 전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제천중앙성결교회와 제천드림성결교회에서는 담임목사를 이 사고로 잃었다[* 공교롭게도 이 두 목사의 성씨가 모두 박씨였다.]고 한다. 그 여파로 해당 교회에서는 목사가 아닌 부목사가 예배를 집전했다. ~~제천은 뭐 성탄절에 마가 꼈는지(…)[* 2005년 제천경찰서에서 군대에 가기 싫다고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2017년에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의 여파로 시내 장례식장들이 성탄절에도 화마 희생자들의 발인을 엄수했다.]~~ 또한 제천 인근 동네인 [[충주시]]에서는 매월 25일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걸려서 성탄절에는 관내의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하며, 이용하고 싶으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한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을 하였는데 성탄절 당시 성화는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었다. 한파가 강했던 2017-18년 겨울이지만[* 이 해는 성탄절 이전인 [[12월 15일]]에 한강이 결빙했다.] 성탄절 전후인 12월 말~1월 초에는 상대적으로 날씨가 평범했는데 최저 기온이 영하 4.9도, 최고 기온이 0.6도였다. * 2018년의 극한 폭염 등 한반도 기후 변화의 가속화로 인해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성탄절이 가을 (엄밀히 말해서는 늦가을)로 바뀌는 시기도 더 빨라질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2018년]]에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겨울]]이 늦춰지면서''' 성탄절 당일 평균 기온이 영상권일 가능성도 있다. 이 해 서울의 성탄절 평균 기온은 0.6도로 2016년 이후 2년 만에 영상으로 돌아왔으며 최고 기온은 5.2도였다. 이는 21세기 들어 여섯 번째로 성탄절 당일 평균 기온이 영상인 해가 된 것이다. 그리고 2018년 성탄절 이브에는 [[후렌치 레볼루션]]에서 사고가 났다. 같은 해 [[광주북부경찰서]] 소속 형사 60여 명은 성탄절에도 쉬지 못하고 [[광주광역시]]와 [[인천광역시]]를 오가며 [[조직폭력배]] 소탕에 나섰다.[[https://www.yna.co.kr/view/AKR20181226131600054|#]] 결극 이로 인해 7개 조직 33명을 검거해 일망타진했다. 부산에서는 개명신청 후 4개월 만에 또 [[개명]]을 신청한 사건인의 사건을 기각 처리하기도 했다. * 2019년 성탄절에는 [[충주시]] 등 전국 12개 지역의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에 들어갔으며,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관련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2019년 국회 무제한토론]] 사건은 12월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됐는데, 성탄절 당일 뉴스를 보면 이런 사건이 엄청나게 보도되었다. 심지어는 의원이 [[기저귀]]를 차고 연단에 올랐을 정도이다.[* 참고로 기저귀를 차고 연단에 오른 의원은 [[주호영]]이었다.] 수요일이었기 때문에 [[안양시]] 등 일부 지역에서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했다. 때문에 안양시 등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서울 등지로 대형마트 원정 쇼핑을 가야 했다. 2019년 역시 따뜻한 성탄절이였는데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2.7도, 최고 기온은 6.6도, 평균 기온은 2도였다.[* 사실 2019년 겨울이 따뜻하기는 했다. 서울에서 12월에 눈이 쌓인 날이 없었을 정도.] * 2020년 성탄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맞는 성탄절이 된다. ~~코로나마스~~ 금요일이기 때문에 [[충주시]][* 매월 10일과 25일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다. 성탄절이 12월 25일이니 매년 성탄절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것. 2020년은 설날과 성탄절이 모두 25일이라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걸렸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형마트가 정상 영업한다. 성탄절에 [[청주시]], [[원주시]] 등지의 대형마트에 사람이 많은 것은 충주 시민들이 해당 지역에서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해 원정 쇼핑을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수능이 늦어지면서 수시를 마감하고 정시로 넘어가는 보통 해와는 달리 성탄절이 아직 [[수시]] 시즌이다. 이 해는 12월 7일부터 2021년 1월 3일까지 ‘연말연시 특별방역 기간’으로 설정해 성탄절이 '''연말연시 특별방역 기간'''에 속해 있다. 수도권에서는 성탄절에 '''5인 이상''' 사적인 모임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 해 성탄절은 보건소 선별진료소가 문을 열고 [[윤석열]]은 이 날 출근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사람들은 2020년 성탄절을 가리켜 마스크마스, 코로나마스, 코리스마스, 비대면마스, 이시국마스 등의 안 좋은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할 정도이다. 그 여파로 극소수의 학교들이 성탄절에 정상수업을 강행하기도 하고[* 그 이전에도 일부 학원들은 성탄절에도 수업을 했는데, 사교육 기관은 휴업일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대체로 예체능계 입시 학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 학과의 정시 실기 시험을 1월에 치르기 때문에 성탄절에도 쉬지 않고 수업하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특례입시 학원들이 성탄절에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일부 학교는 이 기간이 원격수업 기간으로 정해지면서 아예 방학을 해 버리기도 했을 정도[* 더 심한 곳은 성탄절 전에 졸업식을 하면서 아예 학년도를 끝마친 곳도 있다.]이다. 이 날 코로나 확진자는 무려 '''1,241명'''으로 2020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수도권 862명, 비수도권 379명으로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2.3배 더 많았다. 심지어 성탄절 이브와 성탄절의 확진자가 모두 1,000명을 넘었다. 이렇게 된 데는 [[서울동부구치소]]에서 288명이 무더기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953명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었던 확진자 수를 1,241명까지 늘린 것이다. 게다가 서울은 이미 550명) 이 수치는 같은 해 부처님오신날 (4명) 확진자보다 무려 '''300배''' 이상 더 많다.] [[진안군]]은 성탄절에 지역 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 주인공은 진안군에 거주하는 80대 남성이었다. 그 여파로 2021년 2월 14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되고 확진자가 매일 수백 명씩 나오는 형편이다. 여담으로 이 해 12월 하순은 고온이었는데[* 특히 12월 27, 28일은 대놓고 늦가을 날씨였다.] 성탄절 당일은 영하 4.7도/영상 3.5도로 2013년, 2015년, 2017년처럼 날씨가 평범했다. 또한 서울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확률은 19%에 불과했으나 충청도, 전라도는 무려 60%였다. [[강원도]]는 원래 눈이 많이 오고[* 강원도, 특히 영동 지방은 눈이 왔다 하면 10cm는 기본으로 쌓이는 동네다.] 경상도는 원래 눈이 잘 안 내리니. * 2021년 성탄절은 2010년 이후 11년 만에 토요일에 성탄절이 오게 되었다. 이는 모든 토요일이 휴업일이 된 이후에 오는 첫 토요일 성탄절이다. 제주도에서는 이 날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충주시까지 해서 3곳의 대형마트기 성탄절에 영업을 하지 못한다. 한편 코로나 사태로 월드컵 예선이 늦어지면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치고 축구선수들이 휴식을 하거나 훈련에 들어가는[* [[손흥민]] 등 영국에서 뛰는 축구선수들은 박싱 데이 전통을 따라 성탄절 다음날 경기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성탄절은 그저 출근해서 훈련받는 날일 뿐이다. (물론 감독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한국인들 중에는 [[박지성]]이 7년, [[손흥민]]이 6년 간 성탄절에 쉬지 못하고 훈련장에서 훈련을 했을 정도. 그 외에 [[기성용]], [[이청용]], [[이영표]], [[설기현]] 등이 몇 년 동안 성탄절에도 쉬지 못하고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보통 성탄절과는 다르게 성탄절에도 대표팀이 소집돼 훈련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으나 훈련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성탄절 즈음이면 백신 접종이 70% 이상 완료돼 2020년 성탄절의 1,241명 확진이라는 초대규모 확진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으나 돌파 감염, 오미크론 변이 등으로 인해 2021년 12월 중순 7,000명대를 돌파하면서 2020년 성탄절보다 확진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으며, 결국 성탄절 당일 확진자는 5,842명, 위중증 확진자 1,100명으로 전년도보다 5배 가량 늘었다. 이럴 경우 2020년에 이어 또다시 비대면으로 성탄절 종교행사를 해야 할 가능성도 높다. 이 때문에 2021년 성탄절도 '마스크마스', '코로나마스', '비대면마스', ‘이시국마스’, '방패스마스'[* 방역패스+성탄절.] 등의 안 좋은 별명이 붙었다. 그 여파로 학교들이 원격수업 기간에 들어가면서 성탄절 이전에 아예 방학을 하는 학교도 있을 정도이다. 한편, 당초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에 올라 1960년 이후 오랜만에 대체휴일 있는 성탄절이 올 뻔 했으나 2021년 7월 국경일과 명절, 어린이날에만 확대하도록 함에 따라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다.[* 만약 성탄절에도 대체공휴일이 적용됐다면 [[12월 24일]] (직전 금요일을 대체공휴일로 했을 경우)이나 [[12월 27일]] (직후 월요일을 대체공휴일로 했을 경우)이 됐을 것이다.] 이 해 성탄절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에 오는 첫 성탄절이다. [[이시언]]은 이 날 [[서지승]]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한편, 성탄 한파가 닥치면서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14.4도, 최고 기온은 영하 7.3도로 전년도에 비해 10도 가까이 떨어졌고 21세기에 가장 추운 성탄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12월 초순의 고온 현상 때문인지 한강은 결빙하지 않았다. 이 날 강원도는 폭설이 내렸고 특히 [[속초시]]는 무려 50cm가 넘는 눈이 왔다.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게 되었다. * 2022년 성탄절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이후에 처음 오는 공휴일인데,[* 월드컵은 보통 6월 한 달 간 열린다. 그러나 2022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는 사막 기후라서 6월에 월드컵을 열면 축구선수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그나마 덜 더운 11월로 개최 시기를 잡은 것이다.] 하필이면 일요일이다(...). 게다가 부처님오신날마저 일요일이며, 이런 이유로 서울에서는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에 모두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 해는 대체휴일이 없는 공휴일 4개[* [[새해 첫날]], [[부처님오신날]], [[현충일]], 성탄절. 이들 중 부처님오신날은 봄 (다만, 일부 지역은 여름일 때도 있다.), 현충일은 여름, 성탄절 (다만, 일부 지역은 가을일 때도 있다.)와 새해 첫날은 겨울이다. 선거일은 토, 일요일과 겹칠 일이 없으므로 제외하면 4개이다.] 중 현충일을 뺀 나머지 3개가 주말에 겹치고 덤으로 이 해 동지가 12월 22일이고 음력 11월 29일이며 성탄절은 음력 12월 3일이라 2021년 기준으로 성탄절이 음력 12월에 드는 가장 가까운 해이다. 성탄절이 음력 12월에 들려면 '''동지가 음력 11월 극후반에 있어야''' 가능한데[* 그렇게 되면 한글날은 음력 9월 중순에 들어 음력 10월과 11월에 모두 공휴일이 없고 음력 12월에만 공휴일이 3개나 오게 된다.] 동지가 12월 23일인 경우는 음력 11월 3일~12월 2일, 12월 22일인 경우는 음력 11월 4일~12월 3일, 12월 21일인 경우는 음력 11월 5일~12월 4일 사이에 성탄절이 올 수 있다. 한편, 모든 전환복무가 2023년 폐지되는 것으로 정해지면서 2022년 성탄절은 전환복무자들이 해당 신분으로 보내는 마지막 성탄절이 된다. 2021년 12월 [[중부내륙선]] [[KTX-이음]]이 개통하면서 성탄절에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하는[* [[충주시]]는 매월 10일과 25일에 대형마트가 의무적으로 휴업한다.] 충주 시민들이 수도권 지역으로 원정 쇼핑을 가는 경우가 많이 늘어날 것이며 서울특별시 역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걸려 [[송파구]], [[강동구]] 등 경기도와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에서는 대형마트가 문을 여는 인근 지역으로 원정 쇼핑을 갈 것이다. 2022년에 성탄 한파가 올 것인지는 2022년 10~11월이 되어야 알 수 있다. * 2023년 성탄절은 전환복무 폐지 이후 첫 성탄절이다. 요일은 월요일이다. 이 해는 [[영주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걸려 영주 시민들이 [[중앙선]] [[KTX-이음]]을 타고 수도권 지역으로 원정 쇼핑을 가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충주시|충주]]는 원래부터 성탄절에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해 타 지역으로 원정 쇼핑을 가야 하지만, 이 해는 청주와 원주, 서울의 대형마트들이 문을 열기 때문에 충주 시민들이 원정을 많이 가는 지역인 청주나 원주는 물론, 서울로 원정 쇼핑을 가는 경우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 2033년 성탄절은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성탄절이 윤달'''이 될 것이다. 2033년 윤달이 양력으로 12월 22일부터 1월 19일까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윤달스마스' ('''윤달'''+크리'''스마스'''), '윤리스마스' ('''윤'''11월+크'''리스마스'''), '윤탄절' ('''윤'''달에 낀 성'''탄절''') 등 윤달에 성탄절이 꼈다는 것과 관련지어 별명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2033년까지 유지된다면 서울에서는 성탄절에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못할 것이다. * 2034년 성탄절은 21세기에 2번째로 보름달이 뜨는 성탄절이다. 2034년 12월 25일 오후 5시 37분에 성탄절 보름달이 가장 둥글다고 한다. 이후 성탄절 보름달은 2053년에 다시 볼 수 있다. * 2049년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은 모두 일요일인데,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이 때까지 유지된다면 성탄절과 부처님오신날에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케이스는 2174년에 가서야 다시 등장하게 된다. * 2053년 성탄절은 21세기에 3번째로 보름달이 뜨는 성탄절인데 2053년 12월 25일 오후 6시 38분에 가장 둥글다고 한다. * 2072년 성탄절은 21세기에 4번째로 보름달이 뜨는 성탄절인데 2072년 12월 25일 오후 4시 35분에 가장 둥글어 결국 가장 둥근 상태를 관찰할 수 없다. * 2080년 성탄절은 2034년 이후 다시 음력 11월 15일이 성탄절인데 그 해의 달은 가장 둥글지 않다. * 서울 기준 성탄절 당일 최저기온이 가장 낮은 해는 [[1920년]]과 [[1929년]]의 영하 16.8도였고, 최저기온이 가장 높은 해는 [[1987년]]의 4.9도였다. 최고기온이 가장 낮은 해는 [[1917년]]의 영하 8도였고 가장 높은 해는 [[2006년]]의 12.6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