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십자가 (문단 편집) == 행방 == 전승에 따르면, [[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헬레나 황후]]가 324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만 하루 동안 매장되었던 무덤과 예수가 형에 처한 십자가, [[성정|예수의 몸에 박혔던 못]]을 발견했다고 한다. 무덤 자리를 찾아 발굴해보니 함께 못 박혔던 죄수들의 십자가 2개를 포함해 십자가 3개가 나왔는데, 어느 십자가가 예수의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한 병자를 시켜 만져보도록 하여 병자의 병이 치유되는 것을 근거로 예수가 못 박혔던 십자가를 알아내었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그 무덤 자리에 [[성묘 교회]]를 세웠다. 614년 [[로마-페르시아 전쟁]] 중에 당시 [[사산 왕조]]의 장군 [[샤흐르바라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동로마 제국]]에게서 성십자가를 빼앗았다. 동로마 황제 [[이라클리오스]]는 이런 사산 왕조의 침공에 대응해 [[성전#s-1]](聖戰)을 선언하며 반격하였다. 사산 왕조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이라클리오스는 빼앗긴 영토와 함께 629년, 또는 630년에 성십자가를 되찾았으며, 성십자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개선식]] 때 시민들에게 두루 보인 뒤 다시 예루살렘에 안치되었다. 또한 동로마 제국은 [[조로아스터교]]의 3대 성화(聖火)가 있는 성지인 메디아의 조로아스터교 신전을 파괴함으로써 보복하였다. [[십자군 전쟁]] 시기 성십자가의 조각들은 예루살렘에서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진위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십자가 보목으로 공경받는 것들은 [[성당]] 내 [[성유물]]함에 안치되었는데, 대부분은 위조품이라고 한다. 이에 관해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도 이런 위조 성유물을 까는 장면이 나온다. 화자인 아드소 [[수도자|수사]]가 작중 배경인 [[수도원]]이 소유한 각종 성유물을 구경하고 감탄하자, 주인공이자 아드소의 스승인 윌리엄 수사가 "너무 기죽을 것 없다. 내가 다른 곳에서도 성십자가 유물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전부 진짜라면 [[예수|우리 주님]]께선 통나무 2개로 만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널찍한 숲속에서 돌아가신 모양이다."라면서 수도원의 재물 자랑을 비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