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서무오설 (문단 편집) ==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 == (영감설을 배제했을 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은 한 명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기술한 것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놓은 것이니, 서로 충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그 책을 수십 가지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당연히 서로 다른 해석에 의해 서로 다른 표현과 오역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쿠란]]이 번역을 금지한 것도 이런 경우를 경계했던 것이다.[* 쿠란 또한 '의미의 번역'이라는 식으로 사실상의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번역의 금지는 [[아랍어]] 원본의 절대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란 역시 논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성경이나 쿠란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의미.] 다른 예를 보자면 [[모세의 십계명]]은 '이것은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다'라고 매우 간략히 써놓아서 오류가 생기기 어렵다고 여겨졌지만, [[예리코의 전투]]에서의 학살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한순간에 깨먹었다. 사실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못한다.'에서의 '살인'은 'Murder'을 말하는데 'Murder'와 'Kill'은 처음 십계명이 작성되어진 히브리어로는 그 의미가 확연히 구분된다. 이것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마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반론 영어에서도 murder와 kill의 의미 차이는 구별된다. murder는 '고의적인 살인'을 의미하고, kill은 좀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죽임'이다. 연쇄살인범이 부녀자들을 죽인 것은 murder이지만, 특수부대원이 테러범을 사살하는 것은 murder가 아니다.] 사실 히브리어에서 의미하는 'Murder'은 '''아주 비도덕적인 이유로, 정당하지 못한 살인'''을 말하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부분적으로 살인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즉, 가족과 민족, 국가, 또는 정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손에 피를 묻힌 자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참전용사, 독립투사 분들은 전쟁범죄 같은 게 아니라면 이런 이유로 그 죄를 짓지 않았거나 죄를 사함받았다고 여겨진다. 성경에서도 사사기의 사사들은 직접 계시를 받아 외적들을 깨뜨린 영웅들이 대부분이고 가장 마음에 합한 자라는 평을 받은 다윗도 그렇다.] 허나, 살인에 대한 이런 해석은 위에서 말하는 '[[성전|신의 뜻에 의한 학살]]'을 [[지하드|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 [[십자군 전쟁]]의 명분으로 악용되었고 [[시오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는 같은 종교를 믿지 않으면 아니면 인간도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성서무오설에서는 성서 내부에서 "이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써진 것이며 한 점의 오류도 없다"라는 문구들을 발견해서 근거로 삼기도 한다. [[순환논리]]라는 것을 넘어가더라도, 저 주장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이런 문장들이 말하는 '성경'의 범위가 지극히 애매하기 때문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성경'은 대부분 구약(히브리성경)을 말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은 서기 1000년경에나 성립한 마소라 텍스트이고, 그 전까지는 별의별 사본들이 난립해 있었다. 게다가 신약이 인용하는 구약은 보통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이었는데, 정통파 유대교인들은 이러한 번역본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또한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성서는 원본도 아니고 원본의 사본도 아닌, '''원본이 작성된 지 수백 년 이후에 손으로 만들어진 사본'''이다.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을 당시 성경의 사본을 만드는 방법은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방법이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필사자의 미숙이나 실수로 인한 오탈자를 포함, 사본마다 서로 다른 점이 수없이 많다. 이 다른 점을 '이문(異文)'이라고 하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필사 과정에서 성서의 내용을 변화시키는, '이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변개(變改)'라고 한다. 변개는 고의적 변개와 우연한 변개로 나뉘는데 '그럴 의도가 없음에도' 필사 과정에서 이문이 생기는 걸 우연한 변개라 하고, 본문 내용의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예를 들어 마가복음 1장 2-3절에 언급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은 이사야서에 기록돼 있지 않고 실제로는 말라기 3장 1절을 인용한 것이다.] 문법의 어색함, 교리상의 문제로 수용 불가능한 구절이 존재할 때, 본문 내용만으로는 문장의 이해가 어려워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변개하는 것이 고의적 변개이다. 이런 변개의 과정과 이문을 연구하는 학계에서 유명한 말이 바로 '''[[성경/논란|성서의 모든 낱말의 개수보다 이문의 개수가 훨씬 더 많다]]'''는 것.[* 이문이라는 것이 필사의 한계로 만들어진 만큼 다른 서적들도 이문이 있는데 왜 성경만 물고 늘어지냐고 비판하는 이도 있지만 문제는 성경의 이문은 단순한 필기오류가 아닌 종파간의 대립 역시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일대일 비교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단순한 필기 오류는 어지간히 엉망으로 적지 않는 한 금방 발견할 수 있고 독자 역시 쉽게 걸러낼 수 있지만 이념의 차이로 벌어지는 이문은 특성상 아주 교묘하기 때문에 쉽게 잡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성경 사본도 100% 일치하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성서의 원문을 복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성서 말씀에 오류가 있다 없다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성서의 기초가 되는 문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1~2세기엔 아직 세력이 미약하여 전문적인 필사 훈련을 받은 필사자가 아닌 글 좀 안다는 신자들이 만들었다. 그런데 문맹율이 90% 가까이 되었던 고대 사회였던 만큼 글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그 수준이 높지 못하여 음절을 겨우겨우 구분하던 사람이 수두룩했던 만큼 애시당초 자질부터가 문제였고, 여기에 더하여 현재 같은 문장법도 없던 시대여서 지금처럼 [[물음표]]나 [[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도 없었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던 시대였던 만큼 이런 아마추어 필사자들이 남겼던 글이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더 나아가서 히브리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경우 '''[[모음]] 표기를 하지 않는다!''' 왜 띄어쓰기가 문제가 되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영어로 'Godisnowhere'라고 붙여쓰기를 하면 이 문장만으로는 'God is nowhere[* 붙여서 "노웨어" 라고 읽는다.](하느님은 어디에도 없다)'인지, 'God is now here(하느님은 지금 여기에 있다)'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앞뒤의 문맥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없으면 둘 다 맞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의미 파악이 무지 힘들어진다. 이런 식의 문장이 한 페이지, 책 전체에 걸쳐서 쓰여져 있다고 생각해 보면... 전문가도 꽤나 힘들 것이 뻔한데, 초보 필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모음표기가 없다는 것은 셈족 계열 언어의 특성을 이해해야 될 필요가 있다. 셈족 계열 언어는 근대까지도 모음 표기 규칙이 없었을 정도로 모음 배치에는 규칙성이 있다. 단지 세월이 지나면서 발음법이 바뀌어서 문제일 뿐이다. 일례로 현재 아랍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음 표기를 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음 부호를 표기하면 읽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현지인)이 대다수다. 거기에 초기 기독교 시대는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 자체도 아직 확립이 안 된 시기였던 만큼 지금의 기독교 종파의 다양성을 뺨치게 수많은 종파가 있었고, 자연히 [[사도 바오로]]의 서간에 많이 등장하는 '거짓 [[예언자]]' 식으로 서로간에 주도권 다툼이 심각했다. 이에 따라 자신이 믿는 종파에 맞추어 문서를 왜곡하고 변경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후세에 이들이 남긴 문서로 '원본문' 좀 재구성해 보려는 학자가 애를 먹을 수밖에. 오죽하면 '성경 왜곡의 역사'의 저자 바트 어만이 자신의 저서에 현재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간에 공공연하게 '이제 원본문 재구성할려는 노력을 접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다는 말을 적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원본문 재구성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는 데 주의하라. 진담이 아니라 원본문 재구성 연구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원본문 재구성은 그럼에도 여전히 의미는 깊다.] 더욱이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성서본문연구에서 학자들은 후대에 첨가된 구절들을 밝혀냈는데, [[요한의 콤마]], [[간음한 여인과 예수]] [[마르코 복음서]] 16장 9절부터 끝까지의 부분이 대표적인 후대에 첨가된 구절들이다. 성서가 성령으로 쓰여졌으며 쓰여진 이후에도 성령의 힘으로 글자 하나하나까지 보존되었다는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자들의 말대로라면 도대체 왜 '인간의 숨결'이 들어가 있으며, 그들이 믿는 성령은 왜 처음의 원본이 변경되지 않도록 지켜주지 않았는지 정말 의문점이 생긴다. 즉 성서는 성서무오설 주창자들의 말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는 문서라는 소리이다. [[성서비평학]]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많은 신학교에서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답이 없다]]. 유대교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있는데 [[토라]]라고 불리우는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모세가 '''[[빙의|신들려서]]''' 썼던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경전의 문자를 수비학적으로 조합하거나 치환하여 메세지를 만들어내려는 카발라 같은 비의도 유대교 내부에서 성행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상기 5권은 각각 서로 다른 계통의 전승을 가진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작성했던 문서들이 취합된 것임이 본문비평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모세가 썼다는 이른바 '모세 5경'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점 중의 하나는 신명기 34:1~12에 '''모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걸 모세가 썼다는 것이 경전에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간단한 땜질만 하면 해결되는(대표적으로 '그 부분만 다른 사람이 썼다'는 식으로), 비교적 쉬운 문제에 속하기도 하지만, 성경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 것인지 - 그런 것이 없었다면 '모세 5경은 모세가 썼다'는 널리 퍼진 상식의 오류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까 - 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창세기는 그 본문 자체가 서로 다른 여러 전승의 짬뽕으로,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서로 전혀 다른 창조설화가 수록되어 있고 심지어 하느님을 일컬어 부르는 단어조차 다르다. 성서에 한 점의 오류가 없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같은 텍스트를 해석하는 사람들의 견해 차이 때문에 [[기독교]] 교파가 갈라진 것 아닌가 싶다. 극단적인 예로 레위기에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이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 등 일부 종파는 이를 확대해석해서 [[수혈]]도 안 받는다. 이들의 논리는 "[[알코올]]을 마시지 말라고 해서 그걸 수혈팩에 담아서 혈관에 꽂는 건 되는 건가?"라는 것. 물론 [[단백질]], 철분 등으로 구성된 [[혈액|피]]가 소화계로 흡수될 때와 순환계에 유입될 때의 결과물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며, 소화계에서 분해되지 않고 흡수되어 혈류를 타므로 순환계에 직접 유입시킬 경우 소화계를 통한 흡수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알코올과 혈액의 경우도 무척 다르다. 게다가 '''[[뱀파이어|누가 피를 섭식하자고 수혈을 하던가?]]''' 이러한 율법은 당시 타 종교들에서 피를 마시는 의식이 있었고 당시의 위생적으로 꽤 위험한 행위였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개신교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교회만이 성서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풍토였기 때문에 교리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 시절엔 정교유착이 심해서 더 문제였다. 율법들은 특히 이런 것이 심하다. 현대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규칙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1114&PAGE_CD=&BLCK_NO=&CMPT_CD=A0115&NEW_GB=|(리뷰)]]] 물론 그런 걸 일일이 다 지키고 사는 골수파 [[하레디]]도 없지는 않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다. 결국 [[http://pds19.egloos.com/pds/201006/25/88/f0002288_4c237e8d6b4f2.jpg|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성서 말씀을 대부분 실천하진 않는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건 [[여호와의 증인]]이건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사선택하여 실천한다. 애초에 현대 사회에서는 지킬 수 없는 율법이 태반이라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가 없으며 상호 모순인 부분도 존재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성서에 안 나오는 건 마약이든 신종 사기든 죄가 아닌 게 된다. 예를 들어 성서에 자주 등장하며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이를 마심으로써 나를 기억하라." 라고 한 포도주는 "마셔야 하는"것이며 성서에 나오지 않는 담배는 금지할 수가 없는데, 술 담배를 금하는 국내 개신교파들은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전파는 이단이 되는 셈이다. 성서를 기반으로 참고해 보자면,[* 개역개정판 기준] 율법은 처음부터 지켜질 수가 없었다.[* 갈라디아서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래서 율법으로 인한 의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히브리어, 그리스어로 쓰여진 원어 사본 뿐만 아니라 한국어, 영어 등 번역본에 대해서도 '''토씨 하나 하나까지 따져가며''' 극단적인 성서무오설 입장을 보이는 과격파도 존재한다. 한 가지 예로, 개역한글판에서 개역개정판으로 바뀔때, 여기에 극단적으로 빠진 몇몇 사람들은 "신의 말씀은 '''단 한 글자도''' 틀릴 것이 없는데 왜 (변개된) 개역개정판을 쓰냐?"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과거 한글판 성경들의 절대 다수는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라틴어 - 영어 - 중국어 - 한국어의 몇 단계나 되는 [[중역]]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 이해하기 쉬우라고 한국에는 없는 생물의 경우는 [[현지화]]까지 시켰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당시 동아시아에 들어온 적도 없는 [[피스타치오]]의 경우는 [[유향나무]]나 (일본과 제주도 원산인) [[비자나무]] 열매로 기록되어 있다.]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한국어 표기]]의 발음은 차치하고 대상 자체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다못해서 무오설 주장을 하고 싶다라면 이슬람교의 [[쿠란]]처럼 원전 경전을 원어로 읽으면서 무오설 주장을 해야 그나마 이해를 해줄 것[* 위에서는 도진개진, 50보 100보라고 하겠지만, 엄밀하게 50보 도망간 놈과 100보 도망간 놈은 중역의 문제 같은 것까지 고려하면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인데, [[킹 제임스 성경]]에 [[킹 제임스 성경 유일주의|환장하는]] 미국 근본주의자나 [[개역한글판|개역한글 성경]]만 물고 늘어지는 [[신천지]]와 마찬가지로 [[궤변|'''자신에게 익숙한 책만 진리''']]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소설 원래는(How it happened) 역시 구조적으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성경의 체계를 풍자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