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민규 (문단 편집) === 마이너리그 선수? 코치? [[통역]]? === KIA에서 방출된 후 국내 언론을 통해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현지 보도를 보면 정식 마이너 계약이 아니라 시카고 컵스의 director of player personnel인 오너리 플레이타(Oneri Fleita)에 의한 개인적 계약(signed by Oneri Fleita personally)이라고 나와 있다. 미국에서 대학야구를 졸업한 후 KIA 2군에서 30경기에 뛴 것이 전부였기에 마이너리그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해 스프링캠프[* 즉, 성민규는 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계약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시즌 개막 전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는 의미다. 메이저리거와 마찬가지로 캠프 초청을 받지 못한 마이너리거들도 짧지만 한 달여간 스프링캠프를 시즌 전에 치른다. 스프링캠프 경기는 로우 싱글A, 하이 싱글A, 더블A, 트리플A로 나눠 치루는 일반적인데, 성민규는 스프링캠프 경기를 트리플A팀 소속으로 출전했다는 뜻.]에서 곧바로 트리플A에 올려졌다. 본인의 언급에 따르면 현실을 깨우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결국 스프링캠프가 시작된지 3주 만에 성민규는 더이상 못버티겠다고 구단에 GG를 쳤고, 구단은 그를 싱글A나 더블A로 내리는 대신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코치로 전향할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며 코치 제안을 받아들여 현역에서 은퇴하고 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A 구단을 운영하는 피오리아 그룹과 코치 계약을 맺었다. [[https://m.sport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1341|#]] 이상은 성민규 본인이 주장한 내용이다. 하지만 아래에 보면 알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스포츠춘추|엠스플]]의 배지헌이 작성한 [[https://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1&b_idx=99833575.000|기사]]에는 성민규가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이는 엄밀히 따지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다. 전술된 바와 같이 성민규는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에 3주간 출장했다가 은퇴했는데, 스프링캠프 경험은 당연히 선수 경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론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정식 데뷔하지 못하고 선수를 은퇴한 것이 맞다. 그렇게 2008시즌을 앞두고 로우 싱글A(Low-A)팀인 피오리아 치프스와 계약하고 코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 선수 경력조차 없었기에 선수들에게 무시를 당했고, 무엇보다 훈련시간에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다 [[입스]]에 걸려 제대로 던지지 못하면서 당시 마이너리거였던 [[조시 도널드슨]]이 빡쳐서 멱살을 잡기까지 했다고 하며, 팀의 심리치료사에게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https://n.news.naver.com/sports/kbaseball/article/380/0000001341|성민규의 인터뷰]]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03/2008090300188.html|2008년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코치시절 보직은 1루 주루코치였고 한때 이름 때문에 화제가 된 마크 햄버거를 상대한 일화 등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서 본인 말로는 1년간 코치 업무가 적성에 맞아서 계속 지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었지만... 저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몇 주 후에 스카우트로 발령나면서 유니폼을 벗게 된다. ~~뭔가 계속 앞뒤가 안맞다 느낀다면 정상이다.~~ 한편, 코치 시절인 2008시즌 막판에 싱글 A에서 5타석 출장한 경험이 있다. 비록 현역에서 은퇴한 뒤의 일이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마이너리그 싱글A에 출장한 것. 이것은 시즌 막판에 부상자가 속출하자 당시 [[라인 샌드버그]] 감독이 궁여지책으로 성민규를 출전시킨 것이었다.[* 미국 마이너리그 팀들은 로스터가 빡빡하게 구성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줄부상당할 경우 경기에 뛸 인원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땅덩어리도 넓어서 다른 레벨 마이너팀에서 선수를 꾸어오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코칭스태프들이 종종 땜빵으로 출전하는 경우가 있다. 트리플A도 아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하위리그인 싱글A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또는 성민규가 마이너 출장 경력도 없어서 선수들에게 무시당하자 샌드버그 감독이 일부러 경기에 내보내서 출장 기록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마이너리그에서 뛴 것이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는 기사 내용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그는 플레잉코치도 아니었고 일반 코치 계약을 했지만 시즌 막판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장한 것일 뿐이다. 즉 그가 마이너리그 5타석에 선 순간도 그는 팀에서 현역 선수가 아니라 코치로 등록되어 있는 신분이었다.[* 참고로 플레잉코치는 아직 현역으로서 충분히 통할 기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팀의 구심점이 되는 뛰어난 리더쉽을 가지고 있어서 선수로서 계속 활용하면서 동시에 지도자의 역할까지 맡기기 위해 주로 활용된다. 때문에 플레잉코치는 그동안 리그에서 좋은 커리어를 남긴 베테랑 선수들이 노년에 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민규처럼 프로에서 커리어도 없는 사람을 플레잉코치로 계약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는 구단에서 비싼 돈을 들여 마이너리그팀을 운영하는 목적에서도 벗어난다.][* 김성근도 젊은 시절에 [[난카이 호크스]] 2군 캠프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지만 이것을 자기 선수 경력에 넣지 않고 자기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이때 성적은 3경기 5타석 4타수 무안타 1볼넷 1삼진 타율 0.000 출루율 0.200. 수비 외야 8이닝 2자살. 참고로 성민규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치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 코치가 된 것처럼 말했었다. > 성 코치는 "한국인 최초 마이너리그 코치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거듭했다. 한국인 최초 마이너 코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그것 만큼은 정말 자랑스럽다". > ----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09&aid=0001995350|[인터뷰] '27세 한국인 코치' 성민규, "내아들 4명, 빅리거로 성공할 것"]] 일단 성민규가 코치였다는 것부터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지만, 코치였던 것이 사실이라 쳐도 성민규 이전에 이미 [[이만수]]가 코치로 활동한 바 있으므로 현실 왜곡 아전인수 해석이다. 이만수는 1997시즌 현역에서 은퇴한 후 미국으로 넘어가 199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싱글 A팀인 킨스턴 인디언스 코치, 199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팀 샬롯 나이츠 주루 코치를 거쳐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 캐처로 활약, [[2005년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까지 끼게 된다. 당시 이만수는 불펜 캐처로서 코칭스태프에 등록되어 있었으므로 정식 코치가 맞다.[* 여담으로 이만수는 성민규의 대구상고 선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