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민규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성민규 본인의 말에 따르면 칠성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시절 인터뷰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고 했으나 롯데 단장이 되고 난 후 인터뷰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야구부]][* 2학년이던 199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멤버였다. 3학년에는 같은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장준관]], [[이영욱(투수)|이영욱]], [[권도영]], [[강영식]], [[박기혁]], [[이영수]], [[차일목]], [[용덕한]], [[이정호(1982)|이정호]]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에 진학했다. 원래 포지션은 투수였지만, 대구상고에서 이정호 등에 밀려 투수로 자리잡지 못하고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고교 시절에는 거의 외야수로 출전했다. 고교 3학년 때까지는 출전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가 2학년 때 대구상고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본인은 벤치에서 박수만 쳤다고 한다. 대구상고에 진학한 뒤 야구가 싫어졌다고 한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다시 투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야구부|홍익대]]에 진학하였다.[* 홍익대 입학 당시 고교-대학 2년 선배로 [[차일목]]과 [[이영욱(투수)|이영욱]]이 있었다. 입단 동기로는 [[윤승균]], 최홍진(이상 신일고), 한정석(배명고)이 있다. 윤승균(현대), 최홍진(두산), 한정석(한화) 모두 프로지명을 받았지만 대학 진학을 택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윤승균만 신고선수로 두산에 입단했다.] 홍익대 시절에는 다시 투수로 포지션을 바꾸었다. 그러나 운동부에 만연한 구타도 싫었고, 그보다 본인의 야구 실력이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운동선수로서의 앞날에 대한 회의감과 대학교에 들어왔지만 운동 밖에 배우는게 없어서 사회에 나가서 뭘 할지에 대한 막막함 등으로 결국 1학년 1학기가 끝난 뒤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 무작정 뉴질랜드로 갔다. 그러나 또다른 인터뷰에서 성민규는 홍익대에서 투수로 인정받았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났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에서 1년간 언어교육원을 다닌 뒤 2002년 뉴질랜드 유니텍대학교의 '스포츠 경영학과'(성민규 본인의 워딩에 따르면 '스포츠 매니지먼트')에 입학했다. 그러나 [[https://www.unitec.ac.nz/|유니텍대 공식 홈페이지]]나 [[https://en.wikipedia.org/wiki/Unitec_Institute_of_Technology|유니텍대 위키피디아]]를 보면 유니텍대에 스포츠 매니지먼트과는 없다. 대신 '스포츠 운동 레크리에이션과(Sport, Exercise and Recreation)'가 있다. 이 과는 스포츠 자체와 더불어 스포츠 코칭과 레크리에이션 지도 등 스포츠-레크리에이션 지도자를 육성하는 학과이다. 성민규가 이 대학을 다닌 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가 실제로 재학한 학과는 이 학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스포츠-레크리에이션과는 스포츠 경영(매니지먼트)학과와는 완전히 다른 학과다. 스포츠 경영학과가 프런트 오피스 직원을 양성하는 학과라면 유니텍대의 스포츠 운동 레크리에이션과는 스포츠 선수 및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지도자를 육성하는 학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사회체육학과 혹은 그냥 체육학과로 번역된다. 일단 교수진들의 경력을 봐도 두 학과는 완전히 다르고, 배우는 과목도 성격이 아예 다르다. 소속 대학도 달라서 스포츠 경영학과는 보통 경영대학에 속해 있지만 스포츠 레크레이션학과는 보통 체육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스포츠 경영학과는 말그대로 스포츠산업의 전문경영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입학 조건 역시 운동 선수 경력과 무관하게 보통의 인문계 학과와 마찬가지 기준으로 선발된다.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하려면 인터내셔널 학생이라도 영어 성적은 자격 기준에 불과하며, 고교 내신이 당락을 좌우한다. 그런데 90년대 우리나라 운동부 출신이라면 내신 성적은 '가(D-)'로 도배되는 것이 정상이고, 이런 내신으로 뉴질랜드에서 나름 상위권 기술단과대학(ITP)인 유니텍대 경영대에 입학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물론 예체능계열인 '스포츠 운동 레크리에이션과(Sport, Exercise and Recreation)'에 입학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니텍대에는 스포츠 경영학과 자체가 없다. 한편 일부 언론 기사에는 유니텍대에 입학하기 전에 NMIT(Nelson Marlborough Institute of Technology, 넬슨 말보로 기술대학)에 다녔다고 학력에 기재되어 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60901023007|#]] 언론 기사에 따르면 그는 유니텍대 스포츠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공부에만 매진해서 밤을 지새며 공부하고 버스에서도 책만 봤다고 한다.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149772.html|#]] 그러나 유니텍대에 입학해서 공부에만 매진했다는 그의 설명은 실제 그의 커리어와는 상당히 모순이 된다. 그는 대학팀에서 야구를 하다 뉴질랜드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호주에서 열린 영연방대회에 출전해 2002년과 2003년 2년 연속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성민규는 2002년 7월에 호주 유니텍대학교에 입학했고, 2003년 9월 미국 아이오와 웨슬리안대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그 사이에 영연방대회에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2회 출전하여 MVP에 올랐다. 이런 그의 커리어가 전부 모순 없이 성립하려면 성민규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나 최소한 입학과 동시에 야구부에 입단해서 뛰어야 한다. 대학교 입학 이후 13개월이라는 시간 안에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영연방 대회에 2회 출전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대학의 모든 입학 [[프로세스]]를 거쳐 합격과 등록까지 완료해야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 대학교 입학 [[프로세스]](admission [[프로세스|process]])는 매우 긴 편이어서 거의 1년 가까이 걸린다. 미국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보통 입학하기 11개월 전인 10월 경에 원서를 내야 해야 한다. 혹시 성민규가 '스포츠경영학과'에 입학했다는 본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고 위에도 언급된 '스포츠 운동 레크리에이션과'에 입학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입학하자마자 국가대표팀에서 선발되고 일년만에 웨슬리안대 야구부에 입학한 것이 어느정도 납득이 되기는 한다. 호주챔피언십에서 MVP로 선정되며 스카우트 눈에 눈에 띄어 2003년 미국 아이오와 웨슬리안대(Iowa Wesleyan University)에 투수로 입학했다. 1년간 팀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후 1학년을 마치자 각 팀의 트라이아웃 일정을 파악한 다음 캔자스시티 로열스, 미네소타 트윈스 등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다 떨어졌다. 대신 대학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2004년 7월 [[네브래스카 대학교/오마하 캠퍼스]](University of Nebraska-Omaha, NCAA Division 2)[* [[워렌 버핏]]과 같은 그 학교 맞지만 캠퍼스가 다르다. 버핏은 [[네브래스카 대학교/링컨 캠퍼스]]출신으로 미국인들에게는 링컨 캠퍼스가 더 잘 알려져있다.]에 장학생 자격으로 편입하게 되었다. 네브래스카대에서 밥 헤럴드 감독의 제안도 있었고 본인도 투수보다 타자가 프로에 입단하기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투수에서 [[스위치 히터]] 외야수로 전향했다. [[파일:성민규2.jpg|width=50%]] 2005년에는 한국 KBO팀에 컨택하여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었지만 테스트에 탈락하여 입단은 불발되었다. 그러다가 그해에 우연히 조찬관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 과장의 [[통역]]을 맡게 되었다. 외국인 선수 물색차 미국을 찾은 조찬관 과장은 [[미네소타 트윈스]]의 스카우트 데이비드 김을 통해 성민규를 소개받았고, 조 과장은 성민규를 통역으로 데리고 함께 미국을 돌아 다녔다. 외국인 선수들을 테스트할 때 성민규가 직접 보조를 뛰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찬관 과장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게 되었던 것. 이후 [[KIA 타이거즈]] 스카우트팀이 미국에 올때마다 성민규가 동행하게 되었다. 한편 네브래스카대에서 1년 더 뛰며 지역 대학리그에서 3할대의 타격을 선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