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묘교회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성묘교회1.jpg]] 내부 전경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성당]]이다. [[가톨릭]]·[[정교회]]와 더불어 [[오리엔트 정교회]]인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시리아 정교회]]·[[콥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아울러 [[기독교]] 교회 6군데의 공동 [[성지]]이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무덤에 매장되었다가 사흗날에 [[부활]]했다는 종교적 사건의 무대이다. 약 325년경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친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가 성지순례를 하다가 발견한 예수의 빈무덤 자리이다. 326년경 콘스탄티누스 1세가 예수의 무덤자리라 추정되는 곳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이후 파괴와 재건축을 거쳐 오늘날까지 1600여 년이 넘도록 교파를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는 [[성지순례]]의 단골코스가 되었다. 또한 [[부활절]] 지정에 아무런 점화 장치가 없는데도 홰에 저절로 불이 붙는다는 [[거룩한 불]]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소라는 세계구급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낡은데다가 주변은 시장과 [[모스크]]로 둘러싸여 부지도 협소한 상태이다.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과 비교하면 초라하게 보일 정도인데, 이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놓고 공방전을 반복하면서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성묘교회의 운명도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 세력에게 점령된 예루살렘을 [[1192년]]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 딘]]이 다시 점령했을 때, 살라흐 앗 딘은 자신과 가까운 무슬림인 조우데흐 가문과 누쎄이베흐 가문에 각각 성묘교회의 열쇠와 문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겨[* 조우데흐 가문이 성묘교회로 열쇠를 가져오면 누쎄이베흐 가문이 그 열쇠로 문을 열도록 허용한다는 구조.] 성당을 보호했다. 특히 누쎄이베흐 가문은 [[637년]]에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의 통치 때부터 성묘교회의 관리인 보직을 맡고 있었던 가문이었다. 지금도 이들 두 가문이 성묘교회의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일 두 번, 조우데흐 가문의 일원이 열쇠를 문으로 가져오면 누쎄이베흐 가문의 일원이 문을 한 번은 잠그고 한 번은 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