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룡 (문단 편집) === 영화 감독 및 제작자 === 액션 배우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은 바로 영화 감독 및 제작자로서의 역량이다. 특히 성룡을 스타덤에 올린 1980년대 중후반의 작품들[* 프로젝트 A 1, 2, 폴리스 스토리 1, 2. 용형호제 1, 2.]은 모두 성룡이 감독을 맡았던 작품들이다. 성룡은 첫번째 할리우드 진출 시기에 접했던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키튼의 영향을 받기 전의 성룡의 액션이 단순히 쿵푸에 코믹을 가미하는데 그쳤다면, 이후에는 정교하게 계산된 움직임과 과격한 스턴트를 펼쳐 보는 이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냈다. 일부 미국의 평론가나 영화 매니아들은 성룡의 영화를 접한 뒤에 '버스터 키튼의 진정한 후계자는 미국이 아니라 홍콩에서 나타났다'라는 평을 해주었을 정도다. 또한 액션 영화 말고도 관금붕[* 홍콩을 포함한 중화권에서 [[왕가위]] 감독과 쌍벽을 이룰정도로 '홍콩 뉴웨이브의 거장'이라는 평을 받는 감독이다. 허안정, 지하정, 완령옥, 장한가 등등의 수작을 연출했다] 감독의 작품도 제작에 참여했는데 인지구(1987), 완령옥(1992),[* 1905~1934년까지 산 실존여배우 완령옥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온갖 연예계 소문에 시달리던 완령옥은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의 입"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 영화로 장만옥이 홍콩배우들 최초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장한가(2005)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거장들이 그랬듯, 성룡 역시 지나치게 완벽주의를 추구했기에 제작기간은 갈수록 길어졌고, 매해 홍콩 영화의 최대 제작비를 스스로 갱신할 정도로 자본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골든하베스트]] 영화사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로 성룡 때문에 날아간 막대한 제작비를 거론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니... 결국 1989년에 단단히 마음먹고 제작한 [[성룡의 미라클|미라클]]의 흥행이 개봉 당시 벌어진 중국의 [[천안문 6.4 항쟁]]의 영향으로 그저그런 수준에 그치고, [[주윤발]]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 [[주성치]]로 대표되는 엽기 코믹물이 대박을 터뜨리자[* 이 시기에 성룡이 한 인터뷰에서 "나는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져가면서 영화를 찍는데,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농담 몇마디 하고서도 내 영화보다 훨씬 수익이 좋다"라며 한숨을 쉬었다는 루머가 거의 사실처럼 돌아다닐 정도다.] 1990년에 제작한 [[용형호제 시리즈#s-2|용형호제 2]]를 마지막으로 성룡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고 전문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다른 감독들이 성룡의 영화를 감독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 구성이나 재미에 있어서는 성룡 초기작에 영 미치지 못한다. 전성기 시절의 성룡은 본격적으로 감독 노릇을 하기 전부터 감독이 찍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영화 촬영에 개입하는 배우로 유명할 정도로 파워가 강했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한 장면을 무려 1,000번 가까이 반복하여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이후로는 완벽주의가 더 심해져서, 자신이 감독을 맡은 영화가 아님에도 사실상 감독처럼 권한을 휘두르는 경우가 잦았고 [[실베스타 스탤론]]만큼이나 각본 수정과 제작 과정에 개입을 많이 했다.[* 과거 두 사람은 [[람보 4]]에 같이 출연할 뻔 했는데, 역시나 각본 문제로 엄청나게 다투다가 성룡이 출연을 거부했다. 원래의 각본대로라면 성룡이 악당으로 나와서 람보 덕분에 갱생하고 람보를 돕는다는 줄거리인데, 성룡은 이 각본을 보고 아시아인 악역이 백인 덕분에 갱생하는 내용은 아시아에 대한 모독이라며 격분했다고. 그런데 어차피 성룡의 요구대로 각본을 바꿨더라도, 제작이나 연출면에서 두 배우가 서로 충돌했으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때문에 감독과 성룡 사이의 불화나 트러블은 수도 없이 많았다. 가령, 《폴리스 스토리 3》를 찍을 당시, 당계례 감독과 성룡 사이에 갈등이 많았던 터라, 당계례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영화 3편을 찍으면서 받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이 작품 하나로 받는다며 투덜거렸고, 《중안조》 촬영 당시에는 황지강(黃志強) 감독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취권2》에서는 무술 연출에 관해 의견이 엇갈려 유가량(劉家良) 감독과 대놓고 싸우다가, 빡친 유가량이 초반부의 격투 장면만 완성시킨 후에 아예 메가폰을 놔버렸다.[* 유가량은 홍콩의 유명 무술가 출신으로 부친인 유심(劉湛)은 [[황비홍]]의 제자였던 임세영(林世榮)의 제자였다고 한다. 거기에 의형제인 유가휘(劉家輝, 본명 승금희(冼錦熙))와 유가영(劉家榮)도 무술가로 유명하다.] 그 결과 영화의 대부분을 성룡이 직접 감독해서 《취권2》가 완성되었다. 이후 유가량은 《취권2》의 흥행에 고춧가루를 뿌리고자 [[유덕화]]를 기용해서 《취권3》를 제작했고 동시기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결과만 따지자면 되려 《취권3》가 발리고 만다. [[왕정]] 감독의 전성기에 《[[시티헌터(1992년 영화)|성룡의 시티헌터]]》로 왕정 감독과 협업한 적이 있었지만, 왕정이 지나치게 다작(多作)하는데다 영화를 대충대충 찍어댄다는 이유로 성룡이 불만을 품어서 촬영 당시에 두 사람의 사이가 무척 안좋았다. 이에 왕정은 《성룡의 시티헌터》 이후로 [[이연걸]] 주연의 《[[탈출(영화)|탈출]]》(원제목은 《서담용위(鼠膽龍威)》)(1995)이라는 성룡을 까는 영화를 만들었다. [[장학우]][* 공교롭게도 장학우의 영어 이름이 Jacky Cheung이라서 성룡과 비슷하다. 이쪽의 발음은 재키 청 또는 재키 정에 가깝다.]가 맡은 룡위란 인물의 기믹을 외모는 [[이소룡]] 짝퉁이지만, 성격이나 사생활에서는 누가 봐도 성룡임을 짐작하게끔 만들어놓고 [[주색잡기]]와 실제 무술 실력은 별로라는 설정을 집어넣었으며, 한술 더 떠서 아예 스턴트를 직접 한다고 구라치고 대역을 쓰는 장면까지 등장시켰다. 그리고 룡위의 매니저를 맡은 아버지[* [[천녀유혼]]에서 도사로 나온 오마(1942 - 2014)가 맡았는데 오랫동안 국내에서는 우마라고 오타로 알려졌다.]와 매니저 진자강까지 성룡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과 흡사하게 설정함으로서 누가 봐도 한 눈에 알게끔 만들어서 성룡을 조롱했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룡위가 부친이 구타당하는걸 보고 분노하여 멋지게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이에, 제아무리 서로 간의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상관도 없는 성룡의 주변인들까지 공개적으로 희화화시킨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성룡의 썬더볼트]] 촬영 당시에도 진가상 감독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는데, 진가상이 기획한 시나리오에 성룡이 개입해서 시나리오를 수정한 것은 물론이요, 진가상에게 감독을 맡겨놓고서 정작 레이싱 장면에는 진훈기와 당계레를 영입해서 촬영했고, 무술 장면은 [[홍금보]]에게 연출을 맡겼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