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동일 (문단 편집) == 생애 == 출생지는 [[인천광역시]]. 출세작인 [[은실이]]를 포함 [[야인시대]]나 [[응답하라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수준급의 [[전라도 사투리]]를 선보인 탓에 전라도 토박이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렸을 때 외가인 [[화순군]]에서 살기도 했었지만 출생지도 인천이고 성장기를 보낸 곳도 인천이라서 인천 토박이 사람이다.[[http://m.site.naver.com/17xU5|#]]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이 불우했다.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전라남도]] [[화순군]][* 더욱 자세히는 동복면 한천리 일대라고 한다.]에서 8살 [[터울]]인 [[누나]]와 단둘이 남의 집에서 살았다. 이 때는 2013년 당시의 빈이(6살)보다 어렸을 때였다고 한다. 누나가 남의 집 밭일을 도와주고 먹을 것을 받아와서 어린 성동일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정을 꾸린 지금도 누나가 혼내면 감히 반박할 생각 따위는 꿈도 못 꾼다고 한다. 정확한 표현을 인용하자면, 누나가 '''야단'''을 치다 뺨을 때리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맞는다고 한다.''' 성동일이 누나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른다고 볼 수 있는 예시가 있다. 2014년 아빠 어디가에서 밝힌 일화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배우가 무슨 예능을 하느냐?"''' 라면서 제의를 거부했는데 그의 누나는 그런 성동일에게 '''"너희 집사람이 감자탕 집에서 설거지 하고 있는데 그건 알고 있냐?'''" 라면서 '''"너 혼자 배우 대접 받으면 그만이냐?"''' 라고 그를 꾸짖자 성동일은 그 후부터 열심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에게 있어서 누나는 단순히 남매지간이 아니라 부모나 다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의 전라도 사투리는 이때 익혔을 가능성이 크다. 10살 즈음까지 동네 어르신들이 지어준 다른 이름(성종운)으로 불렸으며, [[출생신고]]도 되어있지 않아 호적에도 없었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출생신고가 되어 호적에 올려졌었다. 이때 출생신고를 하면서 성동일로 개명. 어머니[* 참고로 어머니는 [[2016년]] [[1월 20일]] 사망하였다. 이로 인해 태국 푸켓에서 [[응답하라 1988]] 포상 휴가 중이던 성동일은 모친의 별세 소식에 급거 귀국하기도 했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까지 결심했을 정도. 성동일이 10살 무렵 어머니와 아버지가 억지로 다시 가정을 꾸렸지만, 매일같이 이어지는 폭력과[* 집에 들어온 첫 날부터 그를 때렸다고 한다.] 방치에 집을 나가 사는 것이 그 무렵 자신의 꿈이었다고 회고하기도. 그 때문인지 20년 동안 아버지를 보지 않았으며, 후에 아버지가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고도 일부러 장례식은 물론 발인도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오랫동안 안 보고 살았던데다 여전히 아버지에게 미운 감정도 갖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내가 아들이요, 이 분이 내 아버지요"라며 나서는 것도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라고.[* 성동일의 아내도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었는데, 성동일보다 먼저 연락을 받고 임종 사흘 전 첫째 준이, 둘째 빈이와 함께 인사를 다녀왔다고 한다. "돌아가실 것 같다고 위독하시다고 들어서 정식으로 찾아뵙고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다." 며 준이와 빈이도 손주라고 소개해 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나중에 성동일에게 고백하면서(이 이야기를 하면 화를 낼까 봐 말을 못했는데 "저 사람 분명히 가고 싶어할 텐데 발인까지 안 가고 저러고 있다" 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서 말했다고.) 성동일에게 한 가지 부탁이라며 '''삼우제부터는 우리가 아버님 제사를 모시면 안되냐'''고 성동일에게 묻더라고 한다. "'''낳아준 자식놈도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태어나서 딱 한 번, 그것도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본 며느리가 저런 것까지 생각을 했다고?'''"라는 생각에 멍했다고. 그 이후로 아내가 삼우제부터 쭉 아버지의 제사를 [[https://youtu.be/vkCTiAEgyEs|모시고 있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얻은 장남인 준이를 엄하게 다루었던 것도 그런 가정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본인은 "우리 아버지 반대로만 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식들을 엄격하게 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임했던 성동일의 행동은 오히려 아들인 준이와 거리만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 이후 자식교육관이 많이 바뀌었다.[* 당장 초반부를 보면 다른 아빠들도 자식의 몰랐던 모습과 고충 등을 알아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이들과 시간 내고 놀러가는 느낌이 강한 데에 반면 성동일 부자는 정말 초반부 전체가 부자관계 개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당장 준이만 해도 아빠! 어디가? 이전에는 아빠를 무서워하여 경기를 일으킬 수준이었으나, 성동일이 아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서 관계의 회복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바로 감자-김 에피소드. 첫 여행 두번째 날 아침 성동일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으로 먹일 게 감자와 김밖에 없었으나 준이는 맛있게 잘 먹었고, 나중에 여행 다니면서 뭐가 제일 맛있었냐고 묻자 감자와 김이라고 답했는데 그 이유가 '''아빠가 처음으로 차려준 아침밥이어서라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 이후 성동일의 자식들을 대하는 모습이 본격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둘째 빈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을 때도 빈이가 삶기만 한 생면에 소금을 뿌리자 가만히 있으라고 혼을 냈으나, 준이가 동생이 혼이 나는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생면을 먹고 맛있다고 하자 즉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장면만 보면 준이가 정말 애어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