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인귀(대조영) (문단 편집) === 2차 고구려-당 전쟁 === 2차 고구려-당전쟁 무렵에 안시성 전투 당시 태어난 대조영(모종의 이유로 본명이 아닌 개동이라고 불렸다)이 성인이 될 무렵, 설인귀는 다른 장수들에게 밀려 뒷전 신세가 된 상태였다. 당태종 사후 다른 장수들은 천출에다 이민족 출신인 설인귀를 차별하였고, 이에 설인귀는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준 측천무후 편에 섰는데, 다른 장수들은 측천무후를 적대하다보니 설인귀는 더욱 무시당할 수밖에 없던 것. 2차 고구려-당 전쟁 직전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는 5부가 귀족들을 조종하여 연개소문을 암살하고자 했으나, 암살계획이 대조영에게 발각되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연개소문측은 암살의 배후가 설인귀임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결국 설인귀와 홍패를 당나라로 돌려보낸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재침공 했으나, 당나라 군부는 설인귀를 철저히 배제하였고, 휘하의 부하라고는 홍패밖에 없는 설인귀는 영주 쪽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거란부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영주로 떠난다. 이런저런 고난 끝에(고려성으로 가던 대조영이 거란에 잡혔다가 초린을 인질로 잡고 탈출하기도 했다.),설인귀는 영주성을 거란에게 주는 조건 하에 거란군을 지휘하게 되었고, 이 때 이해고와 초린을 부하로 들인다. 당나라 장수들은 거란군을 냄새난다며 무시하고는 보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고는 고구려의 방어선을 우회하여 연남생이 이끄는 고구려군을 매복 공격[* 첫번째 공세에서 연남생은 당나라 군을 방어선 뒤쪽의 골짜기로 유인하여, 당나라군을 박살내었다. 이해고는 방어선을 멀리 우회하여 골짜기로 숨어들었고, 똑같은 전술을 시도하던 연남생은 역으로 거란군의 매복에 걸리고 만다.]하여 몰살을 시키는 등 큰 활약을 하였고, 거란군에 대한 평가는 반대로 뒤집힌다. 이때 대조영측은 당나라군으로 위장하고는 보급선을 교란하였고, [[이세적]]은 설인귀에게 대조영을 잡는 임무를 주었으나, 작전 도중 그만 초린과 이해고가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해고가 초린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대조영에게 작전 계획을 다 불어버리면서, 당나라의 총 공세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이후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쫓겨 도주하던 중, 화가 치밀어오른 설인귀는 연개소문을 향해 활을 한번 쏴봤는데, 화살이 연개소문의 가슴에 꽂힌다(나중에 연개소문은 이 상처가 악화되어 죽는다). 고구려군이 코 앞까지 쫓아오자 [[방효태]]는 혼자 남아서 고구려군을 막아보겠다고 제안했고, 설인귀는 방효태에게 시비를 걸다가 살아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방효태는 결국 대조영에게 처단당했고, 그 사이에 설인귀와 거란군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간신히 돌아오긴 했으나, 문제는 당나라 조정에서 패전의 책임을 설인귀에게 묻고자 했던 것. 거란에 있던 설인귀와 홍패는 장안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거란에게 씌울 수 있었음에도 설인귀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24회) 마지막으로 이적은 패전의 책임을 측천무후와 거란에게 씌운다면 설인귀를 다시 복직시켜 주겠다며 제안을 하지만 설인귀는 끝내 거절하였고, 결국 설인귀와 홍패는 쫓겨나고 만다. 설인귀와 홍패는 모진 고생 끝에 완전 상거지가 되어 간신히 영주에 도착하는데, 설인귀가 거란을 팔아먹기는 커녕 오히려 모든 책임을 자기 혼자 뒤집어 쓴 것에 감동한 이진충은, 설인귀를 끝까지 돕기로 약조한다. 이후 이해고, 초린 일행이 고구려에서 첩자활동을 하는동안, 설인귀는 영주에서 거란군을 조련하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