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악산 (문단 편집) == 자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토왕성 폭포.jpg|width=100%]]}}} || ||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 320m의 3단 폭포로 '''국내 최장의 폭포'''이다.] || 본 문서는 산행과 탐미의 대상으로서 설악산을 소비하는 서술이 주를 이루는데, 설악산은 그 수려한 경관고고학적 아름다움에 더해 생물학적·생태학적·지질학적인 자연고고학적 가치에 있어 보편적 탁월성이 인정되는 소중한 우리의 자연유산이다. 2014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녹색목록(Green list)에 지리산, 오대산과 함께 등재되었다. 설악산은 북방계식물의 남방한계지대이자 남방계식물의 북방한계지대가 되는 지점으로서 중느릅나무, 금강봄맞이, 봉래꼬리풀, 금강초롱꽃 등의 특산물과 난장이붓꽃, 한계령풀, 노랑만병초 등의 주요 희귀식물들이 자생하며 이러한 가치에 주목해 설악산은 1965년 천연보호구역 및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0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82년부터는 국제적으로도 그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국내 최초로 [[http://map.unesco.or.kr/mab/|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 2016년 확장]·관리되고 있다. 2013년에는 [[비룡폭포|비룡폭포 계곡 일원]], [[토왕성 폭포]], [[울산바위]], 설악산 십이선녀탕 일원 등 외설악 5개, 내설악 5개 총 10개 지소가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기 전인 산업화 시대에 우리의 개발의욕이 자연보전에 앞서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설악산 세계유산 등재 실패의 사례이다. 1994년 9월 1일 문화재청은 '설악산천연보호구역(Mt. Soraksan Nature Reserve)'을 세계유산 등재기준 (Ⅶ)[*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과 (Ⅹ)[*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을 충족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세계자연유산]] 후보로서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하였고, 이듬해인 1995년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였다. 곧 세계자연유산으로의 등재로 인한 개발제한으로 경제적 이익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 지역민들이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세계유산 등재 검토 당시부터 속초시 및 속초시의회의 반대의견으로 등재 신청 자체가 보류될 정도였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3965249?sid=103|#]]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 제출 이듬해인 1996년 3월엔 강원도의회가 등재반대를 결의하고, 의회 및 주민 대표들이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의 집행이사회가 열리던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하여 주민들 서명이 포함된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33|#]] 결국 1996년 6월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의 집행이사회 심사 결과 설악산의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좌절되었다. 당시 설악산의 세계유산 등재 실패는 유네스코의 자연유산 등재심사 자문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현지조사 보고서 상 자연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내용과 더불어 지역민들이 지정을 원하지 않고 있음이 크게 작용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265936?sid=103|#]] 당시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 유네스코 측에서는 설악산을 자연유산 후보에서 탈락시켰고, 이후 유네스코 측에서는 '후보지의 지역 주민들이 반대할 경우 해당 자연유산은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다만 등재에 실패했다고 세계유산 후보 지위를 영구적으로 박탈 당하는 것은 아니며 언제든지 재도전할 수 있다. 북한의 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인 '개성역사유적지구' 역시 2008년 제32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등재 범위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등재 반려(deferral) 판정을 받은 후 등재범위 조정과 만월대 남북공동발굴 등으로 내용을 보완해 2013년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037|#]] 당시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33|속초시 등 지자체와 지방의회]] 에서 설악산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한 이유는 '''케이블카 설치 문제''' 때문이다. 외설악 케이블카(설악동-권금성) 설치를 추진 중이었는데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없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결사 반대한 것(...). 그리고 외설악 케이블카 설치는 결국 세계유산 지정에서 탈락한 후 강행됐고, [[2000년]] 이후로는 남설악(오색)케이블카(오색-끝청)와 한계령 케이블카도 추진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설악동 케이블카에 대하여 기술 되어 있는 이 단락의 내용은 완전히 잘못된 내용이다. 외설악 케이블카는 위에서 등재 반대의 주체로 언급 하고 있는 '지자체' 와 '자방의회' 같은 것도 없었고(이때는 '행정구역' 이었고 단체장은 관선이던 시기 이다),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같은 이슈 역시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인 1970년부터 운행되고 있었다.)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 이후 방문객 증가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진 것을 보았을 때, 개발이익만을 보고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한 당시의 시각은 상당히 근시안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보전과 개발의욕의 균형을 맞추는 정책적 신중함과 지역민들의 인식개선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이자 인류의 자연유산인 설악산에 대한 국제적 보호와 지원의 계기가 터무니없이 무산된 사례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설악산 입구의 소공원에는 반달가슴곰 동상이 서 있는데, 1983년 5월22일 마등령에서 총에 맞아 죽은 최후의 반달곰을 기리기 위해 1995년에 설치했다. 세계유산 등재 불발의 선례와 더불어 마등령 반달곰 동상 역시 설악산 초입에 서서 등산객들에게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그로 인한 거스를 수 없는 결과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