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경구 (문단 편집) == 배우로서의 설경구 == 막연히 연출가가 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고 재수 끝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몰래 입학 원서를 냈고,[* 실기 비중이 높은 [[동국대]]나 [[중앙대]]보다 다소 실기 비중이 낮고 당시에는 한양대 연영과는 인문과학대학에 속해 내신의 비중이 컸다. 그래서 큰 문제 없이 지원, 합격이 가능했다.] 감독을 잘 하려면 연기도 해봐야 한다는 선배들의 권유로 우연찮게 연기를 시작해 [[이문식]], [[유오성]], [[전수경]] 등 동문들이 주축이던 극단 한양레퍼토리에 동참하면서 1993년작 연극 《심바새메》로 데뷔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서까지 같은 사람들, 교수님과 함께 하다보니 대학 5학년 같은 느낌이 싫어 극단을 나왔다. 참고로 대학 시절에 [[KBS]] 공채 탤런트에 응시해 3차까지 합격했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린 젊은 연극제 공연작의 연출을 맡아 달라는 교수들의 성화에 시험을 포기했다. 극단을 나온 후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중 극단 학전에 있던 대학 선배에 부탁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니다가 하도 열심히 붙인 나머지, [[김민기(가수)|김민기]]의 눈에 띄게 되면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 되었다.[* 극단 '학전' 시절 무대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일명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나머지 4명은 [[김윤석]],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76&aid=0002510929|관련기사]]] 설경구는 1994년 초연 때부터 1996년까지 80여 가지 역할 가운데 두 역을 제외한 모든 역할을 해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1년에는 공연 1,000회를 기념한 [[독일]] [[베를린]] 무대에 섰다. 영화에 입문한 초기에는 《꽃잎》, 《러브 스토리》,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등의 영화에 단역으로 모습을 비추었지만 본격적으로 주연급의 자리에 오른 것은 2000년작인 《[[박하사탕(영화)|박하사탕]]》이다. 물론 첫 상업 영화 주연작은 아니다. 《박하사탕》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박종원(영화감독)|박종원]] 감독의 《송어》라는 작품이 첫 주연작이나 상업 영화 치고 저예산 작품에 설경구가 원톱 주연이 아닌 데다가[* 3번째 비중이다. 사실상의 주인공은 강수연과 그의 과거 연인 역할의 황인성. 설경구는 강수연의 남편 역할이었다.] 촬영 기간도 로케이션이 90%이상 한 동네라 <박하사탕>에 비해 길지 않은 편이었고 예술 영화에 가까운 상업 영화였다. 이미 한 차례 <박하사탕> 오디션에서 탈락 되었지만 [[이창동]] 감독 부인이 우연히 거실에서 본 오디션 필름에서 설경구를 보고 "김영호 여기 있네"라며 설경구를 추천한 것이 인연으로 캐스팅 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설경구는 《[[해피 엔드(영화)|해피 엔드]]》에서 [[주진모(1974)|주진모]]가 연기한 [[전도연]]의 내연남으로 캐스팅 된 상태였다.《박하사탕》에서 40대에서부터 20대로 거슬러 올라가 점점 순수함을 잃고 타락해가는 남자 김영호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설경구는 "1999년 한국 영화가 발견한 최고의 수확"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그 해 1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극중 등장하는 대사 '''나 다시 돌아갈래!'''는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대사다. 2002년 《[[공공의 적(영화)|공공의 적]]》에서 꼴통 경찰 [[강철중]] 역으로 열연하며 본격적인 스타가 된다. 실감나는 연기와 대사는 보는 이의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오아시스(영화)|오아시스]]》에서는 지적 능력이 덜 발달한 전과 3범의 홍종두역을 맡아서 색다른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광복절 특사#s-2]]》로 개그 장르에도 도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야말로 2002년은 가히 설경구의 해라고 불리울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다시 한 번 무려 10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오죽하면 수상 소감을 말하는 시상식에서 죄송하다고 할 정도로 3년여 동안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강인찬 역을 맡은 2003년작 《[[실미도(영화)|실미도]]》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로소 설경구를 본격적인 "흥행 배우"로 자리잡게끔 만들어줬다. "비겁한 변명입니다!"는 실미도 최고의 명대사/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한일합작 《[[역도산]]》을 촬영할 당시 체중을 30kg 정도 늘리고, [[레슬링]] 기술을 수련 했으며, 바로 다음 영화를 위해서 감량하는 등 연기를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극중 전체 대사의 98%를 차지하는 [[일본어]] 대사 탓에 더빙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자기 목소리로 연기하지 않는 배우는 연기자가 아니다"라는 일념으로 스스로 5개월간 독학을 하며 완벽히 대사를 소화해 낸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다만 《실미도》로 정점을 찍은 후론 점점 흥행에 고배를 마시게 되고 관객들은 점점 그의 작품 선택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과거에 흥행 보증 수표라 불렸지만 이후 조용히 내려앉은 [[한석규]]를 떠올리게 했기에 많은 팬들이 불안해했다. 그러나 2009년에 개봉하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해운대(영화)|해운대]]》에서, 술에 취해 [[사직구장]]의 펜스에 매달려 [[이대호]]에게 눈을 부라리며 [[꼴리건]] 흉내를 내는 등[*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던 이대호가 이 당시 일을 회고하길, 연기라는걸 뻔히 알고 있었는데도 설경구가 너무 실감나게 연기를 해서 '''진짜'''로 화가나서 컷 콜이 나오기 전까지도 분이 안 풀렸다고 한다. 덧붙인 말로는 '''상대 배역의 감정까지 끌어올려주는 명배우'''라고 평가했다.] 명연기를 해내며 다시금 흥행 배우로 등극한다. 2010년 <해결사>, 2012년 《[[타워(영화)|타워]]》, 2013년 《[[감시자들]]》과 《[[소원(영화)|소원]]》, 《[[스파이#s-6.1]]》가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흥행 배우 자리를 공고히 했다. 하지만 《[[나의 독재자]]》,《[[서부전선]]》,《[[루시드 드림(영화)|루시드 드림]]》,《[[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불한당]]》 4편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하며 흥행 면에서 다시 불안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흥행 성공/실패와 별개로 [[연기력]] 자체가 떨어졌다거나 하는 평가를 많이 받는 작품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이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불한당원 신드롬을 만드는 등[[http://news.joins.com/article/21684023|불한당에 푹 빠진 우리는 불한당원]] 팬덤몰이에는 성공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불한당]]》으로 생긴 팬덤에 힘을 입어 《[[살인자의 기억법(영화)|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 후 2주 가까이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손익분기점(220만 관객)을 무난히 넘기면서 흥행에 있어서는 한숨 돌리게 되었다. 이후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에선 실존인물인 [[정약전]] 역으로 분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며 또 한 번의 성과를 거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