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인성렬황후 (문단 편집) == 가계와 일화 == 선세(先世)는 연인(燕人)[* 지금의 [[베이징]] 및 [[허베이성]] 일대]이며 성은 고씨(高氏), 아명은 도도(滔滔)로 증조부는 북송의 대장이자 충무절도사(忠武節度使) 고경(高瓊)으로, 조부는 고계훈(高繼勳)이며, 부친은 고준보(高遵甫)이다. 고준보와 [[자성광헌황후]]의 자매인 조씨(曹氏)[* 선인성렬황후의 어머니 조씨의 집안도 명문가인데, 그녀의 할아버지가 북송의 개국공신 조빈이다.] 사이에서 1032년에 태어났으며 남동생으로는 고사림(高士林), 고사손(高士遜)이 있다. ||고황후의 아들인 신종이 어린 시절 외가를 방문했을때 늘 불만이고 마음아파했던 것은 개국공신이자 오조공신인 외가가 허름하고 가난한 기와집이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신종은 즉위한 뒤, 여러 차례 외할아버지의 집을 크고 멋진 저택으로 지어 주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때마다 고황후가 아들의 의견에 반대하며 이를 막아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신종이 어머니 고황후에게 크게 불만을 터트리자, 고황후는 아들 신종을 크게 혼냈다고 한다. 그녀는 아들에게 외할아버지의 저택을 짓는 것은 개인의 일이며 황제가 사사로운 감정으로 국고에서 이를 추진하면 안 된다고 꾸짓고 부지 선정과 모든 금액은 고황후 본인의 녹봉과 자금으로 부담할테니 국고에서 돈이 나가는 일이 없어야 된다며 더이상 이를 시도하지도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본인의 사재로 부지를 선정하고 땅을 구입하여 도성 외곽에 집을 지어 아버지와 가족들을 모셨다고 한다.|| ||고황후의 남동생인 고사림은 어려서부터 경사에 두루 능통하고 문장 솜씨도 뛰어날 뿐더러 문과 무 모두에 뛰어난 인물로 사람됨도 정직하고 대의가 있어서 주변에서도 이를 인정한 인물이었다. 그는 내전숭반 하급군관을 시작으로 경성기병부대에 수년간 근무해왔는데 평소 고사림의 재주와 능력을 알던 고황후의 남편 영종이 즉위 후 과거 인종이 조씨 일가 사람들의 관직을 올려준 것을 명분삼아 관직을 올려주려했을때, 고황후가 누구보다 이를 막고[* 남편 영종에게 선인성렬황후는 '''"이미 제가 황후의 몸이 되어 저희 가문은 이미 그 덕을 입어 과분합니다. 그래서 저희 친정사람들을 올려주려는 것에는 더욱 신중해야할것입니다. 제 동생 사림은 이미 승진했고 조정에서의 직위도 과분하오니 어찌 더 올려줄 수가 있습니까."'''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영종이 여러번 고사림의 직위를 올리려고 할때도 간절하게 이를 말렸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