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비(민족) (문단 편집) === 언어학 관점 === || [youtube(KIy9JKVNMGc)] || [[전한]](前漢) 또는 신나라 시기의 언어학 《[[방언(양웅)|방언]]》은 [[양웅]](揚雄)이 27년간 조사한 저서였으며, 세계 언어학상 최초의 방언 어휘 조사기록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보빈]] 교수가 제시한 관점에 의하면 선비어는 한국어족과 많은 교류를 하며, 많은 차용어를 주고받았다. 이전 편집본에서는 보빈 교수가 선비어를 부여어로 분류하는 가설을 내놓았다고 설명되었으나 이는 논문을 [[오독]]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 실제 해당 논문의 주장은 선비-거란 계통의 언어에 한국어와 친연성이 있는 외래어가 다수 발견되는데 위치와 시기상 한국어와 연관이 있을 법한 언어는 고구려어(+부여어)밖에 없으므로 선비어와 거란어에는 고구려어에서 들어온 외래어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선비어라 싸잡아서 표기하긴 했지만 더 세밀하게 들어가자면 특히 [[모용부]]가 고구려 및 [[부여]]와 긴밀했는데 먼저 요서에 자리잡고 계속 고구려 및 부여와 투닥거려 왔으며 종국에는 부여를 아예 멸망시키고 왕족을 비롯한 많은 유민들을 끌고갔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끌려가서 활약한 대표적인 왕족이 [[여울(부여)]]이다. 이 때문에 모용어의 경우 고구려어보단 부여어의 영향이 훨씬 컸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탁발부]]의 탁발어의 경우 교류가 있긴 했어도 직접적으로 한국어족 국가들과 인적자원을 크게 교환했을 만한 사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국어족과 그렇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거란어의 경우 모용어와는 반대로 거란족이 아예 고구려의 지배하에 놓였던 적도 있기 때문에 부여어보다는 고구려어의 영향이 지대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선비족은 흉노족의 일파이고 북중국의 선비족의 나라들이 멸망하고 선비족이 만주와 한반도로 유입되었고, 본래 하던것처럼 군사용병적 성격으로 활동을 하고 가장 성공한 집단이 경주김씨와 김해김씨의 선조들이고 이들 역시 한국언어에 선비족의 언어가 섞이게 된 배경이다. 초기 선비족은 돌궐 흉노처럼 투르크와 몽골계의 혼합민족이었다. 한반도 5~6세기 경주김씨들의 지역 고분군에는 북방투르크계 두상의 뼈가 출토되고 그 이후 신라 경주김씨들의 뼈는 현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뀐다. [[유하 얀후넨]]은 선비어를 [[거란어]]와 함께 [[몽골어족]]의 자매 언어군인 [[준몽골어족]]으로 분류하는 가설을 제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