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호(후조) (문단 편집) === 후조의 국권을 장악하다 === 333년에 고조 명황제 [[석륵]]이 병에 걸려 몸져 눕자 석호는 궁궐을 장악하고 석륵의 병상을 통제하여 국권을 장악했다. 7월에 석륵이 붕어하자, 석호는 석륵의 차남 [[석홍]]을 옹립하여 [[꼭두각시]] 황제로 만들고, 실권은 자신이 장악했다. 또한 고조 명제 석륵의 자손들을 죽이거나 [[거세]]하여 [[숙청]]하고, 자신의 아들들을 왕에 책봉하여 권력을 공고히 다졌다. 석호의 전횡에 반발하여 남아 있었던 종실왕들(고조 명제 석륵의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석호가 모두 진압했다. 334년, 겁이 난 황제 석홍은 석호에게 선위할 뜻을 비추었고 처음에는 거절했던 석호는 다시 중신들이 권하자 석홍을 폐위하며 자신은 [[섭정]]의 지위에서 다스릴 것을 천명했다.('''연희정변''') '거섭조천왕'(居攝趙天王)에 올라 후조를 통치하게 된 석호는 [[양국]]과 [[업성]]에 궁궐을 세우고 [[황하]]에 다리를 놓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후조의 국력을 소모시켰으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잔혹한 행동을 자행했다. 그러면서도 석호는 명제 석륵의 치세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불교]]를 깊게 믿어 널리 포교했다. 하지만 폐위된 석홍을 죽임으로써 고조 명제 석륵의 자손들은 모두 죽어 없어졌다. 335년에는 수도를 [[업성|업]]으로 옮겼고, 337년에는 섭정을 그만두며 [[천왕]](天王)에 즉위했다. 석호는 주변의 여러 국가들을 상대로 무리한 원정을 실시하여 영토를 늘리기도 했으나 국력을 크게 소모시켰다. 338년에 [[선비족]] [[단부]]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며 곧바로 [[모용선비|모용부]]의 [[전연]](前燕)을 공격했으나 패배했다. 339년에는 [[동진]](東晉)을 공격하여 [[수춘]]을 비롯하여 [[장강]] 이북을 대부분 점령했다. 340년에 다시 전연을 공격하려고 징병과 물자 징발을 가혹하게 실시하여 백성들이 많이 피폐해졌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한 전연 정벌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342년에는 동진을 공격하려고 다시 가혹한 징병과 징발을 실시했으나 징조가 나쁘다고 하여 그만두었다. 346년부터 서쪽의 [[전량(오호십육국시대)|전량]](前凉)을 공격하여 일부 영토를 점령했으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