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가모니 (문단 편집) == 사상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불교, 문단=2.1)] [[파일:external/www.daibi.vn/P025.jpg]] 그의 사상의 위대함은 역시 '''인류가 혹독한 삶으로 고통받는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데 있다. 그 가르침이 바로 [[불경]]이며, 이는 후대에 그를 따른 수많은 이들에 의해 정립되고 확장되었다.[*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때에는 [[불경]]이 없었으며 [[열반]] 후 [[십대제자|제자들]]에 의해 결집되었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성]], 위엄, 절대의 모습보단, [[십대제자|제자]]에게 [[육신통|신통력]]을 내보이지 말고[* 물질적인 기적이 관련 [[설화]]에 나타난 경우가 아예 없진 않지만, 분량이 적고 그나마 불가피할 상황에만 일어난 수준이며, 오히려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도 [[인과응보]]의 세상 이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발언이 나오기까지 한다.] 수행에 정진하라고 가르치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다. 당시 인도는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사상들이 혼잡하게 있어서 어떤 것이 [[진리]]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석가모니는 많은 질문들을 받았는데 이들 사이의 대화 내용이 결국 불교의 경전이 된다. 대화 내용 중에는 민감한 내용을 직설적으로 물어보거나 석가모니를 테스트하기 위한 질문도 많았다. 석가모니는 일관적으로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설하였다. >붓다가 께사뿟따라는 깔라마들의 성읍(북인도의 조그만 도시)을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이 붓다에게 물었다. >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수행자와 성직자들)이 께사뿟따에 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주장을 설명하고 칭찬합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매도하고 욕하고 업신여기고 경멸합니다. 이런 존경하는 사문들 가운데 누가 진실을 얘기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그들에 대해서 저희들은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럽습니다." >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경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리라고 그 말을 따르지 마십시오. > >스스로 깨닫고 알게 되면 그때에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 >---- > - 깔라마 경 중에서[* 깔라마 경의 내용 중 일부를 축약해놓은 것이다. 실제 내용은 더 길게 설명되어 있으며 석가모니의 대답은 깔라마 경 9번째 게송을 인용한 것이다. [[아함경|중아함경]]의 가람경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으나 석가모니의 답변은 조금 다르다.] 다만 모든 교조주의, 전통, 편협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는 내용이다 보니까, [[맥락을 무시한 인용|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인용]]을 바탕으로 《깔라마 경》은 급진적인 회의주의나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인 진리 창조를 옹호하는데 악용되곤 한다. [[https://en.m.wikipedia.org/wiki/Kesamutti_Sutta|#]] 이에 관하여 미국의 승려 빅쿠 보디(Bhikkhu Bodhi)[* 1944~ . 이 사람은 [[유대인]](!) 출신으로 1973년 스리랑카에서 비구계를 받고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되었다. 2002년부터 미국에 머무르며 저서를 펴내고 있으며, 니까야를 번역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그의 저서로 <아비담마 연구>와 <분노와 논쟁 사회에 던지는 붓다의 말>이 번역되어 있다. [[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374871|#]]]는 "[[https://web.archive.org/web/20051119094429/http://www.accesstoinsight.org/lib/authors/bodhi/bps-essay_09.html|문맥에서 벗어난 단 한 구절의 인용을 근거로, 붓다는 '모든 교리와 신앙을 일축하는 실용적인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렸고, 그의 법은 단순히 자유사상가의 진리에 대한 도구가 되어 각자 자기 멋대로 수용하고 거부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경전 속 교조의 말씀을 지 좋을 대로만 따다 인용하면서 악용하는 건 다른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개독교|개독]]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고, [[이슬람]]에는 [[탈레반]]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있다.] 《깔라마 경》은 진리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깔라마 사람들을 위해 즉각적이고 도덕적이며, 유익하고 본질적인 가치인 '탐진치(貪瞋痴)의 소멸'을 우선 기준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깔라마 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논리와 추론, 사유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그러한 지적 작용들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해당 경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깔라마 경》을 독해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논리적 사고는 요구된다. 바른 법을 '이익과 행복의 획득 수단'으로 정의하고, 이익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탐진치를 소멸해야 하며 따라서 바른 법과 바르지 않은 법을 탐진치의 소멸 여부로 판단하는 《깔라마 경》의 전개 역시 일종의 연역적 추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깔라마 사람들의 삼보에 대한 귀의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건전한 사유에 기초한 믿음에 대해서도 《깔라마 경》은 부정한 바 없다. >차연성(此緣性)[* 연기를 통해 다른 것에 의존한 것]을 알고서 사견(邪見)의 그물인 분별(分別)을 벗어난 사람은, 탐욕, 미움, 우치를 벗어나 [번뇌에] 물들지 않은 열반으로 나아간다. >----- >[[나가르주나]], 《공칠십론》(이지수 번역)[[https://m.search.naver.com/search.naver?sm=mtp_sug.top&where=m&query=%EC%9D%B8%EB%8F%84+%EB%B6%88%EA%B5%90%EC%B2%A0%ED%95%99%EC%9D%98+%EC%9B%90%EC%A0%84%EC%A0%81+%EC%97%B0%EA%B5%AC&acq=%EC%9D%B8%EB%8F%84+%EB%B6%88%EA%B5%90%EC%B2%A0%ED%95%99%EC%9D%98&acr=1&qdt=0#api=%3F_lp_type%3Dcm%26col_prs%3Dcsa%26format%3Dtext%26nqx_theme%3D%257B%2B%2522theme%2522%253A%257B%2522main%2522%253A%257B%2522name%2522%253A%2522book_info%2522%252C%2522os%2522%253A7760985%252C%2522pkid%2522%253A20000%257D%257D%2B%257D%26ptype%3Dchi%26query%3D%25EC%259D%25B8%25EB%258F%2584%2B%25EB%25B6%2588%25EA%25B5%2590%25EC%25B2%25A0%25ED%2595%2599%25EC%259D%2598%2B%25EC%259B%2590%25EC%25A0%2584%25EC%25A0%2581%2B%25EC%2597%25B0%25EA%25B5%25AC%26sm%3Digr_brg%26tab%3Dinfo%26tab_prs%3Dcsa%26where%3Dbridge&_lp_type=cm|#]]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의 탁월한 지성을 적극적으로 중생 교화에 활용하였는데,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가 설한 연기법은 독립된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를 성립시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동시에 제거하기 때문에 "왕(王)과 같은 논리"[rigs pa'i rgyal po]로까지 일컬어진다. 용수(나가르주나)보살이 《공칠십론》에서 밝혔듯이 연기를 통해 '다른 것에 의존한 것(차연성)', 즉 '공성'을 알게 되어 사견(邪見)[* 삿된 견해.]과 그로 인한 탐진치를 소멸할 수 있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의 교설인 연기는《깔라마 경》에서 말하는 '유익한 법'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공성'에 대한 지혜가 성장함에 따라 탐진치와 같은 번뇌도 점진적으로 소멸된다. 티베트 불교의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頓悟)'[* 단박에 깨달음.]에 대한 티베트 불교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소수의 티베트 원전들은 점진적 수행의 구조에 한정되지 않는 갑작스럽거나 즉각적인 접근 방식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마하무드라(Mahāmudrā)를 돈오 수행으로서 명확하게 설명한 까규빠(Kagyupa)의 원전을 읽었다. 사꺄빠(Sakyapa)의 저술들에서는, ‘깨달음과 해탈의 동시성’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고, 닝마빠(Nyingmapa)의 족첸(dzogchen) 수행도 이것에 대해 말한다. 쫑카빠 스님은 동시성과 즉각적인 해탈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쫑카빠는 돈오(단박에 깨달음)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원인이 함께 쌓여진 것의 정점이라고 지적한다. 부처님에게서 사제(四諦)에 대한 가르침을 한 번 들은 직후에 공성을 깨달았던 최초의 다섯 제자들의 경우와, 밀라레빠(Milarepa)가 그 생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 많은 생애 동안에 진지한 수행을 했던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점오를 말하든 돈오를 말하든 간에, 진실한 종교적 발달을 위해서 원인과 조건을 오랫동안 쌓을 필요가 있다." >----- >[[http://naver.me/x35B5hRd|제14대 달라이 라마, 툽텐 최된,《달라이 라마의 불교 강의》(주민황 譯)]][* 겔룩 뿐 아니라 닝마, 까규, 사캬 등 모든 티베트 불교 종파들은 사실상의 점수(漸修) 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교의 경우 삼사부(三士夫) 도차제(道次第)를 강조하는 까담 전승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밀교 역시 온드로(Ngöndro)라고 일컬어지는 기초 수행을 비롯해 생기차제(生起次第), 원만차제(圓滿次第) 등으로 구성된 밀교의 도차제(道次第)를 따른다.] 즉 대승의 수행 과정에서 처음에는 논리적인 추론인 '비량(比量)'을 통해 '공성'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견도(見道)에 이르러 직접적인 지각인 '현량(現量)'으로도 공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수도(修道)에서 명상을 통해 견도에서 직접적으로 지각한 공성에 대해 더욱 익숙해지고, 해탈을 방해하는 '번뇌장(煩惱障)'과 일체법을 깨닫는데 장애가 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모든 번뇌가 소멸된 무학도(無學道)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티베트 불교, version=7239)] 역사학적으로 따져보자면, 석가모니는 그 당시 [[브라만교]]의 [[카스트]]에 반대한 인간 평등을 주장한 지식인에 가깝다. 힌두교는 영원불멸하는 영혼인 '아트만'이 있다고 주장하여 죽은 이후에도 이 영혼은 없어지지 않고 카르마에 따라 윤회한다고 하였는데, 불교는 이러한 '아트만'에 반대하여 '안-아트만', 즉 무아를 주장하였다. 무아는 윤회하는 영혼은 없으니 '나'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어서, 무아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는 윤회에서 벗어난 현세의 깨달음을 중시하게 된다. 이것으로써 불교는 아트만의 윤회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에 반대하고, 현세의 계급에 상관없이 수행을 함으로써 여성이나 천민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삶의 끝없는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