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황 (문단 편집)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대부(大斧)라는 큰 도끼를 전용 무기로 사용한다. [[만총]]과 친구라는 설정이 붙었고 그의 설득에 넘어가 [[조조]]에게 투항하기로 한다. 이때 만총이 서황에게 양봉을 죽이고 난 다음 조조에게 투항하면 조조가 더욱 서황을 믿을 것이라 종용하지만, 서황은 아무리 자기가 투항하는 입장이여도 지금까지 섬겼던 주인을 죽일 수 없다고 화를 내며 만총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이에 만총이 서황의 의리에 감복해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서황이야말로 진정 충의지사라고 감탄하는 장면으로 충의지사라는 이미지를 굳힌다.[* 이것은 이전에 동탁의 부하 이숙이 여포에게 정원을 배신하라고 설득하는 장면과 굉장히 유사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여포는 그 제안에 응하여 정원을 배신하는 것은 물론 직접 죽여서 그 목을 동탁에게 바쳤으나 서황은 배신은 해도 양봉을 죽여서 그 목을 조조에게 바친다는 것은 딱 잘라 거절하여 패륜아 여포와 충의지사 서황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반면 만총은 어째 이숙처럼 주군을 배신하고 죽이라고 종용하는 음험한 인물이 되었다...] 오히려 정사에서 서황은 양봉이 한 번 깨지고 난 다음에 조조에게 귀순했고 이후 양봉에게 투항을 권했다. 일단은 연의에서도 위나라의 1급 장수이긴 하지만 정사에 비하면 군공이 엄청나게 축소되었다. 그저 전투에 참전하면서 이름만 올리는 정도로 위에 언급한 상세한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 연의 기준으로 변변찮은 일기토도 거의 없고 오히려 몇 안 되는 일기토 중 하나는 관우에게 죽은 [[안량]]를 띄워주기 위하여 안량에게 도전했다가 20합 만에 패하는 장면이다. 그래도 등장 초기에 허저와 50합을 싸운 끝에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무력으로만 따지면 조조군 내에서 몇손가락 안에 들기는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첫 등장 시 곽사군의 장수 [[최용]]과 맞붙어 단 한 합에 무찌른 적이 있다. 안량 사후 나온 [[안량]]의 복수를 위해 나온 [[문추]]와 싸운다. 가정본에서는 [[문추]]와 30합을 무승부로 싸우다가 문추의 후속 부대가 도착하자 퇴각한 것으로 적었다. 그런데 모종강본에서는 30합과 무승부는 언급하지 않고, 그냥 싸우다가 문추의 후속 부대가 도착하자 퇴각한 것으로 변경된다. 아마도 서황이 안량과 싸워서 20합에 졌는데, 그 안량의 복수를 위해 나선 문추이기 때문에 안량보다도 강할 것으로 추정되어 문추와 30합을 대등하게 싸웠다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인 듯하다. 그 이후 하북 정벌에서 소소하게 이기는 단기접전이 있긴 한데 그다지 유명한 장수가 없다는 게 함정. 이후 은근히 비슷한 처지인 장합과 세트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후, 도망치는 과정에서 둘이 조운을 막는 장면이 있다. 동관을 지킬 때, 저돌적인 [[조홍]]과는 반대로 꽤나 냉철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초]]와 싸울 때 별동대를 지휘한 것은 나온다. 하지만 [[한중 공방전]]에서는 갑자기 찌질하고 무능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전까지는 양봉을 죽일 수 없다면서 인격자의 모습으로 나오던, 그리고 동관 전투에서도 [[조홍]]에게 옳은 간언을 하던 서황이 갑자기 찌질하고 무능해져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한신]]의 [[배수진]]을 흉내낸답시고 조조가 길잡이로 붙여준 [[왕평]]이 옳은 말로 간언하는 것을 공연히 무시했다가[* 이때 서황은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면 결사적으로 싸워서 이기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훗날 왕평의 다른 상관인 [[마속]] 역시 가정에서 똑같은 드립을 친다.] 패해놓고 찌질하게 왕평만 갈구고, 빡친 왕평이 강 건너가 촉에 항복해버리는 모습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황은 자신의 허물은 가리고 조조에게 왕평이 배신 때리는 바람에 대패했다고 왕평 탓만 해버린다. [[번성 공방전]]에서 서황이 [[관평]]을 일기토로 3~4합 만에 패주시키고 [[관우]]와 일기토를 하게 된다. 서황은 먼저 관우와 과거의 친분을 언급하면서 비행기를 태워줬지만, 갑자기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니 관우를 사로잡는 자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관우는 일기토로 덤빈다. 서황은 관우와 80합을 겨루다가 관우를 패주시킨다. 그나마 서황과 관우의 일기토 부분은 서황의 입으로 관우가 노쇠하였다고 말했고[* 관우가 대형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이는 당시 서로 존중하는 뜻으로 하는 호칭이었고 관우가 서황을 형으로 모셨다는 기록은 없다. 일단 둘 다 출생연도가 불명이지만 관우는 161년생인 유비와 비슷하고 165년생인 장비보다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보면 둘은 (자세히는 몰라도) 비슷한 또래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서황은 195년에 양봉에게 헌제를 모실 것을 제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임관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새파랗게 젊은 장수가 이런 조언을 하긴 힘들다는 것을 보면 이때 이미 어느 정도 실적을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서황은 죽기 전 연도인 226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는데, 만약 유비보다 나이가 많은 150년대생이면 이때 70에 가깝거나 70을 넘긴 고령이었단 얘기가 된다. 즉 (관우의 추정나이와 비슷한) 160년대 초중반생 정도라고 보는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 작가도 관우의 한쪽 팔이 독화살 부상 때문에 힘이 빠졌다는 등, 명백한 패널티를 제시하긴 했으므로 개연성은 어느 정도 있다. 정사처럼 서황이 번성에서 관우를 격파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관우도 서황을 띄워줘서 소설을 읽는 입장에서는 한중 공방전에서는 찌질한 놈이던데 왜 이렇게 강해졌는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연의에서는 [[촉한|촉]]에서 [[위(삼국시대)|위]]로, 또 촉으로 배신한 [[맹달#s-1|맹달]]을 토벌하기 위해 사마의와 동행하지만 맹달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지만 이건 허구에 불과하며 정사에서는 그냥 노환으로 죽었다. [[나관중]]은 [[황충]], [[장료]], [[태사자]]도 비슷하게 죽은 걸로 묘사했는데, 아무래도 장군은 전사해야 제맛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다만 대개 전사한 장수들은 좀 멋있게 죽어서 체면이 서는 반면 서황은 그 이름값에 맞지 않게 맹달이 툭 하고 쏜 눈 먼 화살에 죽어서 멋과는 많이 떨어진 채 죽었다. 자연사에서 전사로 바뀐 케이스 중에 서황은 대단히 질이 낮은 편에 속한다.~~연의는 무패장군을 다패장군으로 만들었다.~~ 정확한 사유는 잘 나오지 않지만 이는 역시 관우를 사로잡는데 활악한 영향이 크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연의에서 관우를 이기거나 죽이거나 생포한 경우 그 결과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서황은 허무한 최후를 맞았고, [[조인]]은 매일 깨지기만 하기 일쑤이며, [[여몽]]은 일곱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죽고, [[주연(삼국지)|주연]]은 수명이 20년이나 앞당겨졌다.[* 게다가 이것은 주연에 대한 페널티이기만 한게 아니라 '''주연이 활약한 오나라의 승전이 전부 삭제되는 오나라 자체의 페널티로 이어진다.'''] [[이이(삼국지)|이이]], [[사정(삼국지)|사정]], [[반장(삼국지)|반장]]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육손]]같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인물도 있지만, 결과가 안 좋은 인물들이 훨씬 많다. 모종강은 번성 전투에서의 서황을 합비 전투에서의 장료와 비교하며 그의 군재를 높게 평가하였으나 장료는 관우가 위급할 때 도와주었고 서황은 오히려 관우를 핍박해서 위기로 몰아넣었다며 서황의 인성을 깠다. 그리고 서황의 허무한 죽음에 대하여도 관평의 복수라며 고인드립을 날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