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해갑문 (문단 편집) === 문제점 === >'''서해갑문은 [[한강]] 하구를 갑문으로 막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 >[[주성하]]. [[2023년]] 5월 19일 [[자유아시아방송]] '[주성하의 서울살이] 김정은이 학습해야 할 선대의 실패들' 중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life-05192023094423.html|#]] 서해갑문에 대한 구상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있었고, 북한 당국은 소련에게 교역 차원에서 현물을 가져다 주고 설계와 시공 기술을 받아오려고 했다. 그리하여 소련 건설당국의 기술자들을 불러와서 건설 예정지와 대동강 일대를 둘러보게 했는데, 소련은 ''''이거 지어봤자 장기적으로 보면 여러 측면에서 손해가 크다. 안 하느니 못하다.''''는 결론을 내고 설계를 거부했다. 실제 1970년대의 소련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 [[처녀지 개간 운동]] 같은 무리한 자연 개발 사업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대규모 사업에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했고, 건설 강행 이후 벌어진 일들을 보면 당시 소련 기술진들의 결론이 맞았다. 그런데 [[김정일]]이 이걸 '소련이 건설 기술 노출을 우려해서 안 해주는 거'라고 곡해했고, [[김일성]]에게 그대로 보고하면서 김일성이 건설 강행으로 심중을 굳혀버리고 말았다.[* 북한은 이것을 두고 강대국 '소련'도 포기한 걸 자신들이 주체적으로 끝냈다는 식으로 홍보한다.] [[1981년]] 5월 4일에 착공할 당시 김일성은 공사비로 40억 달러[* 이를 건설 당시인 80년대 초중반 기준으로 놓고 2023년 환율로 환산하면 약 '''120억 달러''', 대략적으로 '''14조 4천억 원'''이나 된다!]를 투입하고 4~5개 군단 규모의 [[조선인민군 육군]] 군인(20만 명)과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동원해 이 갑문을 3년여 기간 내에(1984년) 완공시키자고 했지만 방대한 규모와 기술력 부족, 극히 나쁜 작업조건 때문에 완공시한을 2차례 연기해나가다가 계획보다 2년이나 넘긴 [[1986년]] 6월 24일에야 완공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북한의 심각한 재정난과 자재난이 공사기간을 엿가락처럼 늘려버린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그나마도 엄청난 부실공사로 나타나 방파제에서 틈이 벌어지고 물이 새어들어오고 갑문이 망가지면서 육군 1개 건설사단이 보수를 위해 상시 대기 중이라고 한다.[* 한국어 위키피디아를 비롯하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78620&cid=40942&categoryId=32349|두산백과]],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207/nd2002070170.html|신동아]] 등 여러 언론/사전지에서 이 설을 채택하는 바 신빙성이 강한 주장으로 보인다. 다만, 학술지 차원의 증거는 없다.] 여하튼 '북한 정권수립 이후 최대의 대토목공사'라고 불린 서해갑문은 이래저래 효과는 있었지만 갑문 일대는 그 대가로 상당한 기후변화를 겪었다. 수자원 확보에 비하면 안개가 늘어난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쳐도, 문제는 남포항의 기능 확대와 함께 찾아온 기능 악화다. 남포 앞바다는 본래 겨울에 유빙이 떠다니는 정도였을 뿐 바다가 완전히 얼지는 않았는데, 서해갑문 건설 이후 물 흐름이 정체되어 매년 80일가량 바다가 결빙되었다. 나라서 이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쇄빙선이 필요해졌다. 어업생산량은 물론 농업생산량도 이전보다 떨어졌다. 또 다른 문제로 [[숭어]]가 있었다. 숭어가 바닷물고기긴 하지만 강 하구의 기수역에 많이 사는데, 산란기가 되면 먼 바다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그란데 갑문 때문에 물길이 막히자 대동강의 숭어 어획량이 급감해버렸다. 1993년 1월 15일, [[김일성]]은 평양의 [[숭엇국]] 식당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서기였던 [[전하철]]에게 밥을 먹고 오라고 시켰다. 전사철이 식당에 들어가 숭어국을 주문했더니 명태국이 나왔다. 전하철이 옆에서 밥을 먹던 그 식당 단골에게 이 집은 왜 숭어국을 달랬는데 명태국을 주냐고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숭어가 있어야 [[숭어국]]을 끓이는데 없으니까 명태로 끓였고, 두부국이나 돼지고기국이 나올 때도 있다고 대답해주었다. 이 보고를 듣고 김일성은 그럴 줄 알았다고 한탄하면서 경제일군들을 소집하여 긴급협의회를 열어 물고기길 건설을 지시하였다. 남포항이 일반항구에서 갑문항이 되면서 생긴 제약도 작지 않았다. 갑문항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통과능력에 제약이 생기는데, 여기에 갑문에 육상교통로 기능이 덧붙여지면서 선박의 통과 가능 시간까지 반으로 뚝 떨어져버렸기 때문.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별도의 교량을 복층으로 건설하든가 해야겠지만, 지금 북한의 능력으로는 그저 언감생심이다. 이렇듯 얼마나 큰 뻘짓이었는지 [[대한민국|남한]] [[특수부대]]가 대동강을 타고 [[평양시]]로 침투할까봐 지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덤으로 서해갑문건설에 참여했던 건축기사 출신 김호철(가명)의 말에 따르면 "시공될 때부터 발전소 설계도도 함께 준비됐으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5년 안에 완공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맞춰 완공을 서두르면서 발전소건설 계획이 백지화됐다." 하고 밝혔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와서 "발전(發電)도 하느냐" 하고 물으면 북한 안내원들은 "그렇다."라고 대답하도록 교육받는다고 한다. 다만 이는 20년도 더 전인 2002년 시점 기사라 2023년 현재에도 이와 같이 선전할지는 불명.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2/05/26/2002052670171.html|#]] 결국 통일이 된다면 서해갑문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면서 해체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물론 교량 기능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곧바로 해체하기보다는 대체교량이 건설될 때까지는 일단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동강에 [[하굿둑]]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서해갑문이 하굿둑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할지도 모른다.] 항구 건설과 운영유지에 도가 튼 한국의 입장에서 이 항구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볼 때, 제한이 큰 갑문으로 하구항의 기능을 억지로 강화시키기보다는 해안가에 거대한 외항을 건설하고 해저를 준설해 해결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서해안의 전통적 하구항인 군산, 목포가 모두 이런 방식을 썼다. 하구항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서해에 위치한 인천항은 대형선박의 접안을 위해 외항으로도 모자라 간척지 끝에 [[인천신항]]을 건설했다.] 남포와 황해도 북부 사이의 교통은 차라리 교량으로 해결하는 것이 몇 배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남포항 바로 건너편은 은천군인데 현재 대한민국 법령상 국도 8호선과 51호선은 은천군 선창리에서 남포항으로 넘어가도록 지정되었다. 남포-은천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면 당연히 현 은천지역과 및 재령에서 은천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안악이 엄청난 수혜를 보는 반면 서해갑문을 통해 남포와 황해남도의 유일한 연결통로 역할을 하던 은률은 엄청난 쪽박을 찰 가능성이 높다.] "공연한 제사 지내고 어물값에 졸린다." 하는 속담의 국가적 사레인 서해갑문을 가리켜 북한 정권은 '대기념비적 창조물'을 넘어 '20세기의 기적' '공업이 발전되였다고 하는 나라들에서도 반세기, 아니 몇 세기에 걸쳐 건설하여야 할 세계 굴지의 건축물'이라고 [[자화자찬]]한다. 당연히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에서 [[인천대교]]를 보고는 하나같이 이 '몇세기에 걸쳐 건설하여야 할 건축물'이 '''인천대교와 비교하는 것조차 민망하다'''고 비판한다.[* 참고로 인천대교 길이는 서해갑문의 '''3배 가량'''(21.38 km)이나 되니 탈북자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더구나 인천대교는 서해갑문보다도 짧은 4년 4개월 만에 완공되었으며, 건설비도 최대한으로 잡아야 25억 달러,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대략적으로 3조 2500억여 원이다.] 애초에 남한은 인천대교는 물론이고 '''OECD 최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넘어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피사의 사탑의 10배 기울기'''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같은 외국의 랜드마크들도 건설했을 정도로 건축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입증된 나라고,[* 물론 북한에서는 '미제의 착취로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가 실제로는 서해갑문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건축물들을 우후죽순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꽁꽁 숨긴다. 더욱이 롯데월드타워 완공 무렵에 롯데월드타워 건설 과정에 대한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를 유포해 남한에서 조롱거리가 된 [[우리민족끼리]]도 '[[인터넷]]을 이용하는' '''대외''' 선전매체라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롯데월드타워가 건설된 것조차 모른다. 참고로 여기서 '인터넷을 이용하는'이란 말을 굳이 넣은 이유는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0년]]에는 서해갑문보다 훨씬 적은 2조 9490억 원을 들여 길이가 서해갑문의 '''4배를 넘는'''(33.9 km) [[새만금 방조제]]를 건설해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으니,[* 더구나 새만금 방조제 위에도 [[새만금로|4차선 도로]]가 부설되었다. 새만금방조제도 환경 파괴 등으로 논란이 있긴 하나 적어도 건설하느라 나라 경제 자체를 거덜내지는 않았다.] 서해갑문에는 성능은 물론이고 규모 면에서도 북한이 외부에 자랑할 만한 점이 하나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