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 (문단 편집) === 여담 === 외가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한다. [[MBC]] 인간시대에서 다룬 서태지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서태지의 외증조부가 조선시대 말기 고종 황제를 보필했던 육군 대장이었다고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t03rn1CfnY0|링크]]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뒤로는 독립 운동을 했다는데, 전처였던 [[이지아]]가 [[친일파]]의 후손이었던 탓에 어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결별을 '[[독립운동가|독립 투사]]의 후예와 [[친일파]] 후예의 이별'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뤘다고도 한다.[[http://blog.naver.com/gagarock/220222374989|#]] * 반면 친가 선조에 친일파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서태지의 셋째 할아버지인 정희석이 해방 전에 소속되었던 경성후생실내악단이 조선총독부 산하 기관이라는 이유로 그런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2008년에 친일인명사전 명단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89220&PAGE_CD=S0200|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검색해 보면 이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 이는 친일의 기준이 지속성, 반복성, 자발성인데, 정희석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희석은 연세대 음대 학장을 지냈으며 국내에서 오케스트라를 맨 처음 만든 음악가로, 1944년에 재편성된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의 이사장 [[현제명]](玄濟明) 아래 김원복·윤기선·이흥렬·이규용·나운영·정영재·김영애·이종태 이상의 단원과 함께 활동하였다. 만약 자발성이 있는 친일이었다면, 비밀리에 항일 운동을 펼쳤던 절친 [[김순남]]을 일제에 고발하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오히려 해방 이후에 김순남과 함께 활동하였다. 당시, 정희석은 20대였는데, 저 당시에 20대였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니었으므로, 자발적으로 이러한 단체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 물론 [[민족문제연구소]]의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일각에서는 있지만, [[친일몰이|인터넷상에 나도는 친일파 명단의 신뢰성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분이 [[김수환]] 추기경. 이분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강제징집이었고, 단순히 일본과 관련된 기관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친일파라면 대한민국에 남아나실 어르신들이 없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작성한 명단은 무려 수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올라 있어, 일각에서는 친일의 기준을 너무 넓게 잡았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명단을 확대했으면 확대했지, 좀처럼 축소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 서태지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최연소 운전면허 취득자라고 한다. 서태지는 '빨리 면허 따고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당시 긴머리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긴머리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어른들의 한마디가 불편해서 빨리 자동차를 몰고 싶었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당시 서태지는 필기와 실기를 먼저 통과한 후 도로주행 시험을 1990년 자신의 생일, 즉 2월 21일 아침 첫 시험자로 미리 예약했다. 그리고 한 번에 통과해서 서태지는 만 18세가 되는 생일 아침에 운전면허에 최종합격하였다.[* 출처 [[http://www.seotaiji-archive.com/xe/magazine/202624|서태지 아카이브]]] ----- 영화 가필드에 출연하였다.[[http://www.thinkofme.kr/tc/134|#]] ----- 몽골의 힙합 그룹 루미노가 서태지 아이들의 컴백홈과 원타임의 쾌지나 칭칭나네를 섞어 요상한 곡을 만들어 냈다 [[https://youtu.be/OdIrxdrQFmA|듣기]] 서태지는 이후 사후 승인을 해줬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0173273|관련기사]] ----- 2008년 [[GM대우 토스카]]광고를 찍어 컴백 전에 소소한 이슈를 끌고 다녔다. 그런데 2015년 초에 있었던 9집 마무리공연에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배우 [[박상민]]이 타는 차종과 동일한 모델이다.]를 끌고와 토스카는 그새 팔아 치운 거냐는 의견이 많았으나,[[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3210610&cpage=1&mbsW=&select=&opt=&keyword=|아직까지 잘 타고 다닌다고 한다.]][* 참고로 2대 중 한 대는 '''서태지가 08년 ETPFEST에서 관객 경품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일단 나름 차덕후답게 다양한 차를 소유하고 알려져있지만, 많은 매니아들에게 익숙한 것은 6집과 7집 당시에 타고 다녔던 에쿠서라 불리는 [[현대 에쿠스]]다. 물론, 토서카로 알려진 토스카를 소유한 뒤에 에쿠서의 행방은 묘연하다. 평창동 자택 혹은 서태지컴퍼니 건물 주차장에 있겠으려니 하고 추측만 무성하다.] ----- 19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드라마)|수사반장]] 중 한 [[에피소드]]에 ''' '서태지'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연기한 사람은 [[박영규(배우)|박영규]]이며, 겁탈을 당한 [[부인]]의 원수를 갚는 내용이다. [[http://cue.imbc.com/MediaListSearch.aspx?query=%EC%88%98%EC%82%AC%EB%B0%98%EC%9E%A5&sort=sim&startNum=16|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가수 [[원미연]]의 3집 수록곡인 '[[http://www.youtube.com/watch?v=XStrFtHMrFA|그대 내 곁으로]]'는 서태지에게 받은 노래다. 2014년에 소격동을 부른 아이유와 더불어 서태지가 곡을 준 단 둘뿐인 여자가수. 다만 아이유는 일종의 콜라보레이션이었으니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다. 다만 원미연은 생각만큼 그 노래가 히트하지 못해 서태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데 반 농담삼아서 자기가 무리하게 랩까지 소화해서 잘 안 된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당시에는 방송여건상 랩도 본인이 직접 전부 불러야 했었다고 한다. ----- 가수 허니의 'X라는 아이'라는 곡이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전 극비리에 작곡한 곡이란 이야기가 있으나, 전혀 아니다. 원래 따로 작곡된 노래에 서태지가 약간의 조언과 가이드용 랩 데모 8마디만 만든 것.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서태지의 음성이 실린 버젼은 이 데모 테이프에서 유출된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UzH5ZGSh81k|#]] 허니의 기획사 직원들이 서태지와 아이들 매니저였던 최진열을 비롯해 전부 서태지와 연관된 사람들이어서 극비리에 도와줬다고 한다. -----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할 때, 그의 매니저가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당시로서는 일반인은 홍콩 영화에서나 보던 수백만 원대의 비싼 초창기 휴대폰을 직업상 사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게 된 서태지가 호기심에 그게 얼마냐고 물었다. 특별히 자신에게 말을 먼저 걸거나, 뭔가 일 외적으로 다른 일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던 서태지의 이례적인 행동에 장난기가 발동한 매니저는 서태지에게 "야, 이거 만 원도 넘어. 살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말없이 웃던 서태지는 일주일 뒤 그 다음 번 매니저와 함께 차에 타게 되자 매니저에게 진짜로 만 원을 주면서, "그거는 나 주고 형은 이걸로 새 거 하나 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2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상물정에 어둡고 악기 구매할 때 물건 값 흥정도 못 해서 항상 다른 사람이 나서서 해야했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시의 수익을 분배할 때에도 액수를 묻지도 않은 채 항상 "부모님에게 보내 달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돈도 거의 가지고 다니지 않아 별명이 서크루지였다. *[[KBS]]의 토크쇼인 [[해피투게더(KBS)|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가장 친한 지인으로 알려진 락커 [[김종서(가수)|김종서]]도 함께 출연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치약을 쓸 때 치약을 돌돌 말아 쓰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치약의 속을 열어서 잔여 분량까지 모조리 쓸 정도로 검소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인들에게 쏠 때는 확실히 쏜다고 하며 김종서, 그리고 매니저와 함께 [[인도]] 여행을 갔을 때 일행들이 지갑을 아예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여행 경비를 일체 본인이 부담하였다고 한다. 또 서태지 본인이 말하길 40대에 접어든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세금은 어떻게 내는지, 계좌 이체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전혀 몰라서 재산에 관련된 일은 늘 아버지께 맡겼었다고 한다. 맡겨놓고 있다가 필요하면 카드 받아서 쓰는 식으로 경제 활동을 해왔다고. 근래에 들어와서야 인터넷 뱅킹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 <컴백홈>을 패러디한 <컴배콤>이란 곡이 있었다. 음치가수 컨셉으로 데뷔한 개그맨 [[이재수(가수)|이재수]]의 작품이었는데, 서태지가 음악 저작권 협회를 탈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태지는 이재수의 음반을 내 준 라인음향을 상대로 고소했다. 고소 사유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코믹한 컨셉으로 패러디한 것 때문이 아니라, 원작자의 동의 없는 발매. 즉 저작권 침해 문제 때문이지만 '''서태지에 대한 오마쥬'''라는 라인음향의 주장이 어그로를 끈 탓도 있다.[* 여담으로 라인음향은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밴드인 [[더 이스트 라이트]]를 상대로 갑질을 한 그 기획사가 맞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동일 회사이다.] ----- 서태지는 리메이크곡이 없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음악을 팬들과 자신만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혔다. 가끔 [[YG엔터테인먼트]]나 [[서태지컴퍼니]] 소속 가수들이 라이브나 방송에서 서태지의 곡을 리메이크하다가, 최초의 레코딩 버전 리메이크로 [[BIGBANG|빅뱅]]이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의 '필승'을 빌렸다. 후에 [[응답하라 1994]] OST에서 리메이크가 성사되어 성시경이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의 '''너에게'''를 불렀다. 발라드곡을 발라드 가수가 부른 격. 성시경은 내레이션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2016년 4월에 [[우리동네 음악대장]]이 [[복면가왕]]에서 '''하여가'''를 리메이크 해서 불렀는데 이 역시 정말 이례적으로 리메이크를 허락받았기에 성사되었다. 9집 이후에는 리메이크 앨범이 따로 나오거나 한 방송을 통째로 서태지 리메이크로 채우는 등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다만 서태지가 그 동안 리메이크에 유독 엄격했던 것은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서태지는 상술했다시피 [[서태지 이재수 고소사건]]으로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하고 무단으로 상업적 활동까지 한 저작권 피해를 겪었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창작물의 저작권은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서도 돈은 돈대로 징수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실망해 탈퇴까지 했다. 심지어 서태지가 음저협에서 탈퇴한 이후에도 음저협은 저작권료를 챙기는 양아치짓을 벌이다가 서태지측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결과는 12년간의 소송 끝에 서태지측의 승소로 끝났다. 이렇듯 한국에서 대중 문화의 2차 창작이나 그에 따른 상업적 활동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잡기도 전인 2000년대 초에 리메이크에 엮인 사건에 워낙 크게, 그것도 일찍 데였다 보니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개인이나 소규모 록밴드가 자신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유튜브에 올리거나 소규모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것 등 작은 규모는 눈 감아준다. ----- 스튜디오에서 보드 장갑에 보드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등으로 우리 나라에 생소하던 스노보더의 복장과 문화를 소개하여 스키장에서 마이너였던 보더들이 스키를 누르고 대세로 올라게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심지어 스노보드 종목인 프리스타일이란 이름의 곡도 있다. 세계적인 스노보드의 유행이 서태지가 등장한 때와 겹친 영향이 더 크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도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실제로 서태지와 함께 시나위에 있던 김종서, 이주노[* 이주노의 소속가수 영턱스 클럽의 멤버 송진아는 심지어 이주노의 영향 때문에 스노우 보드에 빠져 나중에 가수 때려치고 스노우보드 선수가 되었음.]는 우리 나라 스노보드와 스케이트보드 쪽에서 거의 1세대다. ----- 노래 가사에서 알 수 없는 가사[* 잘 안 들리든지, 아니면 분명히 가사는 가산데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다.]가 많이 나온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그래도 몬더그린 수준이었지만 솔로 데뷔 이후에는 음악 스타일 자체가 연주의 비중을 보컬과 비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잘 안들리는 경향도 더 강해졌다. 가사를 외우거나 가사집을 보지 않고 그냥 노래만 들으면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 정도. 그래서 한때 팬들에겐 그런 구절들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해석하는 것도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좀 많은데, 2집의 죽음의 늪 후렴구 가사 중 '피하지 않겠어' 뒤에 나오는 가사나,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그걸로 족해 족해'이후 가사집에 적혀있지 않은 목소리[* 팬들과 방송, 그리고 음악 사이트에선 '내 사투로 내가 늘어 놓을래'로 단정지었다.], 마찬가지로 3집 수록곡 널 지우려 해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부르는 정체 불명의 노래, 6집 인터넷 전쟁에서의 후렴구의 코러스로 들어가는 [[스크리밍]] 등, 심지어는 5집의 Take 3처럼, 가사집을 보지 않으면 '''가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곡'''까지 있다. 게다가 Take 1의 경우 15년 일겅 남탕 콘서트에서 의미 불명 가사[* '''티라키소리모올라키솔졉'''이라 들린다.] 에 관한 팬의 질문에 서태지 본인이 직접 답을 했는데 원래 우리 말로 녹음을 하였으나 외계어로 바꿔서 불렀다고 한다. 여기에 대한 의미는 자신만이 알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안 알려줄 거라고 한다.[* 다만 5집 [[Seo Tai Ji]] 앨범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특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당시에 만든 앨범이었기 때문. 그 때문인지, Take 5를 자주 셋리스트에 올리기는 하나, 나머지 곡들을 셋리스트에 잘 안올리려고 하고 특히 Take 3는 Quiet night 투어에서야 첫 라이브가 나왔고, 방송 등에서도 5집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한다. 게다가 실제 5집 전후 상황은 [[이지아]]와 관련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것이 맞다고 볼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내용을 암호같은 느낌으로 적절히 표현해 가사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아무리 매니아들이 Take 1에서 외계어로 바꾼 가사의 원 가사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서태지는 트로트곡을 만들어 부른적이 있다. 전체 부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1집 때 방송 프로그램이나 콘서트에서 한, 두 소절 부른적이 있으며 1.5집 에서도 Rock & Roll Dance 마지막 부분에서 서태지가 해당 노래를 부른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로워[br]그대가 없으면 나는 외롭지지지[br]지금부터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할 거야~[* 마지막 줄은 3집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추가로 불렀다. "야으야으" 에 가깝게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면서 끝낸다.]''' 이렇게 그는 트로트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 서태지와 아이들 4집 1번트랙 Yo! Taiji! 에서 뽕기 충만한 트로트락을 선보이기도 했다. ----- 데뷔 초기부터 위천공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회식이나 술자리에선 술은 그냥 혓바닥에 할짝거리는 정도로 그쳐야 했다고. 공개적인 행사에서 샴페인을 마실 때도 샴페인 거품을 앞니로 깨물기만 하고 마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어려운 자리에서도 체면을 생각해서 술잔을 입에 대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했는데도 절대로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 것 보면 위가 안 좋아서라기보다 술에 취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걸로 보인다.] 너무 힘들 때는 한 끼 식사를 우유로 때워야 했다고 한다. ----- 병역에 관해서는 여러 말들이 많은데, 94년말 연예인 병역 비리를 내사한 경찰의 중간 발표에 따르면 '서태지는 성격장애로 면제, 이주노는 피부과이상(문신)과 정신장애로 면제, 양현석은 병명미상으로 의병제대'를 한 의혹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121300289123009&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4-12-13&officeId=00028&pageNo=23&printNo=2093&publishType=00010|링크]]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달 후에 무혐의로 내사를 종결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5011500289118006&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01-15&officeId=00028&pageNo=18&printNo=2123&publishType=00010|링크]] * 이 말은 후술할 모 [[강창성|국회의원]]이 '''정치인 자녀'''와 연예인의 군면제 비율이 높은 게 수상하다면서, 거짓 병명을 대고 병역을 기피한 게 아니냔 의혹을 제기하여 경찰이 부랴부랴 수사를 했으나 '''병역을 기피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 무혐의로 내사 종결'''을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련의 보도의 핵심 내용은 성격이상이 확인됐다는 게 아니라, 고의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병역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 당시 서태지는 병역비리를 단정한 보도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것까지 고려했으나 흐지부지되었다.[* 폐간된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 호 또는 3월호에서 담당 기자가 언급했다.]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다만, 무혐의란 것만 알려지고, 제시된 병명이 실제로 확인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어서 이를 두고 여러 말이 오가고 있다. * 일단 서태지는 성격장애를 시인한 적이 없으며, 인터뷰나 소속사 보도 자료를 통해 고교 중퇴 학력과 위장병으로 면제되었다고 밝혔다. 2003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서태지컴퍼니측에서 단호하게 성격장애는 어불성설이라 말한 것이 확인된다. [[https://www.donga.com/news/Entertainment/article/all/20031124/8004121/9|링크]][[https://www.seotaiji-archive.com/xe/?mid=web&m=1&page=13&document_srl=287482&sort_index=extra_vars3&order_type=asc|링크 2]] 실제로 90년대 초반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대기를 타다가 보충역(5급) 판정을 받는 사례가 있었다. * 이런 논란이 있으면 진단서가 공개되지만, 저 당시에는 병무청 자료 보관부터가 허접해서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수사 상황을 보도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21300329122006&editNo=20&printCount=1&publishDate=1994-12-13&officeId=00032&pageNo=22&printNo=15282&publishType=00010|기사]]만 봐도, 컴퓨터에 입력한 자료가 없어 병무청이 난색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병무청에 보관된 징병 관련 서류의 보관연한이 겨우 3년이라 자료 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경찰이 끈질기게 수사 협조를 요청하자 마지못해 협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도 경찰 수사가 '''변죽만 울리다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탓에 같은 시기에 나온 보도라 하더라도 매체에 따라 면제 사유가 다르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심지어 어느 연예인의 경우, 자신이 그런 이유로 면제되었는지 몰랐다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약 4년 후 수사 당시 상황을 회고한 1998년 6월 29일자 국민일보 이경희 기자에 따르면, "가수 서태지가 만성위염으로, 탤런트 배용준이 약시로, 영화배우 박상민이 교통사고에 의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면제대상자로 인정됐다."라고 언급했으며, 1994년 당시 수사는 '''사전조사 불충분과 특혜와는 거리가 먼 대상자를 문제삼는 바람에 유야무야됐다'''고 설명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80629000002604|기사]] 어느 기사가 맞는지는 각자 판단하도록 하자. * 항간에는 머리를 기르고 신검을 받아 성격장애 판정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지만, 이는 1970년대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면제율이 높은 것을 그 다음 세대들이 오해하여 나온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 군 입대 정원은 청년 인구수와는 무관하게 60만 명으로 항상 정해져 있었고, 이들이 20대였던 90년대 초에는 지금 기준대로라면 현역을 가야 할 사람들이 [[방위병]]으로 전출되거나 그것도 넘쳐나면 군면제 받는일도 흔했다.[* 사실 이게 정상이다. 지금 한국의 청년 인구수는 대폭 줄었음에도 여전히 과거 병력 수준을 똑같이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로 신체 및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까지 현역, 아무리 못해도 공익으로 전부 끌고가려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징병제가 유지되는 국가중에서 한국만큼 기를 쓰고 전부 끌고가려는 혹독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국가도 드물다.] 90년대 초 방위 유머가 유행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청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7227&yy=2007#axzz3anXLYO8L|자료]]에서도 1972년 출생자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많다고 나와 있다. 소위 '[[평발]]이라 면제됐다.', '[[시력]]이 너무 안좋아서 방위됐다.'가 현실이었다. 여기에 더해 서태지 본인이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5급 판정 사유는 그냥 위장질환 수준이 아니라 '''위천공'''이다. 즉, '''위에 구멍이 난 것'''이다. 실제로도 집안의 가족력이며 6촌 형인 [[신해철]] 역시 이 질병을 앓다가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사건|의료사고로 사망했다.]] * 2020년대에 들어서는 이해가 안 갈 일이지만, 1990년대까지는 청년인구의 비율이 높았던데다가 복무기간도 2020년대 비하면 길었던 시절이라 신체적, 정신적인 조건을 까다롭게 따져서 군대를 내보냈기에 2020년대 기준으로는 2급이나 3급 판정을 받을만한 사람도 당시에는 [[방위병]]이나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으로 선발되는것이 일반적이었고, "서류면제"라고 해서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면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인이 아님에도 [[근시]]라서 면제된 [[고승덕|경우]]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학력 미달이나 빈곤, 삼대 독자에 해당되는 사람이 면제가 되었다면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고, 외아들이라도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6개월만 방위복무하는 경우도 엄연히 존재했기에 세부적인 면제 사유는 신경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이유로 19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범 베이비붐 시대 출생자들은 병역 비리 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5급 판정이라고 해서 신체나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저 당시 5급이면 지금은 3~4급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게다가, 청년 인구가 감소한 2020년대에도, 과거 방위에 해당되는 [[사회복무요원]]이 대기를 하다가 면제 판정을 받는 일이 간혹 있다. 2018년 12월에 나온 이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63194&plink=ORI&cooper=NAVER|기사]]에 따르면, 병무청 신체검사 4급 보충역 등급을 받고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기다리는 청년은 기사 작성 당시 시점으로 '''5만 8천 명'''인데, 지방자치단체, 소방서, 경찰서 등 공공기관이 내년에 소집할 사회복무요원은 '''3만 5천 명'''에 불과해 어쩔 수 없이 '''[[복불복|2만 3천 명은 2019년도에 소집되지 못하고 자동 면제]]'''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역 가기엔 애매한 사람들을 예전에는 방위로 돌렸는데, 방위도 수요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남아도는 사람들이 면제가 되었던 것이다. * 그래서 당시 [[http://www.sunjooschool.com/sunjoo_article/345|기사]][* 기자 본인의 기사를 갈무리한 블로그이다.]에도 저학력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라며 병역 기피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 당시 병역 비리 수사는 당시 민주당 소속이었던 [[강창성]]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연예인과 정치인 자녀의 면제 비율이 너무 높다고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412140020912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4-12-14&officeId=00020&pageNo=21&printNo=22712&publishType=00010|지적]]한 것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앞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미 보관 연한을 넘겨 자료가 폐기된 상황에서 80년대 자료까지 부랴부랴 찾는 소동이 빚어진 게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여러 연예인들이 마녀사냥을 당했다. 심지어 [[방위]]로 복무한 연예인이나 불우한 가정사로 면제된 연예인까지 싸잡혀서 소환되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410150032912200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4-10-15&officeId=00032&pageNo=22&printNo=15227&publishType=00010|이 기사]]에서 [[강창성]] 의원이 언급한 탤런트 손 모씨는 누가 봐도 [[손지창|이 분]]이다. [[손지창|이 분]] 문서에도 나오듯이, 당시 법으로 사생아는 자원입대조차 불가능했다. 군 출신이라는 [[강창성]] 의원이 사생아의 병역면제를 문제 삼은 것이다(...) * 그런데, 정작 [[강창성]] 의원 본인의 [[내로남불|아들도 저 당시에 병역 면제를 받았다.]]이는 [[김대업]]의 폭로로 불거진 이회창 아들 병역 비리 논란을 계기로 밝혀진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87031|사실]]로, 강창성 의원 아들의 면제 사유 또한 이회창 아들과 동일하게 체중미달이었다. 게다가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김대업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704125|조작]]을 한 것으로 드러나 이회창 아들의 병역 비리는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자연히 다른 정치인들 아들의 병역 논란도 묻혔다. ----- 주위 인물과 팬들의 성화로 지금은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한다. 중2 때 흡연을 시작했다가 고1 때 끊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컨텐츠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하는 성격탓에 흡연장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8집 뮤직비디오의 촬영과정을 담은 다큐에서 자신의 테이블에 담배를 올려놓은 모습이 아주 잠깐 나오는 등 약간의 정황이 확인되었고, 이번 남탕, 여탕, 혼탕을 주제로 한 클럽공연(일겅) 때 전자담배를 피우는 퍼포먼스를 시전하여 팬들에게 충공깽과 심쿵을 선사하였으나 수년 전에 완전히 끊었으며 전자담배 연기는 단순 수증기라고 밝혔다. 최수종쇼에서도 담배 피우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기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건강에 나빠서([[하희라]]의 질문)가 아니라 뻐끔거리기 때문이라고[* 담배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고 입안에 고인 것을 뱉어낸다는 뜻. 매니저였던 최진열 씨도 같은 말을 했다. [[숨#s-1|숨]]을 참은 채 입만 벌렸다 다물었다 하면 비슷한 모습이 나온다.]. ----- 고종 [[사촌]]동생 강현구는 강개토라는 예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서태지의 영향인지 강개토 역시 본인 음악의 작사, 작곡, 편곡, 연주, 엔지니어링 등 모든 작업을 혼자서 소화한다. 본래는 서태지가 6집 발매 직전 강현구도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던 상태라 서태지가 귀국하면 베이시스트를 맡기로 했으나, 귀국 날짜가 달라진 탓에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당시 서태지에게서 베이스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서태지가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빨강색의 베이스 기타라고 언급했다. 아마도 잭슨인 듯 하다.] 개토네이션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디지털 싱글을 중심으로 7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이다. 초창기에는 얼굴이 공개되면 괜히 서태지와 엮여 오해를 살까봐 가면을 쓰고 활동했으나[* 다른 개토네이션의 멤버들도 얼굴에 페인팅을 하였다.] 현재는 가면을 벗은 상태. 결혼식 때는 서태지가 그에게 축하화환을 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발매 하는 음악 대부분은 음원 순위 10위권에 랭크 되었으며, m.net 및 곰 tv 뮤직비디오 실시간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 웅진, 두산, 신한, 우리 등 다수의 기업체 음악작업을 진행했으며, '광고음악의 장르가 신세대들의 소비심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여러 음악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활동은 물론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 유머를 자주 구사한다. 그런데 그 유머들이 하나같이 썰렁하고 재미가 없다. 오죽하면 팬들도 노잼이라고 까고 있는 중. 그런데 더 심각한 건 본인은 개그를 좀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굴은 속여도 유머감각은 못 속이는 50대 아재답다. ----- 데뷔가 워낙 오래된지라 서태지와 가까이 있어보고 싶어서, 닮고 싶어서 등의 팬심으로 연예인이나 방송계 직종 등에 종사하는 서빠들이 꽤 존재한다. 덕분에 메이킹 영상 등을 보면 스텝들 중에 싸인을 받거나 실물을 봐서 헬렐레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연예인들에게도 "연예인들의 연예인'"소리를 들을 정도다. ----- 우스갯소리로, 서태지가 컴백하면 음악 평론가들도 같이 컴백한다는 소리가 있다. ----- 서태지가 출연한 광고 중에 서태지 본인의 목소리로 녹음되지 않은 광고가 있다. 당시 은퇴 후에 미국으로 떠난 뒤여서 미처 녹음을 할 수 없어 대역이 대신 녹음했다고 한다. 당시 대역을 맡은 사람은 KBS2 스펀지의 권재영 PD로, 2004년 2월 21일 방영분에서 [[https://youtu.be/XUcBYxJDlcU|드러났다]]. ----- 자신의 단독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여 매 공연마다 기록적인 수준의 물자가 투입된다. 공연 시장의 규모가 해외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인 한국에서 전폭적인 투자 없이는 해보기 힘든 실험들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서태지가 컴백할 때마다 업계의 노하우가 새로 쌓인다고 할 정도. 비단 음향만이 아니라 연출에서도 황당한 요구를 해오는 클라이언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경험이 공연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2008 ETP의 등장씬에 쓰인 캡슐에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2009 ETP에는 2008에 쓰인 캡슐을 다시 쓰기 위해 보수하는데도 또 다시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다고 한다.] -----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이다. [[구한말]] 시절인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대에 살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같은 서울토박이 집안 출신인 [[손석희]] 앵커, [[김태영]] 前 국방부장관, 성우 고 [[장세준]] 등이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특유의 단어인 [[서울 방언|서울사투리]]들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과거 신해철, 기타리스트 탑과 스키장에 놀러갔는데 쉬고 싶다던 신해철을 부추겨 신해철이 상급자 코스에서 스키를 탔고, 결국 팔이 빠지는 부상을 입게 된 적이 있다. 당시 신해철이 응급실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을 때 서태지가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해철을 구경했고[* 본인 말에 의하면 신해철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해철을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를 발견한 신해철이 급분노해 "[[폭로|저 XX가 서태지다!]]"라고 외칠 뻔 했다고 한다. [[https://youtu.be/w8XrI7vY60M|링크]] ----- '''굉장한 동안이다.''' 1972년생으로 2023년 기준으로 50대 초반으로 접어들었지만 양현석(1970년생)이나 이주노(1967년생)는 그 나이대에 비슷해[*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엔 노안이라는 말이 많았다. 얼굴이 젊을 때보다 많이 안 늙어서 지금은 노안까지는 아니다. 반대로 서태지는 데뷔 당시에도 동안인 편이었지만 늙는 건 양현석처럼 굉장히 느리고 적게 늙었다.] 보이는데 서태지만 아직까지 나이에 비해 매우 젊어보인다. [[http://naver.me/FlhVYK8F|물론 40대에 들어서는 표정에 따라서 살짝 나이 든 모습이 나오기는 한다. 그래도 40대로는 절대 안 보인다.]] [[이승환]], [[이선희]]와 함께 대표적인 동안 뮤지션 중의 한 명이다. -----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환송식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3집#s-5.2|발해를 꿈꾸며]]'가 송출되었다.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가사말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하던 노래 중 하나인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 최근 자신이 살던 평창동 자택을 팔고 이사를 간 것으로 [[https://m.blog.naver.com/dntjq8977/221739127534|보인다.]][* 무한도전에 나온 그 집 맞다] 이후 서태지 본인이 2019년 크리스마스 안부글을 통해 이사한 것이 맞다고 [[https://www.seotaiji.com/bbs/board.php?bo_table=fromt&wr_id=68|이야기했다.]] ----- 동(東)태지의 모아이가, 서(西)태지의 Human Dream를 꺾어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563392|패배를 안긴 적이 있다.]] ----- 양현석과 마찬가지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않고 '틀리다'로 얘기한다. ----- 1995년 2월에 문화 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에 [[전위주의]]가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위주의를 따른 [[전위음악]]은 기존의 음악적인 상식을 완전히 깨는, [[화성]]이나 [[비트]], 리듬 따위의 기본적인 음악의 구성요소들을 완전히 해체하는 형식이라 본다며, 그런 의미에서 아직 자신의 음악을 포함한 우리 대중음악에 온전한 전위주의는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으로 그러한 전위주의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은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인터뷰는 같은 해에 출간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 실려 있다. 기존 인터뷰에 없었던 내용이 본인 피셜로 언급되니, 관심이 있다면 대형 도서관을 통해 찾아보길 바란다.] ----- 2002 ETPFEST에 [[히데]]를 섭외하였고[* 파타와 히스도 Dope Headz라는 밴드의 멤버로 참석했다. 후기 영상을 보면 서태지와 대화를 나누는 파타를 볼 수 있다.] 이에 생전 고인이 꿈꾸던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뤄줬다며 유족들은 서태지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고인의 기타 옐로우하트를 선물했다.[* [[Yoshiki|요시키]]가 LUNATIC FEST 무대에서 옐로우 하트를 들고 나오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시 유족들에게 돌려준 것으로 보인다.] ----- [[머틀리 크루]]의 [[성공한 덕후]]이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는 서태지가 만든 록 페스티벌인 이티피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하기도 했다. 다만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내한한 것이다. 또한 2019년에는 머틀리 크루의 'girls girls girls' 뮤비를 보고 동경하던 바이크 면허를 땄다고 밝히기도 했다. ----- [[스매싱 펌킨스]]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여러 경로로 팬심을 밝혀 왔다. [[http://www.hani.co.kr/arti/434749.html|링크]] 5집에서 스매싱 펌킨스 스타일의 얼터너티브 락인 Take Five를 선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2001년 공식 홈페이지 서태지 닷컴을 오픈했을 때 ‘아이 앰 원’, ‘제로’, ‘서티-스리’ 등을 추천하기도 했으며, 2004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는 “빌리 코건의 프로젝트 밴드 즈완의 ‘리릭’이라는 곡을 즐겨 듣는다”며 “스매싱 펌킨스는 나에게 꾸준하게 음악적인 자극을 주는 밴드”라고 말했다. 2010년 스매싱 펌킨스 내한 공연 때는 서태지컴퍼니가 후원사로 나서기도 했다.14년도에 9집 발매 전 업로드 된 잭 오랜턴 사진의 떡밥과 우연히 겹쳐져 '9집은 스매싱 펌킨스 풍의 얼터너티브 록 장르다. 스매싱 펌킨스와 콜라보다.' 등의 소문이 돌았던 것은 덤.[* 실제로 9집은 신스팝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 락이였으며 크리스말로윈의 후반부에 나오는 'Oh My Jack O lantern was fake' 라는 비밀가사를 통해 서태지가 해당 떡밥을 통해 낚시를 했었다는 걸 보여준다.] ----- 기타 제작가 [[박민병]]은 어린 시절부터 서태지의 팬이었다. 서태지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12년 동안 건조한 목재로 제작한 기타는 서태지 라이브 공연에서 TAKE THREE를 연주하는 데 쓰였다. 박민병은 아픈 몸을 이끌고 공연에 참석했다. -----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수익배분이 꽤 화제가 되었다. 서태지와 양현석이 공통적으로 말한 부분은 '''활동 수익이 4:3:3''' 이었고 '''음반 수익'''은 서태지 본인이 밝힌바로는 '''6:2:2'''였다.[[https://theqoo.net/square/1637911953|#]] 이주노 말에 의하면 전체 수익의 절반은 서태지가, 나머지 절반을 자신과 양현석이 나눠가졌다고 한다.[[https://theqoo.net/square/1023831695|#]][*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거의 95%가 서태지가 혼자 다 했다. 그래서 양현석, 이주노 역시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다-- 온라인에서는 '''전설의 수익 배분'''이라고 불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서태지 없이는 돌아가는 그룹이 아니었고 활동 수익은 그렇다 쳐도 음반에서 양현석과 이주노의 기여도를 생각하면 8:1:1이었어도 할 말이 없을 거라는 것.[* 그나마 양현석은 '널 지우려 해'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 작사에 참여했지만 이주노는 그마저도 없어서 서태지가 나눈 6:2:2가 얼마나 보살급 배분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춤은 이주노가 만들지 않았나?-- 게다가 서태지는 편곡에다가 음반 매니지먼트, 마케팅까지 혼자 다 했다. 사실 초기 기획사와 수익 배분 때문에 갈라선 서태지였던만큼 이런 부분에선 꽤 통 큰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서태지는 이 방면에서는 '[[보살]]'이라는 반응을 얻었다. 한편으론 그렇게 90년대 당시 몇십억을 벌고도 그 돈을 다 날린 이주노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었다. 서민 출신 양현석이야 알다시피 YG 엔터로 --욕은 먹어도-- 사업은 성공했다. ----- 2020년대 현재 10대들에게는 교과서로 접한 인물이라고 한다. [[비(연예인)|비]]의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에 언급되었다. [[https://youtu.be/DguFW3A9ei4|링크]] [[https://www.wikitree.co.kr/articles/712906|관련 기사]]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서태지가 등장했다는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4221|기사]]도 있다. ----- 2022년 6월 13일, 강남 논현동의 9호선 [[언주역]] 인근 본인 소유 빌딩을 400억원에 매각했다. 이 빌딩은 2002년에 50억에 매입하여 2005년에 45억원을 들여 신축했는데, 20년만에 300억원 정도의 차익을 거둔 셈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4976734|링크]]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태지를 부동산 투자에 일찍 눈을 떠 성공한 몇 안되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평가했다. 다만 이 건물이 서태지컴퍼니 사옥과 연습실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갑작스러운 건물 매각 소식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사이트는 여전히 활성화 중이기에 건물을 이전한 것일 뿐 회사를 아예 처분한 것은 아니다. 현재 서태지컴퍼니 업무는 서태지컴퍼니의 김민석 이사가 차린 스포트라이트라는 회사에서 맡고 있는데, 이 회사의 사무실은 마포구에 있다.[* 비활동기이므로 업무가 없어서 사무실 규모를 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서갤 등에서 종로 묘동 건물도 매각했다는 루머가 나왔다. ----- 서태지가 타던것으로 추정되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차량이 매물로 올라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7/0001741445?sid=102|해당기사]] [[https://www.bobaedream.co.kr/mycar/mycar_view.php?no=2199954&gubun=I|매물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