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진 (문단 편집) === 진나라의 시초, 위나라의 권신 === 처음 [[조조]]의 후계자 경쟁에서 [[조비]]를 지지함으로써 친위 세력으로 입지를 다진 [[사마의]]는 총사령관으로써 [[제갈량의 북벌]]을 막고 [[동연]]을 붕괴시키면서 조정내에서 입지를 키워 조예의 임종 당시 조진의 아들 조상과 함께 탁고대신이 된다. 조비와 그 아들인 [[조예]]가 죽은 뒤 나이 어린 [[조방]]을 끼고 실권자로 군림하던 [[조상(삼국지)|조상]]은 나날이 부패하여 조정 내에서 원망이 많았다. [[사마의]]는 강력한 조정, 군부 내의 입지와 조상의 실정을 바탕으로 해서, [[조상(삼국지)|조상]]을 [[정시정변]]([[고평릉 사변]])으로 축출하고 사마의 자신이 위나라의 실권자로 군림했다. 과거 조조가 [[헌제]]를 앞에 놓고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던 상황이 비슷하게 재현된 것이다. 이때가 249년, 사마의의 나이 71세였다. 2년 후, 가평 3년(251년)에 사마의가 병사하고 그의 맏아들인 [[사마사]]가 권력을 잡았는데 가평 6년(254년), 사마사는 하후현등을 동원하여 자신을 폐하려던 조방을 역으로 폐하고 [[조모(삼국지)|조모]]를 황제로 세웠다. 이듬해 사마사가 반 사마씨 반란인 [[관구검-문흠의 난]]을 평정한 뒤 죽고 그의 동생 [[사마소]]가 새롭게 정권을 잡았다. 감로 2년(257년), 정동대장군 [[제갈탄]]이 다시 [[제갈탄의 난|반 사마씨 반란]]을 일으켰는데 사마소는 황제를 데리고 동정을 떠나 수춘을 에워쌌으며 이듬해 수춘이 무너지고 제갈탄은 죽임을 당했다. 감로 5년(260년)에 황제 조모는 사마씨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 달갑지 않아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사마소의 관저로 진격하다가 죽임을 당한다. 사마소는 죽은 조모를 서인으로 폐한 뒤 [[조환]]을 황제로 세웠고, 이로써 조위 정권은 완전히 사마씨의 통제를 받았다. 이렇게 [[왕릉(삼국지)|왕릉]], [[이풍]], [[하후현]], [[관구검]], [[문흠]], [[제갈탄]], 조모 등 몇 차례의 반 사마씨 세력과의 투쟁을 거치면서 조위에 충성했던 내외세력은 대체적으로 제거되었다. 사마사와 사마소는 이런식으로 조정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굳혀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마사 사망 후 사마소는 개국의 공으로 삼기 위해 [[촉한]] 정벌에 착수하여 263년 촉한 정벌이 한창 진행되던 중 연이어 승전보가 울리자 전쟁 중인 10월 진(晉)의 [[공작(작위)|공작]]까지 올랐다. 사마소는 병주의 태원(太原), 상당(上黨), 서하(西河), 악평(樂平), 신흥(新興), 안문(雁門), 사주(司州)의 하동(河東), 평양(平陽), 홍농(弘農), 옹주(雍州)의 풍익(馮翊) 10개 군, 사방 총 700리인 토지를 받았는데 이 지역은 옛 진나라(晉)의 영토로서 사마소는 이 토지를 위나라 마지막 황제 조환에게서 받아내고 진(晉) 공국을 세워 진공(晉公)으로 봉해지고 [[구석]]을 받았다. 이렇게 263년 10월, 후세에 서진, [[동진]] 합쳐서 155년간 황제국 진나라로서 존속하는 나라가 공식적으로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 또한 진나라의 관부 설치는 일체 이전의 제도에 따르도록 했다. 아직 제국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진나라는 이렇게 시작한 셈이다. 괜히 사마소가 [[태조]]의 묘호를 받은 게 아닌 것이다. 그리고 263년 11월, 결국 촉한은 진공 사마소가 보낸 정촉군에 의해 멸망했다. 이 공으로 이듬해 3월, 사마소는 다시 왕으로 진봉받아 자그마치 20개 군을 거느렸다. 하지만 정작 사마소는 중풍으로 265년 9월에 죽고, 이러한 건국의 기반은 고스란히 아들 사마염에게로 이어졌다. 이렇게 사마염 이전에 나라의 기틀이 다 잡혔고 사마염은 그걸 받아먹은 것이 대부분이라, 사마염은 [[사마의]]와 [[사마사]] 그리고 [[사마소]]를 [[고조]], [[세종]], [[태조]]로 추존하고 자신은 실제 초대 황제임에도 [[세조]]의 [[묘호]]를 받았다. 대체로 태조 묘호는 조조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초대 황제가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한 사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