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지원 (문단 편집) === 데뷔 후 === 우여곡절[* 자세한 내용은 [[서지원 사망 사건#s-2.3.1|후술하는 문서에서 참조]]] 끝에 [[옴니뮤직]]에 발탁, 작곡가 안진우에게 4개월간 노래 지도를 받은 뒤, 3개월 동안 --초스피드-- 녹음을 마치고[* 당시에는 미국 시민권자였기에 한국-미국을 오가며 빠듯하게 앨범을 준비했다고 한다.] [[1994년]] [[10월]] 1집 앨범 《[[Seo Ji Won]]》을 발표했으며 같은 해 12월 SBS 프로그램 <순간포착 당신이 특종>[* 당시 메인 MC는 이수만이었으며, 서지원은 박진영과 함께 보조 MC로 출연했다.]으로 데뷔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IWON-debut.gif|width=100%]]}}} || || {{{#000 ▲ SBS <순간포착 당신이 특종> 데뷔 무대}}} || 한국에서 잡지 모델로 활동하며 이미 팬들이 있었지만 정식 데뷔 후, 당시에는 비교적 드물었던 10대 가수[* 물론 그 당시에도 10대의 나이에 연예 활동을 했던 가수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현재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10대인 가수들이 비중 있게 활동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 최고 인기 스타였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경우에도 [[서태지]]와 [[양현석]]은 20대 초반, [[이주노]]는 20대 중반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가수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는데, 서지원이 세상을 떠난 후 데뷔한 [[IDOL(한국 가수)|IDOL]]은 멤버들 전체가 10대였다.]라는 점이 이목을 끌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다. 또한, 방송 데뷔 불과 3개월 만에 SBS 예능 프로그램 <점프챔프>[* 1995년 2월 9일부터 동년 10월 12일까지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이며, 당시 신인이었던 [[채림(배우)|채림]]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다.]에서는 메인 MC를 맡았고, 프로그램 내 미니드라마 '남녀공학'과 '라이벌'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연기도 선보였다. [[KBS]] <출발 토요 대행진>, <토요일 7시가 좋다> 등 이 외에도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고정 진행을 맡았으며, 가수로서 노래뿐 아니라 작사, 작곡, 모델, MC, 연기 등 다방면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며 단숨에 인기 스타 대열에 올랐다. 이러한 분위기를 증명하듯 데뷔곡인 <또 다른 시작>은 1995년 한 해 동안 젊은 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았는데, KBS <[[가요톱10]]> 9위, SBS 에서는 6위까지 랭크됐다. 역대급으로 순위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 1995년~[[1996년 가요계]]]의 데뷔곡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표였다. 1995년 늦가을에 나온다던 2집 앨범은 서지원의 건강 문제로 한 번, 음반 심의 기간이 길어지며 또 한 번 발매가 늦어지게 되었고, 결국 2집 앨범 발표는 해를 넘겨 1996년 1월 중순으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러나 1996년 1월 1일, 새 앨범 발표를 목전에 두고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나면서 2집 앨범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정재형]]이 작곡한 2집 앨범 타이틀곡인 <[[내 눈물 모아]]>는 KBS <[[가요톱10]]>,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SBS 등 방송 3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며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명곡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1위의 주인공으로 피날레 무대를 장식해야 할 서지원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 무대에 설 수 없었기에 그의 공연은 뮤직비디오로 대체되었으며,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1위를 했을 때는 그의 어머니와 동료가 대리 수상하였고, KBS <[[가요톱10]]>에서 1위를 했을때는 정재형[* <내 눈물 모아> 작곡자]이 속해 있는 그룹 베이시스가 대신 공연했다. 그의 활동 당시부터 사후까지 소속사의 행실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자세한 사항은 [[서지원 사망 사건#s-5.1|후술하는 문서에서 참고.]] 2021년 [[옴니뮤직]] 사장은 유족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무단으로 서지원의 1집과 2집 앨범을 LP와 CD 형식으로 재발매했다. 일각에서는 가요계의 도의를 벗어난 행동이라며[* 옴니뮤직 사장은 1996년 한차례 열린 추모 콘서트 외에는 어떠한 추모 사업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모 사업을 앞세워 서지원의 모든 법적인 권리를 가져가서 유가족은 철저히 배제된 채 전 소속사측이 수익을 다 챙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