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윤복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파일:서윤복마라톤.jpg]] (보스턴 마라톤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서윤복의 모습[* 실제 경기 당시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523211?sid1=001|서윤복의 경기복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달려 있었는데]] 당시 한국이 미국의 군정 치하에 있었던 것을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위의 사진은 '광복 후 한국의 첫 국제대회 우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태극기만 남기고 성조기는 의도적으로 지운 '성조기 말소 사건'이었던 셈이다.])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이전 세계기록 보유자는 다름 아닌 그의 스승 손기정이었다. 손기정의 기록은 베를린 올림픽 출전 직전인 1935년에 세웠고 서윤복이 경신하기 전까지 12년 동안 지속됐다. 이는 현재까지도 마라톤 역사상 최장기 세계 기록이다. 당시 서윤복은 후반부 코너에서 선두에 섰다가 어떤 관객의 개가 달려드는 바람에 넘어져 무릎과 팔꿈치에 상처를 입는 부상을 당했지만 이후 2km 오르막길까지 질주해 우승을 따냈다.] 당시 감독과 코치는 [[손기정]]과 [[남승룡]][* 말이 코치지 무려 12등(2시간 40분 10초)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선수를 은퇴한지 오래된 무려 36살 무렵이다. 그리고 감독이자 같이 선수생활한 [[손기정]]과는 동갑이다(...) 참고로 끈기의 대명사 [[이봉주]]선수가 은퇴한 나이가 39살이다.]이었다. 이는 광복 이후 국제대회에 KOREA라는 이름으로 태극기를 달고서 출전, 수상한 첫 우승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스포츠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귀국 이후에 여운형을 만났고 또 [[김구]]를 만나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붓글씨를 선물로 받았다. 이후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는 [[함기용]] 선수가 우승했다. 당시 [[미 군정]]으로부터 보스턴 마라톤 대회 정보를 듣고 출전 결정 후 미 군정의 도움으로 여비를 마련하고 미군 군용기를 얻어타고 가는 등[* 그것도 미국 보스턴으로 직항한 게 아니라 [[괌]],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을 다 거쳤다.] 대회 출전 전부터 고생을 했다. 불과 대회 개막 일주일 전에 대회 장소에 도착했다. 게다가 그는 풀코스 완주를 겨우 두 번밖에 경험하지 않았다. 우승 후에는 배를 타고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 [[1948 런던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페이스 난조로 2시간 59분 36초를 기록해 27위에 그쳤고 1949년 결국 [[https://portal.sports.or.kr/info/webzineView.do?pageIndex=1&pageUnit=15&searchBookYear=&searchCategoryCd1=1301&searchCategoryCd2=&searchKeyword=&orderBy=H&boardSeq=HSA0001309|은퇴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