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특별시/역사 (문단 편집) === [[남북국시대]] === 북한산주는 [[통일신라]]의 [[9주 5소경]] 중 [[한주]]([[한산주]]) 소속이 되었다. 지금의 [[종로구]]를 중심으로 한 강북 지역은 신라 초기 북한산주(北漢山州)였다가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에 따라 [[한양]]군(漢陽郡)으로 바꾼다. 지금의 서울 강북 일대와 구리, 남양주 상당 부분(진접, 진건, 오남 제외)에 해당한다. 이 한양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까지 관습적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현대에도 [[한양대학교]] 등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한강 이남은 대략 반으로 나눠 동쪽은 지금의 [[광주시]]인 한주 소속, 서쪽은 지금의 [[과천시]]인 율진군 소속이었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던 [[발해]]의 특성상 바로 그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신라와는 당연히 사이가 좋을 턱이 없었다. 물론 신라도 [[고구려부흥운동]]에 보탠건 있긴 한데 그게 고구려 좋으라고 한건 아니고 [[나당전쟁]]에서 당을 견제할 목적으로 손 안대고 코 풀 심산으로 고구려 유민들에게 대신 좀 싸워달라는 뜻에서 지원해준거라..... 딱히 신라와 친한 관계는 아니었던 북방의 [[발해]]와 접한 [[국경선]] [[전방]] 지역이었기 때문에 신라의 지방군인 10정을 9주 중 다른 8개 주에는 1정씩 배치했으나 한주에는 특별히 2정 배치했다. [[김헌창의 난]]의 후속타로 아들 [[김범문]]이 북한산 아래에서 도적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도분 총명에게 잡혀 죽었다. [[후삼국시대]]에는 [[호족(한국사)|호족]] [[함규]]의 영역이었는데 [[궁예]]를 거쳐 [[태조(고려)|왕건]]에 복속됐고 [[함씨]]들의 조상이 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